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한 번 묶여버리면
법을 지키는 것은 훌륭한 일입니다. 법을 지키지 않으면 많은 혼란이 오게 됩니다. 그러나 법은 법입니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사람을 위해서 존재해야지 법이 사람을 지배해서는 안 됩니다. 법의 의미와 내용을 지킬 수 있어야지 형식 때문에 내용을 외면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만일 어떤 법이 인간을 지배 하려 한다면 마땅히 거부되어야 합니다. 예를 들면 국법으로 낙태를 합법화 한다 할지라도 그것은 하느님의 법을 거스르는 것이기에 당연히 거부되어야 합니다. 배아줄기 세포를 이용하는 법을 만든다 할지라도 한 생명을 죽여서 다른 생명을 살리는 한 결코 정당화 될 수 없습니다. 모든 생명은 똑같이 존엄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것을 확실히 보여주셨습니다.
한 회당장이 안식일에 병을 고쳐주시는 예수님을 보고 분개하였습니다. 그는 안식일에는 일을 해서는 안 된다는 전통에 매여 있었습니다. 자기 나름의 율법해석과 집착이 예수님의 한 인간을 향한 사랑과 연민을 가로막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당신의 일을 계속 하십니다. 그의 사랑을 막는 어떤 장애물도 개의치 않으십니다. “잡혀간 이들에게 해방을 선포하며 눈먼 이들을 해방시켜 내보내며 …….”(루가4,18)구원을 주십니다. 안식일을 형식적으로 지키는 유다인 지도자들에게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있는 것임을 분명히 하십니다.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생긴 것이지,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생긴 것은 아니다”(마르2,27). 법의 외연도 중요하지만 그 알맹이가 더 소중하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리 급하지도 않아 보이는 병을 구지 안식일에 고쳐주신 것은 사랑의 실천은 뒤로 미뤄서는 안 된다는 가르침을 줍니다. 기쁘게 그리고 민첩한 사랑을 해야겠습니다. 주님께서는 당신의 날인 안식일마저 인간을 위한 사랑에 모두를 바치셨는데 저는 월요일을 신부의 쉬는 날로 생각하고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고 싶어 하니 문제입니다. 허리가 굽어 열여덟 해 동안을 묶여있어야 한 것보다도 마음이 한번 묶여버리면 그 속박이 더 무섭습니다.
욕심 많은 사냥꾼이 있었습니다. 작은 짐승은 시시해. 이제 큰 짐승을 잡아야지 하면서 짐승이 다니는 길에 함정을 파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큰 짐승을 잡으려면 큰 함정을 파야해’ 하면서 넓고 깊게 함정을 팠습니다. 마침내 ‘이젠 됐다’ 하고 함정 밖으로 나오려 했지만 자기가 판 함정이 너무 깊어 밖으로 나올 수가 없었습니다. 자기 꾀에 자기가 빠지고 말았습니다.
지금 눈앞에 것 때문에 낙태를 합법화하고 배아줄기세포를 통해 치료의 영역을 넓힌다고 주장하지만 그것은 결국 함정에 빠지는 것입니다. 4대강개발을 빌미삼아 온 강을 파헤치고 자전거 길을 만들며 호들갑을 떨지만 결국은 부메랑으로 돌아올 것입니다. 개발을 반대하는 사람이 미움을 받고 법의 처벌을 받고 있지만 후대에는 명백히 뒤집어질 것입니다. 제주도 강정마을 해군기지 공사장에서 자동차가 지나가는 것을 막았다고 업무방해를 한 혐의로 연행된 사람들은 분명 법 위에 사람이 있다는 것을 외치고 있는 것입니다.
회당장이 시대의 징표를 깨닫지 못하여 구원자 예수님을 자기 틀 안에 가두어 놓고 망신을 당했듯이 지금 겉치레에 목을 거는 사람들은 하느님 앞에서 망신을 당할 것입니다. 마음을 열어 구원자 예수님을 바라보아야 하겠습니다. 사랑과 연민으로 다가오시는 주님을 기쁘게 맞이하시기 바랍니다.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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