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저씨, 어제 아저씨 방에 전화했었는데 안 받으시던데요?”
이 곳 앨버타 대학 기숙사에서 같이 사는 한 한국학생이 했던 말이다. 군대를 제대하자마자 영어연수를 왔다는 그 친구가 한국음식이 먹고 싶다고 해서 한 번 초대를 할 생각으로 방 전화번호를 건네 줬던 일이 있었다.
그런데 그 친구가 나를 부를 때 썼던 ‘아저씨’라는 호칭이 영 맘에 들지 않았다. 기껏 나이라고 해봐야 십 오년 정도밖에 안 나는데 아저씨가 뭐란 말인가? 아저씨가...... 다음에 다시 만나면 ‘형’이라는 호칭을 강요해야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 친구를 지난 주일 청년미사에서 다시 만났다. 에드먼튼 한인 성당의 신부님이 토요일 영어미사를 내게 부탁하셔서 미사를 봉헌하러 성당에 들어갔는데 입구에서 딱 부딪힌 것이다. 그 친구가 놀랜 토끼 눈으로 로만칼라를 하고 있는 나를 보고 말했다.
“아저씨, 아니 여기서 뭐하세요?”
또 아저씨란다. 으... 이 놈을 그냥 콱!
미사를 마치고 공지사항 시간이 되었다. 잠시 영어미사를 부탁받은 신부가 무슨 공지사항이 있겠는가마는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서 한 가지를 공지하였다.
“저기 나하고 같은 기숙사에 사는 친구, 왜 꼭 나를 보고 아저씨라고 부르냐고요. 다음부터는 꼭 형이라고 불러달라고요.”
벌써 미사 중간에 속닥거리면서 키킥대던 주변의 친구들이 일순간에 웃음을 터뜨리자 그 친구는 빨개진 얼굴로 머리를 극적이고 있었다.
어느 새 젊은 대학생 친구들로부터 ‘형’이라는 호칭보다는 ‘아저씨’라는 호칭으로 불리는 나이가 되어 버렸나보다. 아무 것도 아닌 것 같지만 내가 어떤 이름으로 불리느냐하는 문제는 결코 가벼운 일이 아니다. 어떻게 불리느냐에 따라서 그에 걸맞는 언행이 따라야 하기 때문이다.
대통령이라고 불리는 사람은 대통령의 언행을 해야 하고 아버지, 어머니라 불리는 사람들은 부모의 언행을 해야 하고 하느님 백성이라 불리는 사람들은 하느님 백성다운 언행을 해야 한다. 자기가 불리는 이름에 맞는 언행을 하지 못하는 사람은 그이름에 대해 부끄럽게 생각해야 한다.
사람들은 나를 ‘신부’라고 부르며 분에 넘치는 관심과 사랑으로 대해 준다. 나는 신부라는 이름에 맞는 언행으로 하루하루를 성실히 살면서 그분들의 사랑에 보답해야 하는 의무를 지고 있다. 신부답게 말하고 행동하기......
“내 이름으로 불리는 내 백성은 머리를 숙이고 기도하며 나를 찾고 나쁜 길에서 돌아서야 한다. 그리하면 나는 하늘에서 듣고 그 죄를 용서해 주고 그 사는 땅에 다시 생명을 주리라.”(2역대 7,14)
한국외방선교회 최강 스테파노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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