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복음에 대한 짧은 생각] 20111016
작성자김용현 쪽지 캡슐 작성일2011-10-16 조회수313 추천수2 반대(0) 신고
2011년 10월 16일 연중 제 29 주일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22,15-21

그때에 바리사이들이 나가서, 어떻게 하면 말로 예수님께 올가미를 씌울까 하고 의논하였다. 그러고는 저희 제자들을 헤로데 당원들과 함께 예수님께 보내어 이렇게 말하였다.

“스승님, 저희는 스승님께서 진실하시고 하느님의 길을 참되게 가르치시며 아무도 꺼리지 않으시는 줄 압니다. 과연 스승님은 사람을 그 신분에 따라 판단하지 않으십니다.

그러니 스승님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말씀해 주십시오. 황제에게 세금을 내는 것이 합당합니까, 합당하지 않습니까?”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악의를 아시고 말씀하셨다. “위선자들아, 너희는 어찌하여 나를 시험하느냐? 세금으로 내는 돈을 나에게 보여라.”

그들이 데나리온 한 닢을 가져오자 예수님께서, “이 초상과 글자가 누구의 것이냐?” 하고 물으셨다.

그들이 “황제의 것입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황제의 것은 황제에게 돌려주고, 하느님의 것은 하느님께 돌려 드려라.”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


"과연 스승님은 사람을 그 신분에 따라 판단하지 않으십니다."


같은 하느님의 백성이면서 삶에 있어서 신분을 통한 차별을 이루고 살았던 이스라엘은 그 신분의 윗자리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하느님을 말하고, 가르치며 행동하는 예수님 때문에 혼란을 겪게 됩니다. 그동안 지시와 통제와 차별의 기반이 되었던 율법과 예언서의 본 정신이 몰라도 되고, 몰라야 하는 일반 백성들 사이에서 선포되고 가르쳐지고 있다는 것이 스승의 자리에 있었던 이들에게는 예상치 못한 충격이 됩니다.

더군다나 입으로 하느님을 말하면서도 삶에 있어서는 실천하지 않고 오히려 하느님이라는 이름 덕분에 아무에게도 침해받지 않던 삶의 구조가 무너지고 자신들의 속내들이 드러나고 비판당하면서 이를 가만 앉아서 당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습니다.

이런 비판이 내부에서 나왔으면 좋으련만 혹은 하느님의 예언자라는 사람이 왕으로부터 내려오는 식의 무서운 예언으로 말했다면 그나마 수월하게 따르련만 이도저도 아닌 예수라는 존재는 그야말로 그들에게 골치덩어리였습니다.

보통 백성들과 다르지 않은 신분이니 상종하기에도 천하고, 그 가르침이라는 것이 틀리지 않으니 딱히 반박할 거리도 없습니다. 그들도 혹여나 그것에 대해 가르칠 때는 그렇게 해야 하니 말입니다. 그래서 뛰어난 지식의 스승들이었으니, 그들이 생각해낸 것은 예수님을 권위로 내리누르지 못하니 스스로 무너질만한 실수를 만들어 내고자 했습니다.



그때에 바리사이들이 나가서, 어떻게 하면 말로 예수님께 올가미를 씌울까 하고 의논하였다.



그리고는 이스라엘 모두가 안고 있는 문제, 곧 하느님의 백성이면서도 로마의 지배를 받고 있는 자신들의 처지에 대해 물어보고자 합니다. 그들 스스로도 살기 위해 세금을 내면서도 언젠가 독립을 꿈꾸는 이들이었기에 어찌 말해야 할 지 어려운 숙제였습니다.

그럼에도 그들에게 이 문제가 가능했던 이유는 예수님의 말씀이 하느님을 말하면서도 신분을 토대로 실천하려 하지 않는 이들의 문제였기 때문에 오히려 그렇게 사는 자신들의 처지가 도움이 된 셈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그렇다치고 당신은 어찌 사는가? 하는 이야기가 됩니다.


그렇게 하느님을 잘 아는 사람이 이 상황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하느님을 섬긴다 말하면서도 황제를 섬기는 것은 어찌 설명해야 하는가? 지금으로 바꾸면 하느님을 믿는 것이 세상 사는 것과 이치가 맞지 않는데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하느님 말씀은 모두 옳지만 실천하기에 세상은 다르지 않는가? 하는 문제들입니다.



“스승님, 저희는 스승님께서 진실하시고 하느님의 길을 참되게 가르치시며 아무도 꺼리지 않으시는 줄 압니다. 과연 스승님은 사람을 그 신분에 따라 판단하지 않으십니다.

그러니 스승님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말씀해 주십시오. 황제에게 세금을 내는 것이 합당합니까, 합당하지 않습니까?”




어쩔 수 없는 상황을 만들고자 했던 바리사이들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질문은 이방인들이나 비신자들이 신자들의 모습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면 모를까 하느님을 믿고 사는 이들이, 그것도 스승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던질 질문은 아닙니다. 오히려 예수님께 올가미를 씌우기 위해 자신들의 잘못을 인정해 버리는 꼴이 됩니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님을 인정하는 듯 온갖 말로 칭찬을 하고는 우리는 어차피 이렇게 산다고 치고 당신은 어떠한가를 묻고 있습니다. 자신들도 대답하지 못할 이야기로 예수님의 입장을 곤란하게 하려는 바리사이들의 모습은 그들이 내 뱉은 말 만큼 어둡고 나쁜 행동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그들이 숨겨 두었던 마음이 밖으로 드러나는 순간입니다. 예수님은 그들의 질문에 비유가 아닌 직접적인 대답을 내 놓으십니다.



“위선자들아, 너희는 어찌하여 나를 시험하느냐? 세금으로 내는 돈을 나에게 보여라.”



황제에게 세금을 내는 것이 합당한가의 문제는 현실의 질서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하는 문제로 내민 것입니다. 어려울 것 같은 이 문제에 예수님은 너무나 간단히 답을 제시하십니다.



그들이 데나리온 한 닢을 가져오자 예수님께서, “이 초상과 글자가 누구의 것이냐?” 하고 물으셨다.

그들이 “황제의 것입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황제의 것은 황제에게 돌려주고, 하느님의 것은 하느님께 돌려 드려라.”



현실이라는 것을 통해 예수님을 무너뜨리려 했던 바리사이들은 예수님의 말씀에 말문이 닫혀 버립니다. 그들은 '당신도 현실에서 살기위해선 어쩔 수 없는 사람아닌가'하고 물었지만 예수님은 세상 질서와 하느님의 말씀을 억지로 연결시켜 삶을 무너뜨릴 수 없음을 이야기하십니다.


어떤 이들은 이 이야기를 하느님의 것과 세상의 것은 다르니 이를 구분해서 살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하고 가르치곤 합니다. 그래서 세상의 문제에는 간섭하지 말고 하느님의 것에만 신경을 써야 한다고들 말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렇게 예수님의 말씀 하나만을 가지고 이야기를 하려하면 예수님의 이 말씀은 바리사이들의 잘못된 삶이 당연한 것으로 만들어 주는 명분이 될 수도 있습니다.


예수님의 대답은 오히려 바리사이들에게 세상의 처지를 이용해서 하느님을 무능하게 만드는 짓을 하지 말라는 경고입니다. 그들은 황제를 이용해서 하느님을 오히려 그와 동일한 조건으로 만들어 예수님을 시험했습니다. 예수님을 무너뜨리기 위해 황제 뒤에 숨은 것입니다.

하느님을 안다는 사람들이, 하느님을 가르친다는 사람들이 세상 사는 것이 그렇지 않으니 당신은 말에 얼마나 책임을 질 수 있는가 시비를 걸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들을 위선자라고 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이 질문이 어떻게 나온 것인지 생각해야 합니다. 그것은 회당의 윗자리나 스승으로 사는 것은 좋아하면서 뒤로는 자신의 이기심을 챙기는 삶을 살았던 바리사이들이 백성들에게 참 하느님의 사랑을 가르치시는 예수님의 지적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정말 문제는 하느님의 진리를 배우지 못하고, 보지도 못했던 백성들이나 그들을 가르치는 스승들 모두가 하느님 말씀대로 살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올바른 것을 알지도 보지도 배우지도 못한 백성들의 삶이란 그저 하느님께 예물을 바치고 축복을 청하는 것이 전부였을 것이고, 그들의 예물을 받고, 인사를 받으며, 존경을 먹고 사는 이들 또한 하느님의 말씀을 따를 생각이 없었다는 말입니다.


그러면서 정작 잘못된 삶을 지적하시는 하느님께 했던 말이 "황제에게 세금을 내야 합니까?" 였습니다. 살기 위해서 어쩔 수 없지 않습니까? 라는 말로 하느님은 아예 무시해버리는 하느님을 가르치는 이들의 놀라운 모습입니다.


오늘 복음으로 혹시나 세상의 삶을 하느님을 분리시키려는 이들은 기억해야 합니다. 예수님 대답은 우리를 현실과 갈라놓으시는 가르침이 아니라 현실을 그렇게 잘못 살고 있는 이들에게 되돌려 주는 말씀이라는 것을 말입니다. 잘못된 이들이 예수님을 잡으려고 놓은 덫을 이용해서 우리 삶을 편하게 만들려는 시도를 한다면 우리 역시 복음의 바리사이들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우리의 삶을 하느님의 말씀을 지켜 살아간다면 세상의 법과 우리의 삶이 다르다 할지라도 항상 우리는 그 세상을 변화시키는 자리에 있을 것입니다.


.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