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기도
오소서 성령님, 날마다 ‘사랑’이라는 영적 투쟁을 겪는 우리에게 힘을 주십시오.
세밀한 독서(Lectio)
오늘 복음은 사두가이들과의 부활논쟁(마태 22,2333)에 이어집니다. 이제 바리사이들이 ‘한데’ 모여듭니다.(34절) 시편 저자가 외친 것처럼 그들은 “주님을 거슬러, 그분의 기름부음받은 이를 거스르기”(시편 2,2) 위해 함께 모입니다. 그 가운데 율법 전문가가 “율법에서 가장 큰 계명이 무엇입니까?”(마태 22,36)라고 소리 높여 질문합니다.
예수님은 “네 마음을 다하고 네 목숨을 다하고 네 정신을 다하여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37절)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은 신명기 6장 5절에 나오는 말씀으로 모든 이스라엘이 하루에 두 번씩 외우는 셰마 기도문의 일부입니다. “이스라엘아, 들어라! 주 우리 하느님은 한 분이신 주님이시다.” 구약에서 하느님을 사랑하라는 것은 선택사항이 아니라 명령입니다. 이 사랑은 당신의 백성을 향한 그분의 사랑과 상응하는데(신명 4,37; 7,8; 10,15), 하느님에 대한 두려움, 그분에게 봉사하는 의무와 그분의 계명을 지키는 것이 포함됩니다. 하느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살찌고 기름진 번제물을 갖다 바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이 어떤 분이신지 제대로 알도록 힘쓰는 것입니다.(호세 6,6) 하느님이 죄 때문에 우리를 치셨지만, 동시에 우리의 상처를 싸매고 고쳐주시는 분임을 알고 그분께로 다시 돌아오는 것이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하느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언제나 팔을 벌리고 계시는 하느님께 돌아가 그 품에 안겨 눈물을 흘리는 일입니다.
하느님 사랑에 대한 감각은 그분이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것에 귀 기울일 때 시작됩니다. 하느님은 성경을 통해서 뿐 아니라 ‘사건’ 안에서도 끊임없이 말씀하십니다. 우리 생애에 일어나는 ‘사건’은 우리를 위한 하느님의 사랑이 무엇인지 제대로 알기를 바라시는 하느님의 ‘신호’입니다.
마리아는 구유에 누운 갓난아기를 찾아온 목자들의 일(루카 2,819 참조)과, 열두 살의 소년 예수를 예루살렘 성전에서 잃으셨던 사건(루카 2,4151 참조)을 겪으면서 하느님께 귀 기울이고 예수님과 당신 생애의 의미를 해석하십니다. 바오로는 다마스커스에서 예수님을 만난 ‘사건’에 귀 기울이고 평생 이 ‘사건’을 성찰하면서, 예수 그리스도한테서 드러난 하느님 아버지의 사랑을 전하는 것을 사도직 모토로 삼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하느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결국 바오로처럼 외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내가 지금 육신 안에서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시고 나를 위하여 당신 자신을 바치신 하느님의 아드님에 대한 믿음으로 사는 것입니다.”(갈라 2,20)
둘째 계명도 첫째 계명과 같습니다.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마태 22,39; 레위 19,18 참조) 율법과 예언서의 모든 계명이 여기에 수렴됩니다. 이웃을 사랑한다는 것은 이웃에게 악을 저지르지 않는 것입니다.(로마 13,10) 이웃 사랑은 ‘잘난 체하지 않고 서로 시비하지 않으며 서로 시기하지 않는 것’입니다.(갈라 5,26) 하느님의 사랑이 삶의 멜로디가 되어 춤을 추며 살아가는 사람들은 어떤 처지에 있는 사람이든지 정성껏 예의를 갖추어 대하고 결코 무례하지 않습니다. 이웃을 사랑하는 사람은 상황에 따라 자기 이익을 추구하지 않으며, 성을 내지 않고 앙심을 품지 않습니다. 진리를 발견하면 함께 기뻐하고, 모든 것을 덮어주고,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고 모든 것을 견디어 냅니다.(1코린 13,57 참조)
묵상(Meditatio)
교회는 “하느님 말씀에 대한 올바른 이해는 본문이 이야기하는 내용과 유사한 체험을 가진 사람들에게만 허락된다.”라고 가르칩니다.(<교회 안의 성서해석>, II, 가,2) 결국 체험하지 못하는 개인과 공동체는 성경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이지요. 하느님 말씀을 생명의 양식으로 여기고 살아가는 교회는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주신 계명,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에 성실하기 위해 ‘투쟁하는 사람들의 공동체’입니다. 우리가 사랑한다는 것은 ‘투쟁’입니다. 사랑은 가만히 앉아 있으면 저절로 찾아와 초인종을 누르는 그저 그런 손님이 아닙니다. 우리가 사랑한다는 것은 자신을 찾고, 자신에게 이로운 것을 찾으려는 아담의 본성을 거슬러 그리스도 안의 자유인으로 비상하려는 ‘영적인 투쟁’입니다. 사랑은 거리로 나가서 찾고 무릎을 꿇고 눈물로 구하고, 제발 우리 집에 와서 머물러 달라고 손을 잡고 모셔 와야 하는 귀한 손님입니다. 그리고 하느님 ‘사랑’과 인간에 대한 예의가 없으면 아무리 하느님의 일을 많이 한다 한들 아무것도 아닙니다.
기도(Oratio)
저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주님, 저의 힘이시여. 주님은 저의 반석, 저의 산성, 저의 구원자, 저의 하느님, 이 몸 피신하는 저의 바위, 저의 방패, 제 구원의 뿔, 저의 성채이십니다.(시편 18,23)
임숙희(가톨릭대학교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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