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속에서의 조용한 대결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8“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누구든지 사람들 앞에서 나를 안다고 증언하면, 사람의 아들도 하느님의 천사들 앞에서 그를 안다고 증언할 것이다. 9그러나 사람들 앞에서 나를 모른다고 하는 자는, 사람의 아들도 하느님의 천사들 앞에서 그를 모른다고 할 것이다.
10사람의 아들을 거슬러 말하는 자는 모두 용서받을 것이다. 그러나 성령을 모독하는 말을 하는 자는 용서받지 못할 것이다. 11너희는 회당이나 관청이나 관아에 끌려갈 때, 어떻게 답변할까, 무엇으로 답변할까, 또 무엇을 말할까 걱정하지 마라. 12너희가 해야 할 말을 성령께서 그때에 알려주실 것이다.”
|
◆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는 것이 늘 쉽지만은 않습니다. 아니 때로는 고통스럽기도 합니다. 마치 베드로가 새벽닭이 울기 전에 세 번이나 다급하게 예수님을 부인했던 그 순간처럼 말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사람들 앞에서 나를 안다고 증언’하라는 말씀을 통해 우리에게 ‘그리스도인의 삶’에 대한 일관되고 당당한 태도를 주문하고 계십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자기 정체성’을 유지한다는 것이 반드시 세상에 떠들썩하게 드러나는 것만은 아닐 것입니다. 오히려 세상 속에 함께 섞이지만, 그렇다고 비굴해지지 않은 채 ‘세상 한복판에서 자기를 표현’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국가와 인류에 대한 사랑을 침이 마르도록 이야기하면서도 막상 자기 눈앞에 있는 ‘한 사람’을 사랑해야 할 자리에서는 백기를 들어버린 뼈아픈 경험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요구하시는 삶의 일관성은 자신의 의로움에 대한 도취가 아니라 바로 ‘지금’, ‘내가 선 이 자리’에서 자신의 그리스도인 됨을 구현해 내는, 살아 있는 자기 표현이고 존재의 발산입니다. 어느 시인의 말처럼 꽃은 주변의 시끄러움과 매캐한 대기오염 속에 살지만 꽃이기를 한 번도 포기하지 않은 채 말없이 자신의 향기를 세상으로 뿜어냅니다. 그리스도인으로 산다는 것은 이처럼 세상을 향한 ‘조용하고도 당당한 대결’입니다.
오일환(가톨릭대학교 의과대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