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느 귀부인이 불우아동돕기 자선공연에 갔다 돌아오는 골목길에서 거지소년과 마주쳤습니다. “춥고 배고파요, 도와주세요.”라는 거지소년의 말에 귀부인이 “염치없기는! 내가 오늘 너희들 때문에 발목이 아프도록 춤을 추어야 했다는 걸 알기나 해?” 하고 화를 냈다고 합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내가 훌륭하고 선하다는 것을 알리느라 하루 종일 입에 침이 마릅니다. 심지어는 자신조차 속이면서 열심히 선행을 드러내는 일에 매달립니다. 그러나 세상은 하나도 달라지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진정 세상을 바꾸는 데 필요한, 눈에 보이지 않는 그 ‘무엇’이 빠져있기 때문입니다.
「물은 답을 알고 있다」의 저자 에모토 마사루는 마당의 장독대에 떠 놓은 물조차도 내 마음 안에 용서와 사랑이 있는지, 질투와 분노가 끓고 있는지에 따라 입자의 모양이 달라진다고 했습니다. 겉으로 보이는 것만이 실체는 아닙니다. ‘내 안에서 지금 무엇이 일어나고 있는가?’ 하는 ‘존재’가 더 실감나는 현실입니다.
사랑이 있으면 매를 때려도 아이가 상처받지 않지만 사랑이 없을 때는 온갖 좋은 옷과 음식을 해줘도 아이는 상처 받을 수 있습니다. 결국 내 입에서 나오는 말이 중요한 게 아니고, 나는 ‘남을 사랑하려는 사람인가, 남을 이기려는 사람인가?’ 하는 것이 더 중요한 듯합니다.
우러나오는 사랑과 포용은 그냥 있어도 온 세상이 소리 없이 느끼게 됩니다. 내가 그런 사람이라고 열심히 이야기할 일도 아니고,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 사람을 자기 멋대로 평가할 일도 아닌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드러냄’이 아니고 그냥‘드러남’이기 때문입니다.
오일환(가톨릭대학교 의과대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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