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복음에 대한 짧은 생각] 20111009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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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용현 | 작성일2011-10-09 | 조회수317 | 추천수1 | 반대(0) 신고 |
2011년 10월 9일 연중 제 28 주일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22,1-14 그때에 예수님께서는 여러 가지 비유로 수석 사제들과 백성의 원로들에게 말씀하셨다. “하늘 나라는 자기 아들의 혼인 잔치를 베푼 어떤 임금에게 비길 수 있다. 그는 종들을 보내어 혼인 잔치에 초대받은 이들을 불러오게 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오려고 하지 않았다. 그래서 다시 다른 종들을 보내며 이렇게 일렀다. ‘초대받은 이들에게, ′내가 잔칫상을 이미 차렸소. 황소와 살진 짐승을 잡고 모든 준비를 마쳤으니, 어서 혼인 잔치에 오시오.′ 하고 말하여라.’ 그러나 그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어떤 자는 밭으로 가고 어떤 자는 장사하러 갔다. 그리고 나머지 사람들은 종들을 붙잡아 때리고 죽였다. 임금은 진노하였다. 그래서 군대를 보내어 그 살인자들을 없애고 그들의 고을을 불살라 버렸다. 그러고 나서 종들에게 말하였다. ‘혼인 잔치는 준비되었는데 초대받은 자들은 마땅하지 않구나. 그러니 고을 어귀로 가서 아무나 만나는 대로 잔치에 불러오너라.’ 그래서 그 종들은 거리에 나가 악한 사람 선한 사람 할 것 없이 만나는 대로 데려왔다. 잔칫방은 손님들로 가득 찼다. 임금이 손님들을 둘러보려고 들어왔다가, 혼인 예복을 입지 않은 사람 하나를 보고, ‘친구여, 그대는 혼인 예복도 갖추지 않고 어떻게 여기 들어왔나?’ 하고 물으니, 그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였다. 그러자 임금이 하인들에게 말하였다. ‘이자의 손과 발을 묶어서 바깥 어둠 속으로 내던져 버려라. 거기에서 울며 이를 갈 것이다.’ 사실 부르심을 받은 이들은 많지만 선택된 이들은 적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 "하늘 나라는 자기 아들의 혼인 잔치를 베푼 어떤 임금에게 비길 수 있다." 하느님을 믿는 사람들에게 '하늘 나라'란 꼭 가야 하는 영원한 생명의 나라입니다. 그렇지만 하늘 나라에 가기에는 너무 부족한 우리이기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느님의 은혜로 '구원'의 과정을 거쳐 우리는 그 나라게 가게 됩니다. 우리 자력으로 갈 수 있는 나라가 아니라는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늘 나라를 이야기할 때 항상 '구원'이라는 단어를 사용합니다. 우리 힘으로 안되고 하느님의 뜻대로 되는 곳이며, 그 하느님이 우리를 사랑하실 때만 가능하다는 의미입니다. 그럼에도 우리가 이 불가능한 나라를 자꾸 입에 외는 것은 하느님이 그 나라에 우리를 초대하고 계시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하늘 나라가 아들의 혼인 잔치를 베푸는 임금의 이야기에 비길 수 있다는 예수님의 말씀은 우리가 알고 있는 바로 그 하늘 나라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하느님이 초대하신 잔치, 곧 하늘 나라가 그 잔치의 자리입니다. 이야기 속의 임금은 잔치를 벌이고 사람들을 초대합니다. 그는 종들을 보내어 혼인 잔치에 초대받은 이들을 불러오게 하였다. 초대받은 이들이 이미 정해져 있었다는 것은 이미 하느님을 아는 이들, 또한 하느님께서 부르시는 이들이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그 기쁨의 소식이 들리자 초대받은 이들의 행동이 이상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오려고 하지 않았다. 그래서 다시 다른 종들을 보내며 이렇게 일렀다. ‘초대받은 이들에게, ′내가 잔칫상을 이미 차렸소. 황소와 살진 짐승을 잡고 모든 준비를 마쳤으니, 어서 혼인 잔치에 오시오.′ 하고 말하여라.’ 그러나 그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어떤 자는 밭으로 가고 어떤 자는 장사하러 갔다. 그리고 나머지 사람들은 종들을 붙잡아 때리고 죽였다. 잔치에 초대받았다는 것은 분명한 특권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그 잔치를 거절합니다. 자신들 만을 위한 잔치라는 것을 알았음에도 실제 그 잔치 앞에서는 등을 돌린 것입니다. 그 잔치의 성대함과 거기에서 베풀어지는 임금의 자비로움이 강조되고 재차 알려졌지만 그들은 한결같이 모른 채 합니다. 그들은 자신의 것이 있는 밭으로 가거나, 자신의 재산을 불리기 위해 장사를 나갑니다. 그리고 나머지 사람들은 임금의 종들을 때리고 죽이면서 오히려 임금에게 반감을 표시합니다. 그들은 분명 임금의 사람들이라 불리었고, 그들의 삶은 그 임금으로 인해 모든 이들에게서 특별하다 이야기되었지만 정작 임금의 초대 앞에서 그들은 자신들이 지니고 있는 것이 더 중요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움켜쥐기 위해 임금과 함께 하는 삶을 싫어했습니다. 그들에게 임금은 묻어가기에는 좋지만 가까이 함께 해서는 안되는 존재였다는 이야기입니다. 예수님은 이 이야기를 사람들 사이의 수석 사제들과 원로들에게 하셨습니다. 이 비유가 말하는 것은 하늘 나라가 사람들 안에 어떻게 자리하고 있는지에 관한 이야기였습니다. 하느님의 백성이라 말하고 자신들을 하느님의 특별한 선택의 사람들이라는 말로 위세를 떨치고 그 중에서도 하느님을 가르친다는 백성의 지도자들은 초대받은 이들과 다름 없는 위치에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자신의 밭을 가꾸고, 혹은 장사를 하는 이들은 하느님의 몫을 지니고 있는 사제들과 원로들이라 할 수도 있겠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하느님의 초대, 곧 사랑의 현장에는 가려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하느님의 이름은 좋아했으나 그분이 자신들을 보호하시고, 사람들 위에 서게 해주시는 이상을 원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임금은 멀리하고 그 대신 자신의 자리에서 왕 노릇을 하는 것이 즐거웠던 셈입니다. 그들은 그렇게 살았고 그들의 영향을 받은 이들 역시도 임금을 싫어하고 임금의 종들을 미워하고 죽이려 듭니다. 결국 그들의 초대된 자리에 임금을 모르는 이들이 초대됩니다. 이유 없이, 영문도 모른채 자리에 참석한 이들은 그들의 삶의 모습으로 혼인 예식에 맞는 사람인지 판단될 것이라는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세상에서 하느님을 듣고 아는 이들이 많아진 오늘 날입니다. 하느님을 믿는 사람들에게 하늘 나라는 여전히 유일한 목적지가 되어 있고 누구나 원하고 바라는 영원한 생명의 나라입니다. 물론 그 나라는 하느님의 세상이고, 우리는 그분의 백성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 나라를 원하고 그 나라에 초대받은 이들로서 기쁨을 이야기하곤 합니다. 그런데 실제 우리의 모습들은 이천년 전 유일한 선택된 백성이었던 이스라엘이 확대된 모습처럼 보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의 겉과 속이 다른 모습 덕분에 우리가 지금은 선택된 백성의 자리에 함께 하고 있지만 우리가 사는 모습이 과연 그 잔치에 합당한 사람들인지 생각해보면 마치 거울을 보듯 예수님의 비유 속에 등장하는 부끄러운 사람들과 같아 보입니다. 우리 역시 삶에서 하느님을 믿어 누구보다 특별하고 구원의 절대적 순위를 지니고 있다고 말들 하고, 그 덕분으로 현실에서 하느님은 우리를 여러모로 더 잘살게 해 주시는 분으로 말하고 기도하며 섬깁니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일에 앞서 찾고 왕이시라 고백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정작 하느님이 주인이 되시는 하늘 나라에 대해서도 그런 마음인지 모르겠습니다. 그 잔치에 들면 잔치의 주인공은 하느님이시니 말입니다. 내가 주인공이 될 수 없는 자리, 그래서 다른 이들보다 하나도 낳을 것이 없는 자리에 들면 우리는 모두 같은 삶을 살아가는 처지가 됩니다. 주인이 차려 준 음식 앞에 놓인 같은 손님들이라는 것입니다. 아무리 주인 곁에 다가서도 그 잔치의 주인공이 될 수는 없습니다. 정작 그곳에 초대장이 우리에게 날아온다면 우리는 과연 어떤 얼굴일까요? 지금 손에 쥐고 있는 것을 모두 놓고 하느님이라고 하는 절대 권력 밑으로 들어간다는 생각이 우리 안에 밀려 올 때 우리는 과연 진심으로 기쁘다 말하며 당연한 듯 모든 것을 놓고 그곳으로 갈 수 있는 삶으로 하느님을 섬기고 있는지 생각해봐야 하겠습니다. 영문도 모르는 이가 하늘 나라 잔치에 들어가 자신의 예복 때문에 쫓겨나 이를 가는 것은 어찌보면 지극히 당연할 수도 있습니다. 하느님도 모른채 세상의 질서에 따라 열심히 살았으니 그것이 잘못인지 판단도 못한 이가 그 결과에 억울해 하는 것은 당연한 감정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사람의 처지를 우리의 교훈으로 삼을 수 없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모르고 예복을 못챙기는 사람은 될 수 없습니다. 우리에겐 이미 초대장이 쥐어져 있음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삶의 모든 순간에 임금의 가르침과 사랑을 늘 생각하고 함께 기뻐하는 하루를 삶으로서 우리의 삶이 곧 예복이 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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