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받이가 없는 자전거를 타고 빗길을 달린 뒤 방에 들어와 거울을 보니 몸이 얼굴부터 발끝 까지 세로 두 쪽으로 갈라져 있었다. 앞 뒷바퀴에서 흙탕물이 튀어서 그런 것이다.
그런 몰골로 한참 거울을 들여다보고 있노라니 옛날 어렸을 적 정신을 놓고 즐겼던 만화영화 ‘마징가 제트’에 나오는 ‘아수라 백작’이 떠올랐다. 아수라 백작은 오른쪽 절반은 남자, 그리고 왼쪽 절반은 여자였는데 그래서 말을 할 때는 항상 남자와 여자의 음성이 동시에 들려왔다. 물론 모든 사람은 생물학적으로 남성호르몬 테스토스테론(testosterone)과 여성호르몬 에스트로겐(estrogen)을 동시에 가지고 있지만 아수라백작은 겉모습까지 완전히 둘로 갈라져 있다.
거울 앞에 서서 손으로 오른 쪽, 왼쪽 얼굴을 번갈아가며 몇 십 년 만에 아수라 백작 흉내 내기를 해 봤더니 웃음이 절로 터져 나온다.
아마도 아수라 백작은 인도 아리아 인들의 신들 중에 아소라(阿素羅)라는 마신(魔神)의 이름을 따서 붙여진 이름인 것으로 추정된다. 이 ‘아수라’를 불교에서는 육도(六道)의 하나에 아수라도(阿修羅道)로서 설명하고 ‘전쟁이 끊이지 않는 세계’로서 풀이한다.
만약에 내 추측이 맞다면 항상 지구를 공격하기 위해 전쟁을 일으키고 또 한 몸 안에서조차 남성과 여성의 정체성이 항상 대결하여 싸우고 있던 그 캐릭터에 ‘아수라’는 너무 잘 붙여진 이름임에 틀림없다.
한참 아수라 백작 흉내 내기를 하다보니 거울 속의 내가 아수라 백작으로 보인다. 내 안에는 정말 두 개의 내가 존재한다.
철저하게 주님의 가르침을 쫒아가려는 나와 거슬러가려는 나.
말하는 나와 행동하는 나.
보여지는 나와 내가 보는 나.
다 놓고 떠나자는 나와 다 가지고 머무르자는 나.
이 두 얼굴의 내가 벌이는 힘겨운 줄다리기가 오늘 하루의 삶으로 채워져 간다. 그래서 하루를 살고나면 이런 저런 후회가 아직 많다. 하지만 이런 ‘아수라장’이 한 편으로는 내 영적인 수련의 과정이라고 믿기에 언젠가 내 얼굴이 하느님의 뜻 안에서 하나가 되는 날이 올 것이라는 희망을 갖는다.
하느님과 사람 앞에서 하나의 얼굴을 하고 살아간다는 것은 내 마음 저 깊은 곳에서 생생하게 들려오는 주님의 음성, 즉 양심의 소리를 따라 살아가는 것이다. 그 소리에 따라 말하고 말한바 대로 살아가고......
거울 속의 나를 향해 조용히 말을 건네 본다. “욕심을 버려. 하나면 되는데 둘을 가지려는 것, 그 둘을 가지려하는 욕심이 네 얼굴을 항상 둘로 가르고 있잖아.”
“나는 내 마음 속으로는 하느님의 율법을 반기지만 내 몸 속에는 내 이성의 법과 대결하여 싸우고 있는 다른 법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 법은 나를 사로잡아 내 몸 속에 있는 죄의 법의 종이 되게 합니다. 나는 과연 비참한 인간입니다. 누가 이 죽음의 육체에서 나를 구해 줄 것입니까?
고맙게도 하느님께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를 구해 주십니다.“(로마7,22-25)
한국외방선교회 최강 스테파노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