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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안드레아 둥락 사제와 동료 순교자들 기념일 - 버리고 떠나기......[김웅열 토마스 아퀴나스 신부님]
작성자박명옥 쪽지 캡슐 작성일2011-11-24 조회수394 추천수1 반대(0) 신고
                                                         
 
 
 
 

 
 

         배티 성지 김웅열 토마스 아퀴나스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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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미예수님

 

예수님께서 열 두 제자를 뽑으실 때 제자들이

‘나 좀 써 주세요. 해서 그 가운데에서 뽑으신 것이 아니라

‘나 따라 오너라!’ 해서 따라 왔지요?

그 열 두명 가운데서 형제들 두 쌍이 어부였어요.

베드로와 동생 안드레아, 야고버와 요한

 

어부는 권력이나 돈이나 힘이 있는 사람이 아니예요.

예수님께서 이 세상 일을 편히 하고 싶었다면 많이 배우고 잘 나가는 사람,

권력 있는 사람, 학자...... 를 제자로 삼으셨겠지요.

그러나 이 열 두 명의 구성원들을 살펴보면 평상시에는 서로 합칠래야

합칠 수 없는 사람이 모였어요.

예를 들어서 마태오는 세리였고, 유다스는 그런 민족반역자 성격이었던

사람을 잡아가던 열혈당원이었어요.

그러나 그 중심에 예수님이 계셨기에 공동체가 가능했습니다.

 

오늘은 평신도주일입니다.

예수님께서 왜 어부들을 그렇게 많이 뽑았을까~ 하는 것을 묵상해 보면

우리 평신도가 어떤 소명을 가지고 부름을 받았는가가 드러나요.

 

저는 신학생 때 늘 이것을 묵상했어요.

예수님은 왜 어부를 제자로 부르셨을까?

 

어부를 부르신 세 가지 이유

그것이 바로 우리를 부르신 이유이기도 합니다.

첫 번째, 어부의 삶은 무소유의 삶이기 때문입니다.

갈릴리 호수는 어부의 것이 아닙니다.

어부들이 가진 재산은 건장한 몽뚱이 하나, 그물 하나가 전부입니다.

‘나 따라오너라!’

하면 어부들은 그물만 버리면 갈 수 있었어요.

 

농사짓는 사람에게 ‘나 따라오너라!’ 하면

“저 불러주셔서 감사합니다. 제가 가진 동산, 부동산 처분하고 따라 갈테니

예수님, 휴대폰 번호 주고 가세요.“

다시 말하면 많이 가진 자일수록 예수님 따르는데 핑계가 많아요.

 

저에게는 소망이 하나 있어요.

저도 언젠가 죽겠지요.

제 장례미사에 다녀가는 신자들의 입에서

“김웅열 신부님 돌아가신 후에 보니까 낡은 수단 하나, 그 양반이 쓰던

성무일도, 헌 구두 하나 그게 그 양반의 전 재산이래!“

그런데 참, 혼자 사는 몸뚱이가 뭐가 그리 필요한 게 많은지

이사 갈 때마다  사과 박스 하나씩 늘어가는 거야~

 

영성 중에서 제일 어려운 영성이 포기의 영성이에요.

하루하루 죽음을 향해서 가는데

우리들이 세상을 떠날 때는 빈 몸으로 가는데

 

어느 수녀님에게서 들은 이야기인데 사람이 죽으면 날개가 생긴대요.

그럼 그 날개로 하늘나라에 가야 되는데 세상 짐을 많이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아무리 날개짓을 해도 올라갈 수가 없대요.

아무것도 가진 것 없는 사람은 두 날개를 훨훨 하늘나라로 간대요.

 

어부를 부른 첫 번째 이유는 포기할 것이 많지 않기 때문에

“따라 와!” 하면 그물만 버리고 떠날 수 있어요.

 

우리 신앙인이 지향해야 할 삶은 무소유의 삶,

애초부터 내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입니다.

 

어부를 부른 두 번째 이유는 어부들의 공동체성입니다.

아무리 잘난 어부도 갈릴리호수에서 같이 힘을 합해야 합니다.

힘이 세다고 혼자 막 끌어올리면 그물이 엉기겠지요.

힘이 떨어진 자는 자는 공동체를 위하여 기를 쓰고 힘을 씁니다.

어부들의 삶은 거칠지만 내가 죽어야 공동체가 산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여기 저기에서 모인 물을 담수라고 합니다.

담수에는 두 가지 성질이 있는데

끌어내리는 침력이 있고, 끌어 올리는 부력이 있습니다.

 

과연 나는 공동체 안에서 남을 씹어서 끌어내리는 침력의 역할을 하는지,

틈만 나면 칭찬을 해주는 부력의 역할을 하는지 묵상해 보아야 합니다.

  

주님은 한 사람만 성인 성녀 되는 것 원치 않습니다.

베드로 사도가 지키는 천국문 앞에 가면 그 위 현수막에

‘개인사절, 단체 환영’

 여럿이 같이 생활하는 그 공동체성 때문에 어부를 부른 것입니다.

 

세 번째 이유는 어부는 종말론적인 삶을 살기 때문입니다.

성서에 보면 갈릴리 호수는 잔잔하던 호수가 갑자기 산속에서 바람이

불어서 금새 배가 뒤집어집니다.

그때 어부들은 뱃고물을 붙잡고 살려달라고~

내 두 다리로 땅만 밟게 해 달라고~

죽음의 밑바닥까지 간 사람은 저절로 하느님을 찾게 되어 있어요.

 

고속도로에서 교통사고로 죽을 뻔 하다가 살아난 사람은 

그 사람 퇴원하자마자 성당을 찾아갑니다.

‘아, 기적이다!’

죽음의 밑바닥까지 내려가 본 사람은 하느님을 찾습니다.

 

어부라고 하는 직업은 예나 지금이나 위험해요.

제가 군종신부를 여러해 동안 했습니다.

여러 군대를 다녀보면 제일 신심이 깊은 곳이 특전사, 공수부대 대원들이에요.

특전사에 가서 미사를 드리면 비행기에서 내리기 전에 총고백을 해요.

미사할 때 보면 스폰지가 물을 빨아들이듯이 쫙쫙 빨아들여요.

 

낙하산은 2만개 가운데 한 개가 안 펴지는데 그 한 개가 안 펴지면 내가 죽는 거예요.

비행기에서 뛰어내리기 전에 바닥에 물이 흘러 다니는 걸 보면 그게 오줌이예요.

‘하느님 아버지!’

 

아무리 운전을 잘해도  돌풍이 한 번 몰아치면

낙하산이 계곡으로 처박혀 처참하게 죽어요.

 

그러나 방위들한테 가서 미사할 때 보면 군기만 빠진 게 아니라

심기까지 같이 빠졌어요.

똑같이 군대밥을 먹어도 특전사와 방위는 그렇게 달라요.

 

어부는 저 세상 이야기를 하면 금방 알아들어요.

농부들은 잘 몰라요.

밑바닥까지 떨어져본 사람은 저절로 하느님을 체험하게 돼요.

 

무소유의 삶, 공동체의 삶, 종말론적인 삶

이 세 가지 이유 때문에 예수님께서 어부들을 선택하셨습니다.

여러분들도 세 가지의 삶으로 불림을 받으셨습니다.

 

주님 앞으로 하루하루 다가가는 우리는 자꾸자꾸 포기하세요.

물질만의 포기가 아니라 내 안의 미움덩이도 포기하세요.

내가 선천적으로 다른 사람보다 교만하다면 빨리 흐르는 물에 씻어 보내세요.

자꾸 자꾸 포기하면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것이

바로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의 의무입니다.

 

두 번째 공동체에서 잘난 척, 성인인 척 하지 마세요.

다른 사람이 못나도 그 사람에게 눈높이를 맞추세요.

 

잘나야 얼마나 잘났겠어요.

우리 주님이 큰 바보이듯이 우리도 작은 바보가 되어야 해요.

 

한국천주교의 가장 큰 문제는 파벌입니다.

큰 신부파, 작은 신부파 간 신부파, 갈 신부파, 온 신부파, 쪽파, 대파

200년 전에만 바오로파 아폴로파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바보들만 모인 성당은 세상사람들이그걸 보고

‘어떻게 이렇게 법 없이도 살 수 있을까!’ 하면서 성당에 나갑니다.

 

우리 주님은 큰 걸레처럼 사셨어요.

세상의 더러움 당신 보배로 다 닦아주셨어요.

예수님의 제자인 우리는 작은 걸레, 똥걸레가 되어야지요.

 

여러분들의 걸레의 삶이라는 게 큰 게 아니에요.

성당 들어올 때 휴지 주워 집어넣는 게 걸레의 삶입니다.

화장실 더러우면 수세미로 닦는 게 걸레의 삶입니다.

 

주님이 우리를 부르신 세 번째 이유

그날 하루하루가 마지막이라고 생각하세요.

 

밤에 잠자리에 드는 건 죽음으로 가는 거예요.

아침에 눈 못 뜨는 사람 많아요.

아침에 눈을 뜨면 내가 나를 축성하면서 하는 첫 번째 기도가

‘주님, 살려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리고 이어서 ‘주님, 오늘 하루를 마지막으로 알고 살겠습니다.’

 

하루 밖에 안 남았다고 한다면 그 하루가 얼마나 귀하겠어요.

용서 못할 사람이 어디 있고, 미운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오늘 내가 하는 묵주기도가 내 생애 마지막 묵주기도라면~

오늘 하는 평일미사 영성체가 내 생애 마지막 영성체라면~

오늘 하는 고백성사가 내 생애 마지막 고백성사라면

눈물 콧물이 앞을 가릴 겁니다.

 

 

성인 성녀들은 하루하루를 마지막으로 알고 살았어요.

그 하루하루가 모여서 그 성인의 일생이 된 겁니다.

 

오늘 평신도주일, 오늘 교회에서 말씀의 선물을 주셨잖아요.

하느님께 감사해야지요.

 

거룩한 천주교신자로 불러주신 것 감사하면서

세례 받을 때 주신 권리인 무소유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가~

 

두 번째, 나는 공동체 안에서 다른 사람을 띄워주는

부력의 역할을 하는 삶을 살아가고 있는가~

 

세 번째, 매일 매일을 마지막으로 알고 겸손되이 살아가고 있는가~

이것이 기초가 되어 살아가야 됩니다.

 

내가 죽을 때까지 몇 번이나 더 성체를 영할지 모르겠지만

성체 받으러 나오시면서 한마디만 하십시오.

‘주님, 저는 죄인입니다. 자비를 베풀어주십시오,’

 

성체를 영한 손은 여러분들의 손이 아니라 예수님의 손으로 변하기 때문에

그 손으로 인성에 상처가 있는 사람은 가슴에 손을 대고

‘주님, 저를 치유시켜 주십시오!’

‘내 어머니, 아버지에 대한 미움 치유시켜 주십시오.’

몸이 아픈 사람은 아픈 곳에 손을 대고

‘주님, 저 치유시켜 주세요. 제가 암이에요. 혈액에 병이 있대요.

심장이 답답해요. 치유시켜 주실 것을 믿습니다.‘

 

영성체 후에도 집에 갈 때 까지도 예수님의 손입니다.

집에 손주가 있으면 예수님의 손으로 아이에게 안수해 주세요.

집에 환자가 있으면 아픈 곳에 손을 대고 치유기도 해 주세요.

개신교 신자들은 꿈도 꾸지 못할 성체를 통해서 얻는 은혜입니다.

‘주님, 저는 죄인입니다, 자비를 베풀어주십시오!’

 

 

 

 

  http://cafe.daum.net/thomas0714 주님의 느티나무카페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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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티 성지  - photo by 느티나무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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