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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내 왕국은 이 세상 것이 아니다![김웅열 토마스 아퀴나스 신부님]
작성자박명옥 쪽지 캡슐 작성일2011-11-05 조회수335 추천수2 반대(0) 신고
                                                           
 
 
 
 
 
 

        배티 성지 김웅열 토마스 아퀴나스 신부님

   

 

 

 

†찬미예수님

 

여자들은 나이가 먹을수록 무거워진데요.

남자들은 나이가 먹을수록 가벼워진데요.

여자들이 무거워지는 이유는

첫 번째로 머리가 돌이 된데요.

두 번째가 얼굴이 두꺼워진데요.

세 번째는 간뎅이가 붓는데요.

 

남자가 가벼워지는 이유는

첫 번째가 나이가 먹을수록 머리가 비어간데요.

두 번째가 나이가 먹을수록 입이 가벼워진데요.

세 번째로는 간이 콩알만해진데요.

그러니까 나이가 먹을수록 여자들은 무거워지고 남자들은 가벼워진데요.

동창신부한테 그 얘기를 듣고서 혼자서 동의하면서 많이 웃었어요.

 

요르단이라고 하는 나라에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송백나무가 자랍니다.

송백나무는 굉장히 비싸고 향이 아주 좋습니다.

그중에 세 그루의 송백나무가 모여서 자기들의 희망을 얘기했데요.

첫 번째 나무는 언젠가 내가 베어진다면 예루살렘으로 가서

예루살렘 성전에 있는 화려한 제대가 되는 것이 나의 꿈이다.

많은 사람들이 제대 앞에서 경배를 드리면서 나의 모습에 존경을 표하게 하고 싶은 것이

바로 내 소망이며 그것을 위해서 기도하고 있다.

 

두 번째 나무는 자기 소망은 ‘내 꿈은 사람들을 섬기는 것이다.

나는 넓은 바다를 왔다 갔다 하는 큰 배가 되어서 검푸른 지중해를 가로지르면서

사람들을 실어 나르면서 봉사하는 것이 나의 꿈이다.’

 

세 번째 나무가 두 나무의 얘기를 듣더니

‘나는 베어지는 것을 원치 않아. 나는 이 자리에서 하늘로 쭉쭉 뻗어서

큰 나무가 되어 많은 사람들이 내 그늘로 들어와서 쉬었다 가는 나무가 될 거야,

사람들이 내 큰 키를 쳐다보다가 하늘을 쳐다보게 되고, 그래서 하느님을 알게 되는

그런 나무로 내 여생을 마치고 싶다.’

 

세 나무는 각자의 소망을 이루기 위해서 성모님한테 9일 기도도

바치면서 열심히 살았다 그래요.

 

세월이 흐른 어느 날, 도끼가 첫 번째 나무 밑에 와서 닿습니다.

첫 번째 나무는 마음이 아팠지만 소망이 이루어지는 희망으로

자기의 몸이 부서져도 기쁘게 그 고통을 달게 받았어요.

첫 번째 나무는 목공소로 옮겨져서 목수들이 열심히 나무를 자르고

대패로 파내고 하면서 모양을 다듬는데 보니 초라하기 이를 데 없는

말들이 먹이를 먹는 말구유를 만들어놓은 거예요.

예루살렘 대성전의 제대가 되는 것이 꿈이었던 첫 번째 나무는

너무너무 창피하고 부끄러워서 자살하고 싶은 마음이 들 정도였습니다.

첫 번째 나무의 꿈은 이렇게 산산이 부서졌습니다.

 

두 번째 나무도 도끼에 드디어 찍혔습니다.

두 번째 나무도 잘리는 아픔이 있었지만 희망을 가졌습니다.

‘드디어 내가 범선이 되어 오대양 육대주를 다니면서 사람들을

실어 나르는 큰 배의 한 부분이 될 수 있구나.’

아니나 다를까?

자기를 옮기는 데 보니 배를 만드는 선박소로 보내는 거예요.

‘성모님은 정말로 계셔. 구일 기도를 그렇게 바쳤더니 드디어 내 꿈이 이루어지는구나!’

열심히 인부들이 이 나무를 켜고 자르고 할 때, 이 나무는 그 선박공장안에서도 열심히 기도했어요.

이 두 번째 나무는 ‘주님, 배 만드는 공장까지 왔으니 내 마지막 소원은

물 밑에서 사람들의 방향을 잡아주는 키가 되고 싶습니다.’

그러나 자기 몸뚱아리가 자꾸만 조그맣게.....잘려나가는데

‘아닌데.... 큰 배에 들어가려면 나는 큰 나무로 있어야 되는데 왜 이렇게 작은 나무로 잘라놓을까?’

나중에 보니까 큰 배는 커녕 갈릴리 호수를 왔다 갔다 하는 쪽배,

그야말로 바람이 조금만 불면 흔들흔들 넘어가는 작은 배에 한 부분이 된 거예요.

‘야~ 나는 큰 배가 되고 싶었는데 이렇게 초라하기 이를 데 없는 쪽배가 되다니.....’

하면서 눈물을 흘렸다 그럽니다.

 

세 번째 나무는 그가 바라던 대로 오랫동안 그 언덕에 뿌리를 내리고 살고 있었습니다.

세 번째 나무도 잘려서 예루살렘으로 가게 되었는데 이 나무는 뭐로 변했느냐?

죄인 중에 큰 죄인을 처형하는 십자가 나무로 변했습니다.

 

이 세 번째 나무의 꿈은 많은 사람들이 그늘 밑에 와서 쉬게 하고

하느님을 알게 해주는 것이 소원이었건만 이게 어떻게 된 일입니까?

흉악범 중에서도 제일 흉악범들의 피를 말려 죽이는 사형틀, 그 흉물덩어리가 되었던 것이었습니다.

이 세 번째 나무도 정말로 죽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이런 슬픈 현실이 믿어지지 않았습니다.

‘내 꿈이 산산이 부서지고 내가 이렇게 비참한 존재가 될 수 있을까?’

 

어느 거룩한 밤, 여관을 찾지 못한 산달이 다 된 부부가 들어왔고

산고의 고통을 겪으면서 눈이 부시게 보기에도 찬란한 아주 아름다운 아기가 태어났는데

그 아기를 바로 자기의 집, 구유 위에다 올려놓는 것이었습니다.

그 아기가 바로 메시아였습니다.

 

지금까지 어떤 성전도, 세상에 아무리 화려한 제대도 이 같은 명예를 얻은 적이 없었습니다.

첫 번째 나무의 꿈은 예루살렘 성전의 제대가 되는 것이었으나

그리고 그 꿈이 실패했다고 생각했으나 구유가 된 이 송백나무는 메시아를 자기 품안에

안을 수 있는 이런 엄청난 명예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두 번째로 고깃배가 된 나무는 자기의 존재를 무의미하다고 생각하며

갈릴리의 고깃배가 된 자기의 신세를 한탄하고 살았습니다.

그 배는 사도 베드로의 배였습니다.

어느 날 하느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이 그 작은 배에 오르셨습니다.

 

 

자신의 몸뚱이를 발판으로 해서 세상을 향해 설교를 하는 주님의 발판이

되었다고 하는 그 영광은 아무리 큰 배라고 해도 누릴 수 없는 큰 기쁨이었던 것입니다.

 

십자가 나무로 변한 세 번째 송백나무는 항상 자기 자신을 저주하고 살았습니다.

어느 날 하느님의 아들 메시아가 바로 자기 몸뚱아리를 어깨에 짊어지고 골고다 산을 오르셨고,

십자가에 기대어 한 많은 서른세 살의 삶을 끝마치면서

주님의 그 성혈이 그 십자가에 죄인의 피가 아닌 하느님의 피,

성혈이 자기의 십자가를 다 덮었던 겁니다.

 

이 십자나무는 그 후부터 이천년 동안

어느 신자 집에 가나 어느 교회에 가나

그 나무의 모습을 본 딴 십자가 나무가 걸려있고

그전까지는 십자가나무는 사람을 죽이는 흉물덩어리였지만

주님이 매달리신 그 다음부터는 구원의 상징, 희망의 상징이 되었고,

사탄을 이기는 그러한 영적인 무기가 바로 십자가였던 겁니다.

 

이처럼 계곡에 서있던 세 그루의 평범한 나무들은

그 꿈들이 산산이 부서지면서 실패한 것처럼 보였지만

참으로 거룩하고 영광에 넘치는 사명을 감당하게 되었던 겁니다.

 

교우여러분들, 우리는 우리 자신의 짧은 생각을 가지고

자신의 인생은 무의미하다...무가치하다!

이 세상에 나만큼 불행한 사람은 없다!

나는 하는 것 마다 안 되고, 실패한다!

이렇게 생각하면서 자기의 삶을 저주하거나 체념하거나 좌절해서는 절대 안 됩니다.

 

우리가 예수그리스도 안에만 같이 머물고 있다면 비록 이 세상에서는 이름 없는 자였지만

하느님 안에서는 드높임을 받는 자가 될 것이요.

이 세상에서는 죽은 자처럼 살았지만 하느님 안에서는 살아 있는 자가 될 것이요.

이 세상에서는 슬퍼하면서 눈물로 한평생을 지낸 사람이었지만

하늘나라에서는 하느님께 위로를 받고 기쁨을 받는 그런 자로 변화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내 왕국은 이 세상 것이 아니다!’

오늘 이 순간부터 영광스럽게 제대가 되겠다고 하는 망한 생각, 헛된 세상 것을 쫓지 말고

베들레헴의 구유로 살아가겠다고 하는 것이 우리 신자들의 겸손입니다.

 

내 안에, 구유통 안에 온갖 음식찌꺼기 때로는 말과 소가 오줌을

싼다해도 나는 주님이 머무셨던 구유처럼

우리 공동체 안에서 가장 작은 사람으로서

다른 사람이 하기 싫은 것, 더러운 것 바로 내 차지다!

하는 마음으로 신앙생활을 하셔야 됩니다.

 

오늘 이 순간부터 커다란 범선이 되어서 사람들 앞에

자기의 모습을 뽐내는 그런 범선이 아니라

갈릴리 호수의 작은 고깃배처럼 예수님 발판을 되려고 노력하십시오.

주님이 나를 딛고서 세상을 향해서 복음을 전파하는

주님의 도구가 되도록 애쓰십시오.

 

교우 여러분들, 오늘부터 십자가를 십자가 나무를 끌어안으십시오.

이것이 바로 십자가 현양축일을 지내는 우리들의 묵상거리입니다.

 

주님의 십자가는 주님이 땅에 묻히시고 난 후에 예수님의 옆에 있었던

좌도와 우도의 삽자가와 같이 골고다 산에 그대로 묻혀 있었습니다.

그 후 300년이 흘러 십자가에 대한 것을 잊어버리고 있었는데

BC 313년에 콘스탄티누스가 로마제국을 가톨릭 국교로 만들었습니다.

그 콘스탄티누스 대제의 어머니였던 헤레나 황후가 아들에게 자기의 소망을 이야기하였습니다.

“아들아, 내 죽기 전에 소망이 하나 있는데 주님이 매달리셨던 그 골고타

성지로 나를 성지순례 좀 보내다오,”

아들은 어머니를 골고다로 성지순례를 보내드렸습니다.

 

예루살렘까지 몇 달이 걸려서 헤레나 황후가 골고다에 올라가보니

벌써 300년이 지나 주님의 십자가가 묻혀진 흔적은 찾아볼 수 없었고

이교인의 신당만이 잔뜩 있었습니다.

헤레나 황후는 십자가산 전체를 파게 했습니다.

여러 날 걸려서 드디어 십자가가 나왔는데

십자가 세 개가 서로 앞뒤가 엉켜서 땅에 묻혀 있었습니다.

십자가를 파내어 보니까 이 세 개 중에서

어느 것이 주님의 십자가인지 알 길이 없었습니다.

 

주님의 십자가 표시는 십자가 나무 위에 ‘유대인의 왕, 나자렛 예수’ 라고

하는 죄인의 명패가 있어야 하는데 어떤 십자가에도 십자가 명패는 없었고

똑같이 생긴 십자가 나무 세 개만 있었습니다.

헤레나 황후는 기도했습니다.

“주님, 이 세 개 중에서 어느 것이 주님의 것입니까?

그것을 알 수 있게 지혜를 주십시오.”

 

그때 예루살렘 주교님 머리에 어떤 지혜가 떠올랐는데 오늘 읽었던 제1 독서

‘불뱀한테 물렸던 유대인들이 구리뱀을 바라볼때마다 낫더라!'

구리뱀이 능력이 있었다면 주님이 매달렸던 십자가야 말로 얼마나 큰 능력이 있겠는가!‘

그래서 예루살렘에 있는 모든 환자들을 골고타 산으로 모이게 해서

첫 번째 십자가에다가 손을 대게 했습니다.

손을 대자마자 기가 막힌 일이 벌어졌습니다.

앉은뱅이가 벌떡 일어났습니다.

나병환자의 고름이 꾸덕꾸덕 굳어지기 시작했고

장님이 눈을 뜨기 시작했으며 모든 병자들이 손을 대자마자 몸이 나은겁니다.

 

사람들은 박수를 치면서 알렐루야를 외치면서 주님의 십자가를 찾았다고

외쳤지만 예수님의 십자가만이 할 수 있는 능력이 뭐가 있느냐!

죽은 사람을 살려야 합니다.

사람들은 숨을 죽이고 봤지만 한시간..두 시간이 지나도 그 시체는 움직일 줄 몰랐습니다.

 

그 첫 번째 십자가 나무는 주님이 매달렸던 십자가나무가 아니라

회개하고 죽은 우도의 십자가였습니다.

회개하고 죽은 우도의 십자가는 능력이 있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들이 살아가면서 회개하고 열심히 살면

그 회개한 사람 곁에 모인 사람은 자동적으로 치유를 받습니다.

어느 사람이 회개하고 아름답게 살아갈 때 다른 사람들이 치유를 받습니다.

그러나 회개는 다른 사람을 치유할 수 있는 능력이 있지만

죽은 사람까지 살릴 수는 없다는 뜻입니다.

 

두 번째 십자가 나무에다가 손을 대었습니다.

이번에는 거꾸로 손을 대자마자 급살을 맞아 죽어버리는 겁니다.

상처가 더 심해지고...그 십자가가 무서워서 아무도 만지지 못했습니다.

 

이 두 번째 십자가는 누구의 십자가였겠습니까?

좌도가 어떻게 죽었어요?

회개하고 죽었어요? 교만 떨고 죽었어요?

좌도는 죽으면서 까지도 교만을 떨면서

‘니가 하느님이면 니나 살리라고 해라!’

 

교만이라고 하는 것은 뭐냐?

‘지만 죽이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까지 상처를 준다.’ 그 뜻입니다.

좌도가 매달렸던 십자가에 손을 댄 사람들은 상처를 깊이 가졌어요.

 

교만은 다른 사람에게 깊은 상처를 줍니다.

영적으로 교만하게 사는 사람은 그 사람 곁에 가기만 하면

찔리거나 상처가 나서 피를 철철 흘립니다.

교만한 이의 십자가는 다른 이를 치유시키는 능력이 있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죽이고 영적으로 상처를 줍니다.

 

세 번째 십자가에 손을 대었더니

첫 번째 십자가와 같이 치유가 일어났습니다.

마지막으로 헤레나 황후는 죽은 시체를 올려놓으라고 그랬습니다.

죽은 지 며칠이 지나 냄새가 펄펄 나고 온 몸에서 시쳇물이 줄줄 흐르는

시체를 그 십자가 위에다 올려놓고 사람들은 무릎을 꿇고 지켜보았습니다.

10분, 20분.....지나면서 뼈와 가죽밖에 안 남은 그 시체에 살점이 붙고

얼굴에 혈색이 돌기 시작하더니 손가락 끝이 까딱까딱 움직이면서 살아났던 겁니다.‘

그때 헤레나 황후 주변에 있던 수많은 사람들은

‘알렐루야! 를 부르고 눈물을 흘리면서 ‘주님, 감사합니다.....’

이렇게 예수님이 매달렸던 그 거룩한 십자가는 그런 과정을 거치면서 찾아졌던 겁니다.

 

그 후에 주님의 십자가는 로마로 옮겨져서 200년 동안

그 십자가 모양 그대로 유지해 오다가 지금부터 1500년 경에

십자가를 수백조각으로 잘라서 대성전, 큰 수도원, 로마 가톨릭에

큰 공로를 쌓았던 가문에게 보물로 전해졌던 겁니다.

로마대성전에는 60센티 정도 되는 나무가 그대로 있습니다.

 

여러분은 15일날, 십자가나무 조각에 친구를 하셨습니다.

내일 모레, 순교자의 밤을 하면서 성인유해와 나무십자가에다가 여러분들 친구를 하게 될 겁니다.

예루살렘의 그 송백나무가 2000년이 지나서 진천성당까지 온 겁니다.

 

제가 모시고 있는 십자가가 주님의 손바닥이나 주님의 등 밑에

있었던 십자가 조각일지 모릅니다.

2000년이 지났지만 주님의 십자가 나무는 지금도 존재합니다.

 

나무 세 그루는 자기 꿈이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전화위복이 되어서 얼마나 영광스러운 나무가 되었습니까?

 

우리들은 이 세상 삶을 살면서 많은 고통을 당합니다.

십자가가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사제는 사제대로의 십자가가 다 있습니다.

그러나 그 십자가, 물리치지 마십시오.

 

내 인생이 실패 한 것처럼 보여도

내 안에 주님의 현존을 강하게 느끼면서 산다면

비록 제대는 되지 못할지언정, 주님을 품에 안는 구유가 될 것이요.

큰 바다를 떠도는 범선은 되지 못할지언정, 주님의 발판이 되어서

갈릴리 호수에서 설교하는 설교단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겸손한 이의 십자가는 다른 사람에게 치유를 주지만

교만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상처를 줍니다.

 

친애하는 교형자매 여러분,

오늘 주님의 현양십자가 축일을 지내면서

‘내가 지금 끌어안고 살아가는 십자가 주님, 버리지 않게 해 주십시오.’

십자가 기쁘게 지고 가는 사람이나 몇 사람이 되겠습니까?

대부분 억지로 지고 갈 겁니다.

억지로 지고 가는 십자가라고 해도 너무 주눅 들지 마십시오.

비록 억지로 지고 가는 십자가라 하더라도

주님은 기뻐하시며 그 십자가에 축복을 주신다는 것을 명심하시고

주님께 십자가 버리지 않겠다고 하는 그런 맹세를 하십시오.

 

주님이 십자가 지고 골고다까지 올라가셨듯이

나도 주님 곁에 갈 때까지 내 가족이 나에게 주는 십자가

결코 버리지 않겠다고 하는 것을 주님 앞에 고백하도록 합시다. 아멘

 

 

  

  http://cafe.daum.net/thomas0714 주님의 느티나무카페에서

 

 

    배티 성지 - photo by 느티나무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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