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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서 공석 신부님의 강론(대림 제3주일 2011년 12월 11일).
작성자강점수 쪽지 캡슐 작성일2011-12-09 조회수432 추천수5 반대(0) 신고

대림 제3주일 2011년 12월 11일

 

요한 1, 6-8. 19-28.

 

오늘 복음은 요한복음서가 세례자 요한을 소개하는 말씀입니다. 이 복음서는 요한의 정체를 알아내기 위해 예루살렘에서 파견된 사람들이 있었고, 요한이 그들 앞에서 자기 자신에 대해 증언하였다고 말합니다. 요한은 자기가 그리스도도 아니고, 엘리야가 살아 돌아온 것도 아니며, 예언자도 아니라고 말합니다. 요한은 ‘나는 이사야 예언자가 말한 대로 “너희는 주님의 길을 곧게 내어라.” 하고 광야에서 외치는 이의 소리’라고 말합니다. 요한은 또 말합니다. ‘나는 물로 세례를 준다. 그런데 너희 가운데에는 너희가 모르는 분이 서 계신다. 내 뒤에 오시는 분이신데, 나는 그분의 신발 끈을 풀어 드리기에도 합당하지 않다.’ 이것이 오늘의 복음이 세례자 요한을 소개하면서 하는 말입니다.

 

네 개의 복음서가 모두 예수님의 활동을 이야기하기 전에 세례자 요한에 대해 먼저 언급합니다. 마르코복음서와 마태오복음서는 예수님이 요한으로부터 세례를 받았다고 말하지만, 루가복음서와 요한복음서는 그 사실 조차 적당히 얼버무리고 맙니다. 네 복음서가 하나같이 긍정하는 점은 요한은 예수님에 비해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요한에 대한 복음서들의 이런 진술들은 예수가 요한으로부터 세례를 받은 것은 사실이라 것을 알립니다. 그러나 그 사실이 초기 그리스도 신앙인들에게는 부담스러웠다는 것을 엿보게 합니다.

 

복음서들이 기록될 당시, 요한의 제자들도 그들의 스승에 대해 가르치고 있었습니다. 자칫하면, 예수에게 세례를 베푼 요한이 세례를 받은 예수보다 더 위대하다고 생각될 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복음서들은 이사야서를 인용하면서, 요한은 예수님의 길을 준비하기 위해 파견된 인물에 불과하다고 말합니다. 오늘 우리가 들은 복음서는 요한은 빛이 아니라, 빛을 증언하는 인물이고, 그리스도가 아니라, 그분의 길을 고르게 하기 위해 외치는 이의 소리라고 말합니다. 요한이 비록 세례는 베풀었지만, 그는 예수님의 신발 끈을 풀어드릴 자격도 없는 인물이라고도 말합니다. 복음서의 이런 언급들에는 사람들의 시선을 예수님에게로 가게 하겠다는 초기 신앙인들의 의도가 담겨 있습니다.

 

예수님은 일찍이 요한으로부터 세례를 받았습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여자에게서 태어난 사람들 중에 요한 세례자보다 더 큰 인물은 나오지 않았다.”(마태, 11,11)고 극찬하여 말씀하신 사실을 보면, 예수님은 요한의 세례 운동에 일찍이 가담하셨던 분이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요한의 세례운동은 삶을 근본적으로 바꾸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시대 다른 세례 운동가들은 죄에서 정화되기 위한 세례를 베풀었습니다. 그러나 요한은 삶을 근본적으로 바꾸겠다는 약속을 받고, 세례를 베풀었습니다. 예수님은 그의 세례 운동에 공감하고, 가담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거기에 머물지 않았습니다. 복음서들이 전하는 바를 보면 요한은 “도끼가 이미 나무뿌리에 닿았으니 좋은 열매를 맺지 않는 나무는 모두 찍혀서 불 속에 던져질 것이다.”(마태 3,10; 루가 3,9)고 말하면서 엄하게 심판하실 하느님을 가르쳤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하느님의 나라를 선포하셨습니다. 하느님이 우리의 삶 안에 살아계시면, 그것이 하느님의 나라입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하느님의 나라는 너희 가운데에 있다.”(루가 17,21). 예수님은 하느님이 그 함께 계심에서 아무도 제외하지 않으신다고도 가르쳤습니다. 하느님은 양 백 마리 중 한 마리도 잃지 않으려는 목자와 같은 분이라고도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청하여라, 너희에게 주실 것이다. 찾아라, 너희가 얻을 것이다. 문을 두드려라, 너희에게 열릴 것이다...너희가 악해도 자녀들에게는 좋은 것을 줄 줄 알거든,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야 당신께 청하는 이들에게 성령을 얼마나 더 잘 주시겠느냐?”(루가 11,9.13). 예수님이 가르친 하느님은 심판하실 무서운 분이 아니라, 자녀에게 좋은 것을 주는 아버지와 같은 분이십니다. 예수님은 또 말씀하셨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은혜를 모르는 자들과 악한 자들에게도 인자하시다. 너희 아버지께서 자비하신 것처럼 너희도 자비로운 사람이 되어라.”(루가 6,35-36). 하느님의 자비를 실천하는 사람 안에 하느님은 그 생명의 아버지로 살아 계신다는 말씀입니다.

 

오늘 복음은 세례자 요한을 소개하면서도, 우리의 시선이 예수님에게로 가도록인도합니다. 우리가 복음서를 읽으면서, 하느님을 벌주는 분이라고 생각하는 우리의 고정 관념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우리는 요한의 제자가 되는 것입니다. 무섭게 심판하는 것은 인간이 인간에게 하는 일입니다. 우리가 요한을 넘어서 예수님의 말씀을 따른다면, 자비하신 하느님, 용서하시는 하느님을 만납니다. 하느님은 당신의 숨결, 곧 성령을 베푸셔서 우리도 자비로운 당신의 질서 안에 살게 하십니다. 하느님은 은혜로운 분이십니다. 하느님은 우리도 우리 주변에 당신의 은혜로움을 실천하며 살아서 당신의 자녀 되게 하십니다.

 

청해도, 찾아도, 두드려도 하느님은 반응하시지 않더라고 우리는 말할 수 있습니다. 예
수님은 하느님을 아버지라 부르면서,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질 것을 빌었습니다. 자녀가 어리고 미숙할 때, 부모는 자녀를 위해 모든 것을 다 해 줍니다. 그러나 성장한 자녀는 자기의 삶을 개척하기 위해 스스로 뼈를 깎는 노력을 합니다. 부모는 성장한 자녀를 대신해서 모든 것을 다 해 주지 않습니다. 창세기는 말합니다. 사람은 “부모를 떠나 자기 배우자와 하나가 된다.”(2,24). 인간은 부모를 떠나서 비로소 배우자를 사랑할 수 있는 독자적인 인간이 된다는 말입니다. 자녀는 부모를 떠나지만, 부모의 뜻을 받들어 삽니다. 자녀는 자기 일은 자기가 하지만, 부모와 마음으로 함께 있습니다. 부모의 가치관을 따라 살면서 부모의 뜻이 자기를 통해서 실현되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은 자비로우신 하느님의 생명을 살기 위해 노력합니다. 그 하느님의 영이 자기 안에 살아계시게 청하고, 찾고, 두드립니다. 그리고 하느님의 자비로운 시선으로 자기 주변을 봅니다. 예수님이 가르친 회개는 그런 것입니다. 병자를 고쳐주고, 달라는 사람에게 주며, 원수까지 사랑하라는 예수님의 말씀들은 모두 자비로운 하느님이 우리 안에 함께 계시게 살라는 말씀입니다. 하느님의 생명을 살아서 그분의 성숙한 자녀가 되라는 말씀입니다. ◆

                                서 공석 신부님의 강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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