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하느님 친화적인 삶 - 2.11,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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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명준 | 작성일2012-02-12 | 조회수355 | 추천수8 | 반대(0) 신고 |
2012.2.11 연중 제5주간 토요일(세계 병자의 날)
열왕 상12,26-32;13,33-34 마르8,1-10
텅 빈 마음 하늘에 떠오르는 하느님의 사랑을 상징합니다.
오늘 광야 인생 중에 있는 우리를 당신 생명의 미사 식탁에 초대해주셨습니다.
오늘은 하느님 친화적인 삶에 대한 묵상을 나눕니다. 자연 친화적인 삶에서 힌트를 얻었습니다.
자연과 조화된 자연친화적인 삶은 누구나의 바람일 것입니다. 자연의 배경을 가려버리고 자연과 부조화된 무질서하고 혼란한 거대한 건물들을 대하면 참 답답함을 느낍니다.
작고도 겸손한 자연친화적인 집들이었습니다. 배경의 자연을 가려버린 자연과 부조화된 집들은 거의 없었습니다.
하느님이 머무실 자리가 없는 내 중심의 삶이 온통 주류를 이루고 있는 현실입니다.
바로 하느님과 조화된 하느님이 투명하게 드러나는 하느님 친화적인 삶을 뜻합니다. 박 원순 서울 시장의 인터뷰 기사 중 마지막 대목이 신선했습니다.
그렇지만 시민들의 삶은 윤택해지고 서울은 더 좋아졌다는 도대체 저 사람 뭐 하는지 모르겠다는 말을 듣고 싶다. 시경에 보면 농민이 밭을 갈고 있는데, 황제가 지나가도 못 알아 봤다는 고사가 있다. 시장이 너무 요란하면 시민이 불편할 수 있다.”
온통 배경인 시민과 조화된 시민 친화적인, 인위(人爲)가 아닌 무위(無爲)의 삶에 대한 소망이 담겨있는 겸손한 고백입니다.
하느님의 자리에 내가 가득하기 때문입니다.
탐욕과 교만, 불안과 두려움, 근심 걱정입니다.
북 이스라엘의 임금 예로보암과 복음의 예수님이 극명한 대조를 이룹니다.
전자는 나로 가득 차 있기에 불안과 두려움 속에 중심을 잃고 있는 모습입니다.
한 마디로 믿음 부재를 상징합니다.
제멋대로 사제를 임명하며 금송아지 우상에게 예배드리게 합니다.
하느님이 가려 전혀 보이지 않습니다. 마침내 예로보암 집안은 이런 일로 죄를 지어, 멸망하여 땅에서 사라지니 참 비참한 종말입니다.
믿음의 빛만이 두려움과 불안의 어둠을 몰아내 텅 빈 충만의 믿음을 살게 합니다.
이 광야의 절망적 상황에서도 추호도 당황하거나 서두르지 않습니다. 참으로 자연스럽고 자유로워 보입니다.
침착하게 하느님의 임재(臨在)를 기다립니다.
떼어서 군중들에게 나누어 주게 하시고, 작은 물고기 역시 축복하신 다음 나누어 주게 하십니다.
배불리 먹고 남은 조각만 모았더니 일곱 바구니나 되었다 합니다.
과거의 시나이 광야에서의 만나의 기적을 연상케 하며 미래에 있을 하느님 나라 잔치를 보여줍니다.
당신 말씀과 생명의 성체로 우리를 부요하게 하시고 부족한 믿음을 더해 주시어 더욱 하느님 친화적인 삶을 살게 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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