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신비(神秘)’에 대한 묵상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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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명준 | 작성일2012-01-27 | 조회수480 | 추천수9 | 반대(0) 신고 |
2012.1.27 연중 제3주간 금요일
사무 하11,1-4ㄱㄷ. 5-10ㄱ.13-17 마르4,26-34
오늘 묵상 중 길어 낸 주제는 ‘신비’입니다. 얼마 전 큰 회사에 다니는 지인으로부터 전화를 받았습니다. 회사 로고를 무엇으로 하면 좋겠느냐는 뜬금없는 질문이었습니다. 즉시 떠오른 답입니다.
관상의 특징이자 신비에 대한 깨달음에서 저절로 솟아나는 감정이 놀라움, 새로움, 고마움입니다.
마음 무뎌져 신비 감각이 사라지면 남는 것은 황폐한 마음에 육적 욕망만의 거친 내면입니다.
신비가의 시대를 꿈꿨습니다.
바로 신비가로 창조되었다는 의미로 봐도 무방합니다.
하느님의 신비, 믿음의 신비, 사랑의 신비, 생명의 신비, 죽음의 신비, 자연의 신비, 몸의 신비, 마음의 신비, 악의 신비…끝이 없습니다.
신비를 깨달아 갈수록 신비의 원천인 하느님에 닿아 저절로 겸손에 끊임없이 솟아나는 찬미와 감사입니다. 매일 끊임없이 바치는 찬미와 감사의 미사와 성무일도의 공동전례기도 보다
예수님의 비유를 통해 ‘하느님 나라의 신비’를 묵상했고 독서에서는 다윗의 악행을 통해 ‘악의 신비’를 묵상했습니다.
은밀히 펼쳐지는 하느님 나라의 신비를 직관한 예수님이십니다.
우리는 다만 놀라움과 새로움, 고마움에 열린 눈으로 지켜보고 기다리기만 하면 됩니다.
저절로 하느님 뜻에 따른 삶이 됩니다.
어떻게 주님의 궤를 앞에 두고 온 마음을 기쁨에 넘쳐 춤을 췄던 다윗이 이런 천인공노할 죄를 저질렀는지 참 불가사의입니다.
사람이 악의 유혹에 빠질 때 얼마나 악해질 수 있는지, 어떻게 파괴될 수 있는지 잘 보여줍니다.
어둠 속에 다윗을 통해 일사천리 펼쳐지는 악의 신비입니다.
오늘 독서에서 감쪽같은 계교로 무죄한 우리아를 죽게 하는 장면은 완전 어둠입니다.
바로 이게 우리 사람입니다.
하느님 나라의 신비를 깨달아 사는 것이 중요합니다.
다윗은 우리 모두의 가능성이기 때문입니다.
찬미와 감사의 미사전례나 시편 성무일도보다 더 좋은 것은 없습니다.
주님은 우리 마음의 눈을 열어 주시어 하느님 나라의 신비를 깨닫게 하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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