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분위기와 자존감 - 1.19,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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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명준 | 작성일2012-01-19 | 조회수524 | 추천수7 | 반대(0) 신고 |
2012.1.19 연중 제2주간 목요일 사무 상18,6-9;19,1-7 마르3,7-12
따뜻한 분위기의 사람이 있는가 하면 찬 분위기의 사람도 있고, 밝은 분위기의 사람이 있는가 하면 어둔 분위기의 사람도 있습니다. 정체성의 자연스런 발로가 분위기라 할 수 있습니다.
즉시 와 닿은 말마디가 ‘분위기’입니다.
그 사람의 고유한 색깔이자 아우라인 분위기입니다. 내 고유의 분위기를 어떻게 잘 형성해갈지 참 중요한 평생과제입니다.
91세 노(老) 사촌 형님의 화집(畵集)을 본 느낌도 생각납니다. 그 많은 그림도 ‘밝고 생동적’인 분위기는 똑같았습니다. 참 신기한 것이 60대의 그림보다는 70대의 그림이, 70대의 그림보다는 80대의 그림의 분위기가 갈수록 더 밝고 생동적이라는 점이었습니다. 참 바람직한 내적 자유와 성숙의 징표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자존감(自尊感)과 자만감(自慢感)은 다릅니다.
분위기 역시 밝고 개방적이고 긍정적입니다.
자존감이 높아야 남 판단도 않고 자기 자랑도 하지 않습니다. 자존감 높아야 남 칭찬할 수 있지 열등감 있으면 남 칭찬에도 인색합니다. 상대방의 자존감을 키워주는, 지켜주는 일이 참 중요합니다.
정도의 차이일 뿐 열등감에서 자유로울 사람은 아마 거의 없을 것입니다. 치유 받아야 할 마음의 병이자 상처인 열등감입니다.
어둡고 폐쇄적이고 무거울 수뿐이 없습니다.
자존감 높은 밝고 긍정적인 다윗에 비해 사울은 자존감 낮은 어둡고 폐쇄적인 질투의 사람임이 들어납니다.
“사울은 수천을 치시고, 다윗은 수만을 치셨다네!”
여인들의 환호를 받는 다윗에 사울은 시기심이 불타올라 다윗을 죽이려 합니다.
누구나 일어나는 시기심을 억제할 수 없을 것입니다. 2인자를 허용하지 않는 권력의 세계이기에 더욱 그러합니다.
내부의 동지인 다윗이 졸지에 적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치유 받아야 할 사울 자신의 열등감임을 깨닫습니다.
자신을 물론 이웃도 파괴하기 때문입니다.
자존감이 충만한 참으로 매력적인 하느님의 아드님이십니다. 하여 물밀듯이 모여드는 병자들이요 마귀 들린 사람들입니다. 자존감이 드높기에 군중들의 인기에 영합하지 않고 거리를 두고자 제자들과 함께 호숫가로 물러가신 연유입니다.
고독의 능력임을 깨닫게 됩니다.
“당신은 하느님의 아드님이십니다!” 하고 소리 지르며 달아납니다.
자존감 부족으로 인해 생긴 질투와 시기심의 더러운 영도 사라집니다.
치유되는 열등감의 상처요 회복되는 자존감임을 깨닫습니다. 바로 매일 미사의 은총입니다.
내 안의 모든 것도 거룩하신 그 이름 찬미하여라.”(시편103).
열등감의 상처를 치유해주고 자존감 높은 삶을 살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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