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10월 30일 연중 제31주일 -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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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노병규 | 작성일2011-10-30 | 조회수566 | 추천수10 | 반대(0) 신고 |
10월 30일 연중 제31주일 - 마태오 23,1-12
“누구든지 자신을 높이는 이는 낮아지고 자신을 낮추는 이는 높아질 것이다.”
<내려가는 길, 예수님의 길>
주일 오후가 되면 저는 습관처럼 가까운 산을 찾습니다. 시간관계로 늘 가까운 산만 다니다 보니 애들이 싫어하는 눈치여서 지난 주일에는 승용차로 멀리 삼각산까지 갔습니다. 하루 온종일 맑은 공기도 마시고 땀도 흘리니 얼마나 행복했는지 모릅니다.
하산할 때마다 제가 늘 직면하는 꽤 큰 유혹거리들이 있습니다. 산 초입까지 내려오면 어김없이 감자전, 파전 굽는 냄새가 진동합니다. 또 주인 아주머니들은 얼마나 상냥하고 친절하신지. 만면에 잔뜩 미소를 지으면서 '잠깐 들렀다 가시라'고 하는데 그 얼굴을 대하면 미안해서라도 그냥 지나칠 수 없습니다.
아이들도 출출한 눈치여서 제일 친절한 아주머니 집에 자리를 잡고 앉았습니다. 처음 들어갈 때는 파전 딱 한판만 먹고 나오기로 했었지요. 그런데 바로 옆 식탁에 앉은 등산객들이 시원한 막걸리를 한 사발씩 숨도 안 쉬고 들이키면서 "카! 좋다" 하는 겁니다.
그 순간, 제 마음은 즉시 흔들리는 갈대가 됐습니다. 운전을 해야 하고 또 아이들도 있으니, '먹으면 절대 안 되지' 하는 마음이 49%, '딱 한잔인데 뭘' 하는 마음이 51%였습니다.
딱 한잔만 하는 마음에 좁쌀막걸리 한 병을 시켰습니다. 그러나 웬걸, 한잔 하고 나니 또 마음이 그게 아니었습니다. 남은 술이 아깝기도 했지만 그 맛이 기가 막혔습니다. '에라, 모르겠다!'하면서 한잔 더 하고, 그러다 보니 두 잔이 세 잔 되고, 또 다른 한 병이 되고...
다시 몸과 마음이 따로 노는 제 모습을 적나라하게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생각 따로 행동 따로, 신앙 따로 삶 따로의 제 부끄러운 모습을 아이들에게까지 들켜버리고 말았네요. 유혹은 그 빛깔이 너무도 고와서 나약한 우리를 이렇게 한순간에 넘어트리고 맙니다.
오늘 선포되는 복음은 예수님 시대 당시 위선자들이자 이중인격자들의 대표 격이었던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파 사람들을 향한 예수님 질책으로 이뤄져 있습니다.
사람보다는 율법에, 하느님 계명보다는 빛바랜 전통에 몰두하던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파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의 가식적이고 위선적 신앙생활을 예수님께서는 도무지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어떻게 해서든 말과 행동이 일치하는 신앙인, 신앙과 삶이 조화를 이루는 신앙인으로 하느님 앞에 서게 되길 바랍니다. 어떻게 해서든 치명적 결점인 위선과 이중성을 극복하는 우리이길 바랍니다. 다른 무엇에 앞서 한 인간을 소중히 여기고, 그 인간에 깃든 하느님을 극진히 섬기는 우리가 되길 바랍니다.
예수님 시대에도 '서열'은 꽤 중요했던가 봅니다. 회당에서 종교 집회 때, 원로회의 때, 공동식사 때와 같은 공식 자리에서 어느 위치에 앉느냐 하는 문제는 그들에게 목숨을 걸 정도로 중요한 문제였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특히 괜히 속에 든 것도 없으면서 나대기 좋아하고 잘난 척하기 좋아하는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높은 자리를 차지하는 데 혈안이 돼 있었습니다. 이런 그들을 향해 예수님께서는 비수 같은 한 말씀을 던지십니다.
"너희 가운데에서 가장 높은 사람은 너희를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누구든지 자신을 높이는 이는 낮아지고 자신을 낮추는 이는 높아질 것이다."
그리스도교 안에서, 예수님 안에서 참된 높음, 진정한 위대함이란 다른 모든 사람을 자신보다 앞세우고 자신은 제일 끝자리에 놓음을 통해 가능합니다. 신앙에서 첫째가는 사람은 기꺼이 다른 사람 아래로 내려가는 사람입니다. 예수님 때문에 기쁘게 내려가는 사람입니다.
밑바닥 체험이 전혀 없었던 사람, 오로지 높이 올라갈 줄만 아는 사람, 그가 행복해 보이기도 하겠지만, 어찌 보면 진정 불행한 사람입니다. 언젠가 그에게도 인생의 내리막길, 정리해야 하는 황혼의 길도 닥쳐올 텐데, 그때 겪어야할 쓰라림이 만만치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한때 잘나가던 유명인사들, 탄탄한 성공가도만을 달려온 '대단한' 사람일수록 밑으로 내려오기가 그렇게 힘들다고 합니다. 평소 내려오는 연습을 자주 못했기에, 조금만 내리막 기미를 보이면 그렇게 힘들어 한다지요. 내려가는 자신의 모습을 죽어도 용납하지 못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때로 더 이상 내려갈 곳이 없는 꼴찌가 행복한 것입니다.
꼴찌로 산다는 것, 종으로 산다는 것, 그것도 자원해서 바보처럼 산다는 것, 진정 견딜 수 없는 힘겨운 일이겠지만 그 길이 바로 우리 길입니다. 예수님 길입니다. 오늘 또 다시 우리가 선택할 길입니다.
†살레시오회 수도원 수련원장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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