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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연중 제30주일(전교 주일)신앙인의 '꼴값'[김웅열 토마스 아퀴나스 신부님]
작성자박명옥 쪽지 캡슐 작성일2011-10-23 조회수377 추천수2 반대(0) 신고
                                                             
 
 
 
 
 
 

            배티 성지 김웅열 토마스 아퀴나스 신부님

 

                     

                              

  

 

 

 

†찬미예수님

어느 시골집에서 가축을 많이 길렀는데 그 중에 당나귀는 아침에 해가 뜨면서부터

들에 나가 온몸이 뼈 빠지게 일을 했습니다.

그런데 한집에 사는 개를 보니 개는 완전히 놀고먹어~

하는 거라고는 낯선 사람이 오면 멍멍 짖고, 주인이 오면 꼬리나 흔들어주고, 때 되면 밥 먹고~

당나귀가 볼 때 너무너무 억울한 거야.

‘나는 등골이 으스러지게 일하는데 저놈은 왜 놀고먹을까?’

‘나도 당나귀지만 개처럼 흉내를 내보자.’

 

 

어느 날 주인이 대문을 열고 들어오는데 개처럼 꼬리를 흔들면서

그 큰놈이 앞발을 들고 주인한테 덤볐어요.

주인은 들어오다가 당나귀 앞발에 밀려서 그냥 '꽈당' 하고 뒤로 자빠졌어요.

당나귀에게 돌아온 것은 칭찬이 아니라 몽둥이 세례였습니다.

당나귀는 그날 밤 베개를 붙들고 혼자 질질 짜면서

‘왜 그럴까? 개처럼 똑같이 했는데 나는 왜 얻어터졌을까?’

 

 

우리 말 중에 ‘꼴값’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사전적인 의미로 ‘꼴값’은 ‘지 꼴의 값’ 을 할 줄 아는 사람

주제파악을 잘 할 줄 아는 사람에게 쓰였던 말이었는데

지금은 주제파악을 못하는 사람을 손가락질 하면서

‘아유 저거 꼴값하고 앉았네.’ 그렇게 변했어요.

 

 

당나귀얘기를 하나 더 해드리죠.

이태리 어느 시골 마을이 동네가 다 천주교 촌인 곳에

성당에서 당나귀 한 마리를 길렀습니다.

그 당나귀는 일 년에 몇 번 그 동네 수호성인의 사진을 등에다 싣고 앞에서 향을 뿌리고

성체거동을 하듯이 온 동네를 성인의 사진을 모시고 다니는 그런 일만하는 당나귀야.

어떤 때는 예수님 사진도 거기에 모셔놓았겠지요.

당나귀는 그것도 모르고 자기만 지나가면 사람들이 다 고개를 숙이고 성호를 긋고 그러니까

‘야~ 내가 대단한 당나귀군. 인간들이 나만 보면 고개를 숙이면서 꼼짝도 못하는 구나!’

 

이 당나귀가 어느 날 마구간을 빠져나와서 동네 시찰을 나갔습니다.

그런데 사람들 앞에 지나가는데도

“아이구, 저 성당 당나귀가 기어 나왔어?”

당나귀는 속으로 ‘이놈들아! 내가 누군지 알고 고개를 빨리 안 숙여?’

당나귀 등에 있는 성화를 보고 사람들이 절을 했지, 당나귀를 보고 절을 한 것이 아니지요.

한 마디로 꼴값을 잘못한 것이지요.

 

 

우리 모두는 자기의 꼴의 값이 있습니다.

사제는 사제의 꼴의 값이 있고, 수녀들도 수녀들의 꼴의 값이 있지요.

 

 

예를 들어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육자들이 돈 맛을 알아서

촌지를 받기 시작하면 그건 나쁜 의미의 꼴값을 하고 앉아있는 겁니다.

군인이 나라를 지키지 않고 정권을 잡으려고 쿠데타를 일으키면

그것도 나쁜 의미의 꼴값을 하고 앉아있는 겁니다.

 

 

사제가 사제 생활을 올바로 못할 때는

‘참 우리 신부님 꼴값해.’  손가락질을 받습니다.

 

 

아버지나 어머니가 자기 위치를 지키지 못하면

늘 손가락질당하고 '꼴값' 한다는 얘기에서 벗어나지를 못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분명히 '꼴값' 을 하고 살아야합니다.

 

 

오늘복음에도 제베데오의 아들 야고보와 요한이 예수님께 로비를 합니다.

‘나중에 왕이 되시면 한사람은 오른쪽 한사람은 왼쪽 국무총리와 내무부장관 시켜주십시오.’

그것을 듣고 있던 열 제자가 같이 화를 내요.

‘저놈들이 저게 선수를 치는구나!’

제자들은 자기 꼴값을 못하고 있었어요.

 

예수님께서는

‘너희들이 마셔야할 잔이 뭔지나 알고 오른쪽 왼쪽에 앉게 해달라는 것이냐? 정신 좀 차리고

꼴값 좀 해라. 내가 너희들을 부른 그 목적을 왜 잃어버리느냐?’

 

제자들은 예수님이 돌아가시고 나서 부활하셔서 다락방에 나타나셨을 때도 그 뜻을 몰랐고,

성령이 임하셨을 때야 비로소 예수님의 삼년간의 공생활의 의미를 알아차렸던 것입니다.

주님 안에서 우리가 올바른 의미의 꼴의 값을 하고 살려면 분명히 지켜야할 계명이 있습니다.

 

우리들은 모세로부터 십계명을 받았습니다.

 

저는 그 십계명을 풀이해서 우리 신자들에게 신앙생활의 십계명을 만들어서 나누어 준 적이 있습니다.

 

 

야고보와 요한처럼 꼴값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 보시기에 아름답게 살기 위해서

열 가지의 신앙생활의 십계명을 여러분에게 제시합니다.

 

 

첫 번째, 기도로 하루를 시작하라.

기도하지 않는 자, 특별히 하루의 시작을 기도로 시작하지 않는 자는

하루 종일 나쁜 의미의 꼴값을 하고 삽니다.

의인들이나 이방인들에게 손가락질을 당하고 삽니다.

‘아유 천주교 신자가 왜 저래?’

아침에 눈뜨면서부터 자신을 축성하면서 기도로 하루를 시작하십시오.

 

축복받은 신앙생활의 십계명의 첫 번째는

사제건, 수도자건, 평신도건, 주교건, 교황이건.....

반드시 눈이 떠지자마자 기도로 시작해야합니다.

 

화살기도 하십시오.

5분 안에 끝나는 그런 기도도 중요하지만 정말 살아있는 기도를 하십시오.

‘주님 살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유혹을 이길 수 있도록 도와주시고

오늘 하루가 내 생애의 마지막인 것처럼 살게 해주십시오.’

기도로 하루를 시작하는 것이 꼴값하는 내 첫 번째 단추입니다.

 

 

두 번째, 열심히 성서를 봉독하고 쓰십시오.

하느님의 말씀을 읽고 머릿속에 담아두지 않으면 우리는 가르침이 없기 때문에

자기 양심이 세상의 가장 정확한 주관으로 알고 판단으로 기준으로 알고 압니다,

 

얼굴생김새가 다르듯이 모두 자기 주관적인 잣대가 있습니다.

문제는 그 잣대가 하나도 맞지 않다는 것입니다.

맞지도 않는 눈금을 가지고 남편을 재고, 이웃을 재고, 본당신부를 재고, 신자들을 잽니다.

 

 

성서를 통해서 말씀을 듣고 써 나갈 때 그것이 쌍날칼이 되어

우리의 관절과 골수를 쪼개어 속에 품은 생각을 드러내서

어떤 경우가 닥치더라도, 사람들 앞에 끌려 나가더라도

성령께서 내 안에 박혀 있는 말을 끄집어내서 하느님의 말을 전하게 합니다.

 

 

죽을 때까지 구약과 신약을 읽고 죽는 천주교 신자들이 몇 %나 되겠습니까?

여러분이 세례 받은 지 십년, 20년... 30년이 이 지나고

매일 신문과 잡지는 보더라도 성서 신구약 한 번이라도 읽는 사람이 몇 %나 되겠습니까?

 

 

성서 읽지 않고 어찌 하느님을 알겠습니까?

예로니모 성인이 말씀하시기를 성서를 읽지 않고

하느님을 안다고 하는 것은 새빨간 거짓말쟁이다고 그랬습니다.

 

열 번 듣는 것보다 한 번 읽는 것이 은혜롭고

열 번 읽는 것보다 한 번 쓰는 것이 더 은혜롭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꼴값하는 두 번째 울타리는 성서를 가까이 하는 겁니다.

 

 

세 번째, 주일미사에 어떤 일이 있어도 참례해야 합니다.

아파 죽을 사람이 아니면 기어서라도 나와 미사에 참례하라.

 

주일에 한 번 주님의 성체를 영하는 것 가지고는 약발이 일주일 동안 못 갑니다.

 

혈압이 높은 사람은 매일 혈압약을 챙겨먹고

비타민을 챙겨먹고, 보약을 챙겨먹는데 성체가 보약에 비하겠습니끼?

주일미사 참석하는 건 기본이고, 거기에 일주일에 한 두 번이라도

미사에 참례해서 성체를 영해야만 그 힘으로 우리는 올바른 이의 꼴값을 하고 삽니다.

 

 

네 번째, 하느님께 기쁜 마음으로 봉헌하라.

하느님께 봉헌하면서도 늘 인색하고, 하느님께 빼앗기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못이 박히도록 하는 이야기지만 봉헌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봉헌이란  애초에 하느님의 것을 하느님께 되돌려 드리는 것이 봉헌의 뜻이요, 의미입니다.

 

 

청지기는 주인의 재산을 관리해서 주인이 원하는 대로 써야 되고, 때가 되어

“이제는 돌려다오!”

했을 때 돌려줘야 하는데 청지기가 주인 행세를 할 때는 그 자리에서 쫓겨나게 됩니다.

 

 

부끄럽고 창피한 일이지만 우리 감곡신자들 교무금 내는 사람이 50%가 안 됩니다.

저는 이곳에 와서 5년 가깝도록 한 번도 돈 얘기 한 적 없습니다.

대개는 하느님께 봉헌하지 않는 사람들이 뒤에서 궁시렁댑니다.

‘뭐 순례자들 때문에 불편하고...어쩌고~ 저쩌고~’

 

아름다운 성지를 위해 눈꼽만큼도 봉헌하지 않는 사람이 항상 뒤에서 마귀짓거리를 합니다.

올겨울에 한사람도 빠짐없이 교무금책정을 할 겁니다.

 

교무금 봉헌하는 것 제가 갖는 것이 아니라 여러분들 구원을 위해서 하라는 겁니다.

봉헌은 선택사항이 아니라 의무사항입니다.

인색하게 마지못해 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 기쁜 마음으로 봉헌해야 합니다.

 

 

다섯 번째, 열심히 전교하라!

오늘 전교주일입니다.

전교도 역시 선택사항이 아니고 의무입니다.

우리는 주님에게 영적인 빚을 지고 있는 사람입니다.

누군가에 의해서 내가 천주교신자가 되었다면 반드시 갚아야 됩니다.

 

열 번의 말보다도 살아 있는 한 번의 좋은 표양이 그 사람 가슴에 불을 지릅니다.

 

성당 열심히 다니고 레지오단장까지 하는 자매가 집안 살림은 돌보지 않고, 남편을 발가락의

때만큼도 안 여기고, 시어머니를 늘 업신여긴다면 그런 자매를 보고 성당에 나가겠습니까?

 

 

성당에서 오만 일을 하는 자매가 그 동네에 돌아다니면서

돈 떼어먹는데 1등이고, 남의 말 험담하는데 1등이고, 없는 말 지어내는데 1등이라면....

이방인들이 그 사람을 보고 어찌 교회에 나가겠습니까?

입에서 하는 전교보다 수 천배 힘이 있는 것이 올바른 표양의 전교입니다.

전교할 때는 특별히 입을 조심해야 합니다.

 

 

여섯 번째 울타리는 교우들과 사귀고, 신앙서적을 읽어라.

천국 문 앞에 가면 오래전부터 현수막이 걸려 있습니다.

그 현수막에는 뭐라고 쓰여 있느냐.

‘개인 사절 단체 환영’

하느님께서는 어느 성당 특별한 사람 한 둘이 구원받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감곡성당 모든 신자들이 구원받기를 원하고

그 구역 반원, 레지오 팀....모두가 구원받기 원합니다.

 

혼자서 성인성녀 되겠다고 주님 그것 원치 않습니다

다른 사람을 만날 때는 예수님이 하신 것처럼 ‘모든 이의 모든 것’ 이 되어야 합니다.

 

사람들 앞에서 잘난 척 하지 마십시오.

아무리 많이 배우고 많이 가졌다고 그것 다 가지고 갈 겁니까?

늘 겸손한 마음으로 교우들과 사귀십시오.

 

그리고 앞을 다투어 교우들에게 이로운 말을 찾아서 하십시오.

근거 없는 말 하지 말고, 험담하는 말, 떠들지 말고 앞을 다투어 이로운 말 하십시오.

 

 

신앙서적을 읽으라고 그랬습니다.

올 한 해 동안 여러분들 신앙서적 몇 권이나 읽었습니까?

 

TV 주말 연속극, 일일 연속극은 하나도 빠지지 않고 보겠지요.

그 시간에 영적 독서, 얼마나 하셨습니까?

성인들의 삶을 얼마나 묵상하셨습니까?

우리 신자들, 아무리 못 읽어도 1년에 두 권은 영적서적 읽어야 됩니다.

 한 평생 한 권도 안 읽는 사람, 많습니다.

그러니까 무식하다 소리 듣는 겁니다.

주일미사에만 덜렁 앉아 있다고 해서 신앙이 크는 것이 아니라 배워야 됩니다.

 

장님이 장님을 인도하면 구덩이로 빠질 수밖에 없습니다.

 

사제들도 공부해야 됩니다.

저는 한평생 교우들을 가르치는 피정지도 신부이지만 지금도 교리공부를 합니다.

매일같이 교리책을 펴놓고 읽고 외우고, 묵상하고 공부합니다.

 

 

일곱 번째, 열심히 봉사하고 이웃을 사랑하라.

특별히 봉사하고 난 다음에 티내지 마십시오.

나 이렇게 열심히 봉사한다는 것, 하느님만 알고 계시면 됩니다.

봉사하고 난 다음에 찾아오는 유혹은 내가 이렇게 이쁜 짓 하는 것 본당신부님이 아셔야 되는데...

대모님께 쪼로록 전화해서

“대모님, 이것 대모님만 알아, 나 어디 나가서 일하고 있거든..이것 신부님 귀에 들어가면 안 돼!”

그 말은 대모님이 나팔 좀 불어서 우리 신부님 귀에도 들어가고, 수녀님 귀에도 들어가게 해 주세요.

그 다음 주일 신부님이

“마리아, 이리 와 봐..세상에 어떻게 그렇게 이쁜 일을 해? 어디 가서 봉사한다며?”

칭찬을 받을지언정 그 자매는 하늘에 쌓아 놓은 것 아무것도 없습니다.

왼손이 한 것 왼손이 했다고 떠들고 다니고, 오른 손이 한 것 오른 손이 했다고 떠들고 다니니

천국에는 기록된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이웃을 위해 열심히 봉사하되 봉사하고 난 다음에 티를 내지 마시라는 것,

아무도 칭찬해 주는 사람이 없어도 하느님이 알고 계시고

성모님이 아신다고 그것을 알고 계셔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 신자들이 꼴값하는 모습입니다.

 

 

여덟 번째, 언행에 조심하고 모든 일에 절제하라!

우리들이 짓는 죄 90%는 전부 입에서 나오는 죄입니다.

오죽하면 혀를 다스리는 자가 자기의 영혼을 다스린다고 했습니까?.

오죽하면 창조주 하느님이 목구멍 깊숙한 곳에 혀를 붙여두었겠습니까?

왜냐?

저 혓바닥 잘못 놀리면 레지오가 뒤집어지고, 구역반이 뒤집어지고,

본당이 뒤집어진다는 걸 창조주 하느님이 알고 계셨기 때문에~

 

처음에는 혀를 겨드랑이 밑에다 붙여놓았다고 그러십니다.

그런데 걸을 때마다 아주 불편해~

그 다음에는 잔등에다 붙여놓았더니 런닝셔츠 입을 때마다 뒤집어져.

고민고민하다가 붙여놓은 것이 어디라구요?

목젖 깊숙한 곳에다가 붙였어요.

 

그래도 불안하셔가지고 이빨로 담을 쳐주고

래도 불안해서 두꺼운 가죽을 하나 더 대어 주었어요.

가죽이 뭡니까? 입술이지요.

 

그렇게 깊숙한 곳에 숨겨놓은 것이 혓바닥인데

할머니들은 틀니까지 빼가면서 침 튀어가면서 남 얘기하고..

우리 천주교신자들 정말 언행에 조심하셔야 됩니다.

 

특별히 사제, 수도자들에 대한 말 늘 조심하십시오.

마귀는 신자들의 입을 통해서 사제들을 많늘 거꾸러트리려고 그럽니다.

 

 

제가 사람들 앞에 많이 노출이 되다보니까

스토커는 영화배우한테만 있는 줄 알았더니 저한테도 스토커가 많습니다.

스토커가 무섭다는 것 알았습니다.

 

 

평화방송을 보고 지 혼자 좋아서 날뜁니다.

혼자 찾아와서 사무실에 들어가고 사제관에 문 열고 막 들어오고...

좋아죽겠다는 거야~ 좋아죽겠으면 어떡하자는 거야!

경찰 불러서 끄집어내고...끄집어내고....

몇 개월 지나고 나니까 저 미국 쪽에서 전화 한 통화가 왔어요.

“신부님, 이쪽에 이상한 소문이 돕니다.”

“뭔 소문?”

“어떤 스토커가 자꾸 온다면서요?”

“응, 이상한 여자가 있어.”

“그 여자에게서 난 이상한 소문이 LA 까지 들리는데요.”

그 여자한테서 소문이 났는데 신부님이 임신시키고, 낙태시켜가지고

그 여자가 돌아가지고 한이 맺혀서 거기에 자꾸 쫓아오고...또 찾아 온다고 소문이 났어요.

 

어느 인간 입에서 소설이 꾸며졌겠지요.

그게 돌고 돌아서 태평양까지 건너갔겠지요.

참 별의별 이야기 다 듣고 삽니다.

그 인간 나중에 얼마나 큰 심판을 받으려고...

내 그 스토커 손이나 잡아보고 그런 소리 들으면 억울하지나 않아~

 

입 절제, 손 절제, 돈 절제, 성욕 절제하십시오.

이것이 꼴값하고 살아가는 여덟 번째입니다.

 

 

아홉 번째 황금률을 실행하라.

성서말씀이 모두 아름답지만 황금률은 마태복음 7장 12절입니다.

‘너희는 남에게서 바라는 대로 남에게 해 주어라. 이것이 율법과 예언서의 정신이다’

 

남에게서 바라는 대로 해주는 것이 황금률입니다.

이렇게 살아야 우리는 좋은 의미의 꼴값을 하는 겁니다.

 

 

열 번째, 성령의 충만함을 믿고 성령께 늘 청하라.

사제도 수도자도, 평신도도...매일같이 성령께 청해야 합니다.

성령에 대한 이 체험이 없으면 직업인으로 변합니다.

성령과 함께 하는 사람은 늘 신선하고 새롭습니다. 그리고 담대합니다.

또 자신의 꼴을 알기 때문에 크게 어긋나지 않습니다.

성령이 내 안에서 영적분별을 늘 시키기 때문입니다.

성령의 충만함을 믿고, 성령을 깨닫고, 성령께 청하라고 그랬습니다.

 

 

오늘 복음에 나오는 야고버와 요한처럼

“나 국무총리 시켜주고, 이놈은 부총리 시켜주세요.”

예수님이 그 말을 들으니 얼마나 한심했겠습니까?

‘내가 해야 할 말을 저놈들이 먼저 하네.’

열 제자가 시샘을 하고 같이 화를 내요.

참~ 3년 동안 데리고 다니면서 그토록 많이 하느님의 나라를 설명하고 기적을 보였건만, 내가

이제 수난을 당해야 될 죽음이 눈앞에 와 있는데도 제자라고 하는 것들이 자리다툼하고 앉아 있으니....

 

 

도끼 등에 면도날 붙이기가 어렵다는 말이 있습니다.

생각이 다르다는 이야기지요.

 

예수님의 생각이 다르고 제자들의 생각이 다릅니다.

 

주님이 우리들을 보고 계실 때도 그렇게 딱한 마음이 드실 때가 많을 겁니다.

예수님은 오로지 병만 고쳐주는 기복적인 대상으로만 여긴다거나

문제만 해결해 주는 해결사로 안다거나

신앙을 악세사리 정도, 취미생활정도로 알 때 예수님은 오늘과 같이 똑같은 말을 하실 겁니다.

‘너희들이 나를 따르려면 네 십자가를 지고 따르라.’

 

축복받는 신앙생활, 십계명을 잘 지키면서 사람들에게 손가락질을 당하지 않고,

올바른 우리의 꼴을 하는......

종교인이 아니라 신앙인으로 살아갈 것을 다짐합시다. 아멘

 

 

     http://cafe.daum.net/thomas0714 주님의 느티나무 카페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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