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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복음에 대한 짧은 생각] 20111004
작성자김용현 쪽지 캡슐 작성일2011-10-04 조회수331 추천수1 반대(0) 신고
2011년 10월 4일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 기념일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0,38-42

그때에 예수님께서 어떤 마을에 들어가셨다. 그러자 마르타라는 여자가 예수님을 자기 집으로 모셔 들였다. 마르타에게는 마리아라는 동생이 있었는데, 마리아는 주님의 발치에 앉아 그분의 말씀을 듣고 있었다.

그러나 마르타는 갖가지 시중드는 일로 분주하였다. 그래서 예수님께 다가가, “주님, 제 동생이 저 혼자 시중들게 내버려 두는데도 보고만 계십니까? 저를 도우라고 동생에게 일러 주십시오.” 하고 말하였다.

주님께서 마르타에게 대답하셨다. “마르타야, 마르타야! 너는 많은 일을 염려하고 걱정하는구나. 그러나 필요한 것은 한 가지뿐이다. 마리아는 좋은 몫을 선택하였다. 그리고 그것을 빼앗기지 않을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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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타야, 마르타야! 너는 많은 일을 염려하고 걱정하는구나. 그러나 필요한 것은 한 가지뿐이다."


마르타와 마리아, 두 사람을 지켜보는 시선들은 신앙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를 두고 엇갈리는 모습을 보입니다. 마르타는 활동을 택했다 말하고, 마리아는 기도로 연결시키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그러나 실제 복음의 내용을 보면 누구는 무엇을 했고, 누구는 무엇을 했다는 구분은 불가능합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무엇이 중요한가 단 한가지를 이야기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필요한 것은 한 가지뿐이다."


그 한가지가 무엇일까요? 우리가 흔히 마리아를 두고 말하는 것처럼 하느님 안에서 기도하는 것일까요? 그런데 복음 속에 마리아의 모습에서 기도하는 모습은 보이질 않습니다. 행동으로 치자면 마리아가 한 행동은 없다고 말하는 것이 더 맞습니다. 행동으로 따지자면 마르타와 예수님이라고 말하는 것이 더 맞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다면 분주했던 마르타는 못하고 아무런 행동도 보이지 않았던 마리아는 했던 예수님이 말씀하신 필요한 한 가지는 무엇입니까?


마르타의 모습과 마리아의 모습을 다시 한 번 봅니다.


마리아는 주님의 발치에 앉아 그분의 말씀을 듣고 있었다.

마르타는 갖가지 시중드는 일로 분주하였다.



마르타가 하지 않았고, 마리아가 한 행동은 예수님의 말씀을 듣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듣는다는 것은 우리가 선택하는 행동의 차이와 상관 없는 부분입니다. 그것은 오히려 예수님께서 행동하시고 우리는 그것을 보고 듣고 배우는 상태라고 말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듣는다는 것은 예수님을 안다는 것이 됩니다. 또한 예수님의 마음을 안다는 것은 하느님 아버지의 뜻을 알게 된다는 것으로 연결됩니다.

복음의 내용이 말하는 두 자매의 차이는 마르타는 하느님을 섬기는 일에 집중했지만 정작 하느님의 뜻은 몰랐다는 것이고, 마리아는 하느님의 뜻을 알아듣는 자리에 있었다는 것입니다.

마르타의 행동을 활동이라고 설명하는 것이 굳이 틀린 말은 아니겠지만 정작 하느님의 뜻은 모른채 자신의 짐작과 최선의 정성으로 하느님을 섬기고 살아가는 삶이라는 것이 열심히 살아가는 자신에 대한 만족 이외에 하느님을 진정 기쁘게 해드리는 일인지에 대해서는 늘 부족함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뜻을 아는 이의 삶이란 그 삶의 모든 순간이 하느님과 함께 누리는 기쁨의 삶이요 그 자체가 보람일 수밖에 없는 삶입니다. 하느님과 함께 하는 것과 나 혼자 노력해서 하느님께 드리는 것은 그릴수조차 없는 차이입니다.


마르타와 마리아, 이 두 자매는 복음에서 그 결과를 내지 못합니다. 두 자매의 차이가 정말 확인되는 자리는 주님과 함께 있는 이 집안에서가 아닐 것입니다.

주님이 집을 떠나시면 마르타는 주님을 모셨다는 기쁨에 젖어 살게 되겠지만, 그 밖의 삶은 스스로 판단하고 살아가야 하는 삶이될 것입니다. 그녀는 주님께 정성을 다해 섬긴 여인이지만 주님의 말씀을 몰랐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마리아는 주님이 떠나신 후에 모든 삶에 순간에 주님께 들은 말을 기억하게 될 것입니다. 그 삶의 기준이 주님의 말씀과 함께 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마리아의 모습, 곧 주님의 말씀을 듣는다는 것은 머물러 기도하는 삶 만을 말하지 않습니다. 마리아가 주님이 떠나신 후에도 머물러 있는 모습이었을리 없습니다. 또한 마르타 역시 그 집에 머물때는 사랑하는 예수님과 함께 있었기에 그녀들의 차이는 주님으로 인해 드러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활동보다 더 낳은 식의 영성적인 삶으로 마리아의 좋은 몫을 해석하기보다는 사람이 주님을 알고 사는가 아니면 자신의 정성만으로 사는가의 차이로 보는 것이 더 합당하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하느님을 믿는다는 표현 앞에서 우리의 모습은 서로의 처지에 따라, 특성에 따라 다른 모습으로 드러나게 됩니다. 그 모든 것은 우리가 각자 고유한 사람인만큼 사람의 숫자만큼 다양할 것입니다. 정말 중요한 것은 그런 우리의 다양한 삶 속에 하느님의 마음이 들어있는가, 내가 주님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으로 살고 있는가일겁니다.

그래야 우리의 삶에 두려움이 없지 않겠습니까? 기쁨을 기다리고 답을 기다리는 삶이 아니라, 답을 이미 알고 사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주님의 말씀을 알고 집 문을 나서는 마리아의 기쁨을 누렸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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