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 만찬으로의 초대] (19) ‘하느님 말씀과 성찬례’
주님 말씀하실 때, 딴 생각 할 수 있습니까? “그리스도께서 당신 사건의 ‘오늘’을 성경 전체에서 찾아보라고 권고하시며 몸소 그렇게 하신 대로, 교회는 전례에서 그리스도께서 성경을 읽고 풀이해 주신 그 방식을 충실히 따른다.”(「독서 목록 지침」 3항) 그리스도, 성경을 읽으시는 말씀 복음서에는 단 한 번, 예식적 맥락 안에서 예수님께서 성경을 읽으시는 장면이 나타난다. 예수님께서는 나자렛 회당에서 안식일에 기도하기 위해 모인 회중 가운데서 이사야 예언서를 읽으시고 그것을 설명해 주신다(루카 4,16-21 참조). 당시 회당에 모여 있던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전례 회중 한가운데서 성경을 큰 소리로 선포하시는 것을 보고 들은 유일한 이들이다. 말씀이신 그리스도께서 성경을 읽으시는 것을 자신의 귀로 듣는 기쁨을 누렸으니 참으로 복된 이들이 아닐 수 없다. 루카 복음에 따르면 예수님께서는 이처럼 회당에서 성경을 봉독하는 예식 행위로 공생활의 첫 시작을 알리신다. 곧 당신 손에 건네진 이사야 예언자의 두루마리를 펴시고 “주님의 영이 내 위에 내리셨다”는 말씀으로 시작되는 성경 말씀을 읽으시며 당신의 선포 사명을 시작하신다. 요르단 강에서 세례 때에 그분 위에 내리셨던 성령께서는 예수님을 광야로 이끌었을 뿐만 아니라(루카 4,1 참조) 회당에서 성경을 봉독할 때도 함께 계신다. 이로써 예수님께서는 이스라엘 변방에 위치한 갈릴래아 지방의 작은 고을 안에 ‘오늘’ 실현된 하느님 말씀으로서 당신 자신을 드러내신다. “오늘 이 성경 말씀이 너희가 듣는 가운데에서 이루어졌다.” 이것은 또한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실 때 하신 당신의 고백을 실제로 이루시는 것이었다. “보십시오. 하느님! 두루마리에 저에 관하여 기록된 대로 저는 당신 뜻을 이루러 왔습니다.”(히브 10,7; 시편 40〔39〕,8-9 참조) 나자렛 회당에서 예수님께서 행하신 모든 것은 교회가 거행하는 말씀 전례의 모범이다. 예수님께서 행하신 독서는 그리스도인들이 성경을 읽는 방식이 되었다. 같은 방식으로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의 마음을 다시 타오르게 하셨다. 실상 “내가 너희에게 한 것처럼 너희도 하라고, 내가 본을 보여 준 것이다.”(요한 13,15)라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은 제자들에게 행하신 세족례에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모세와 모든 예언자로부터 시작하여 성경 전체에 걸쳐 당신에 관한 기록들을”(루카 24,27) 제자들에게 들려주셨을 때 하셨던 성경의 독서와 설명에도 해당된다. 예수님께서 몸소 보여주신 이 독서 방식에 따라서 그리스도인들은 “모세의 율법과 예언서와 시편”(루카 24,44)에서 매번 “당신에 관한 기록들”(루카 24,27)을 찾으며 하느님 말씀을 읽고 이해하고 해석해왔던 것이다. 그리스도와 깊이 결합된 교회는 성경을 새로운 방식으로 바라본다. 특히 전례 안에서 성경을 읽을 때마다 복음을 선포하시며 말씀하시는 분은 바로 그리스도이심을 믿으며 이렇게 고백한다. “당신 말씀 안에 현존하시어 교회 안에서 성경을 읽을 때에 당신 친히 말씀하시는 것이다.”(전례 헌장 7항) “전례 안에서 하느님께서 당신 백성에게 말씀하시며 그리스도께서 여전히 복음을 선포하고 계시기 때문이다.”(전례 헌장 33항) 하느님 말씀과 성찬 신비의 긴밀한 결합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의 이야기에서 잘 나타나듯이 미사 거행 안에서 말씀과 성찬은 서로 긴밀하게 결합되어 있어서 하나가 없이 다른 하나를 이해할 수가 없다.(「주님의 말씀」 55항 참조) 말씀의 빛으로 우리의 마음을 타오르게 하시는 분도 그리스도요, 쪼개어진 빵으로 우리의 가리어진 눈을 열어주시는 분도 그리스도이시다. 우리는 말씀과 성찬의 식탁에서 그리스도께서 내어주시는 영적인 양식을 얻는다. 성 예로니모는 우리가 하느님 말씀과 성찬례에 다가갈 때에 지녀야 할 자세에 대해서 말하면서 둘의 긴밀한 결합을 이렇게 밝힌다. “우리는 성경을 읽습니다. 저는 복음이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분께서 ‘너희가 내 살을 먹지 않고 내 피를 마시지 않으면’(요한 6,53)이라고 말씀하실 때, 이 말씀이 (성찬의) 신비를 뜻하는 것으로도 이해할 수 있지만, 그리스도의 몸과 그분의 피는 참으로 성경의 말씀이고 하느님의 가르치심입니다. 우리가 (성찬의) 신비에 다가갈 때 만일 그 한 조각이 떨어진다면 우리는 마치 멸망할 것처럼 느끼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있고 우리의 귀에 하느님의 말씀이, 그리스도의 몸과 그분의 피가 부어질 때에 우리가 다른 생각을 한다면, 우리는 얼마나 큰 위험에 떨어지고 있는 것이겠습니까?”(성 예로니모, 「시편 주해」 147) * 김기태 신부(인천가대 전례학 교수) - 인천교구 소속으로 2000년 1월 사제품을 받았다. 교황청립 성 안셀모 대학에서 전례학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현재 주교회의 전례위원회 총무로 활동 중이다. [가톨릭신문, 2018년 9월 23일, 김기태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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