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가해 연중 29주간 월요일 - 계산하는 인간
원숭이가 많은 지역에서 원숭이를 잡는 방법은, 단단히 매여 있는 둥근 통에 원숭이의 손이 들어가 먹이를 하나 간신히 꺼낼 수 있을 정도의 구멍을 뚫고, 그 통 안에는 원숭이가 가장 좋아하는 먹이를 많이 넣어둔다고 합니다.
원숭이가 둥근 통 가까이 와서 먹이 냄새를 맡고 구멍 안에 가득 들어있는 맛있는 먹이를 보고는 그 통 주변을 한없이 뱅뱅 돈다고 합니다.
다른 데는 볼 겨를도 없이 뱅뱅 돕니다. 그러다가 손을 그 구멍으로 넣어 적은 부스러기 먹이 하나를 꺼내서 입에 넣어 보고는 그만 환장을 합니다. 눈을 깜박거리면서 손을 깊숙이 넣어 손을 가지고 잡을 수 있는 만큼 먹이를 잡습니다. 그리고 손을 빼려니 손이 빠지지 않습니다. 원숭이는 왜 손이 통에서 빠지지 않는지를 모릅니다.
그래서 원숭이는 손을 먹이통에 넣은 채 뱅글뱅글 돕니다. 덫을 놓았던 사람이 이것을 보고 걸렸다 생각하고 좇아오면 원숭이는 도망을 쳐야겠는데 손이 걸려 도망칠 수가 없습니다. 그냥 안타까워서 어쩔 줄을 모릅니다. 이 원숭이가 도망칠 수 있는 길은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아쉽지만 손에 잡고 있는 먹이를 포기하면 쉽게 빠질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 원숭이는 그것을 하지 못해서 뱅뱅 돌다가 눈이 말똥말똥한 채로 잡히고 만다고 합니다.
이와 비슷한 경우로 새를 잡기도 하는데 소금 한 그릇을 놓고 물이 많이 담긴 그릇을 옆에 두면 새들이 와서 소금을 먹고 목이 말라 물을 마시는 것을 반복하다가 결국 배가 불러 날지 못하는 지경까지 되기도 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멍청한 새들은 사냥꾼들에게 쉽게 잡히고 만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동물들이 멍청하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그런 집착으로 많은 인간들도 사탄의 꾐에 넘어갑니다.
오늘 복음에서 어떤 사람이 예수님께 자신의 형에게 자신에게도 유산을 나누어 달라고 말해달라고 청합니다. 유산이라면 형제에게 모두 주었을 테지만 형이 모두 가로채려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시선은 전혀 돈에 있지 않습니다.
“사람아, 누가 나를 너희의 재판관이나 중재인으로 세웠단 말이냐?”
그러면서 어리석은 부자의 비유를 들어주시며 돈보다는 영혼구원에 가장 중요한 비중을 두고 살아야함을 일깨워주십니다.
사실 성경에는 가난한 사람이 행복하고 하늘나라를 차지할 것이라고 합니다. 재물이 많으면 걱정도 많아지게 마련입니다.
대 정복자 알렉산더는 이런 말을 하였습니다.
“내가 왕이 아니었다면 디오게네스가 되기를 원했을 것이다.”
어느 날 알렉산더 대왕은 옷도 집도 먹을 것도 없이 살아가는 위대한 철학자 디오게네스를 찾아갔습니다. 알렉산더 대왕은 그를 바라보며 혹 자신이 도와줄 것이 없느냐고 물었습니다. 디오게네스는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예, 한 가지 있습니다. 죄송한데 좀 비켜주시겠습니까? 햇볕을 가리고 계셔서요.”
요한 바오로 2세께서도 돌아가시기 전에 당신을 둘러있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좀 비켜주시겠습니까? 십자가가 안 보여서요.”
이런 사람들에게 마귀가 어떻게 세상 것으로 유혹할 수 있겠습니까? 욕심이 있는 사람이 유혹에 당하는 것입니다.
바다에서 고기를 잡아 바로 회를 쳐서 먹을 때 신기한 것 하나는 바다에 사는데도 고기에서 짠 맛이 하나도 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사실 살아있는 물고기는 바닷물을 먹고 살기는 하지만 그 소금기를 모두 배출합니다. 소금에 절여지기 시작하면 이미 죽었다는 뜻입니다.
세상 것이 물들어 가면 이미 영적으로는 죽어가는 상태입니다. 동전이 가득 찬 공중전화는 통화기능까지 잃습니다. 동전을 빼 내야 다시 동전을 넣고 전화를 할 수 있습니다. 내 안에 세상 것들로 가득 차면 하느님과의 통교가 단절 되어 죽게 되는 것입니다.
나도 모르게 쌓이는 세상의 욕심을 자꾸 빼내지 않는다면 어느 순간엔가는 세상 것들로 절여지게 되어 있습니다.
내 안에 쌓이는 이런 욕심들을 끊기 위해서는 계산하며 사는 습관을 버려야합니다. 빵 다섯 개로 어떻게 오천 명을 먹이느냐고 생각하면 신앙인이 아닙니다. 신앙인은 나의 계획이나 계산을 넘어서서 우리를 살리시는 분이 그리스도이시라는 것을 굳게 믿고 계산하지 않고 맡기는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주님의 마음을 본받는 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