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개안(開眼)의 여정 - 2.15,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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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명준 | 작성일2012-02-15 | 조회수655 | 추천수5 | 반대(0) 신고 |
2012.2.15 연중 제6주간 수요일 야고1,19-27 마르8,22-26
있는 그대로 참 힘들어 편견(偏見), 선입견(先入見)이란 말도 있습니다.
대부분 사람들이 자기 전문 분야가 아닌 다른 분야에 대해서는 거의 맹인 수준이기 때문입니다.
아는 것 보다는 모르는 것 천지인 맹인들인 우리들입니다. 농사에 늘 1학년 초보자 같다는 고백을 합니다.
이런 깨달음이 역설적으로 지혜요 겸손입니다. 언젠가도 다룬 주제입니다만 개안이란 말마디가 적절하여 다시 택했습니다.
‘1먼눈이 보이게 됨, 2불상을 만들어 처음 불공을 드리는 의식, 3불도의 진리를 깨달아 앎’으로 소개 되어 있었습니다.
개안과 더불어 떠오른 단어가 문맹이란 단어였습니다.
문맹의 경우라면 얼마나 답답하겠는지요. 봐도 보지 못하고 들어도 듣지 못하는 사람들일 것입니다.
눈멀었다는 맹(盲) 자가 들어가는 단어도 줄줄이 떠올랐습니다. 맹인(盲人), 맹아(盲兒), 맹목(盲目), 맹종(盲從), 맹점(盲點), 맹신(盲信), 맹진(盲進) 모두 보지 못해 알지 못했을 때 무모한 행동을 지칭하는
제대로 잘 본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습니다. 깨달음의 여정은 바로 개안의 여정입니다.
하여 깨달을 각(覺)자 안에 볼 견(見)자가 들어있습니다. 제대로 봤을 때 봄은 깨달음으로 직결됨을 깨닫습니다. 심안은, 영안은 멀었거나 형편없는 시력을 지닌 이들은 얼마나 많은지요.
세례성사가 상징하는바 개안입니다.
예수님을 만나 눈 뜨는 맹인의 경우가 상징하는바 세례성사입니다. 세례로 마음의 눈은 떴다 하지만 심안의 시력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점차적인 과정을 밟습니다. 1차적으로 맹인의 두 눈에 침을 바르시고 손을 얹으시며 물었을 때 “사람들이 보입니다. 그런데 걸어 다니는 나무처럼 보입니다.” 대답했고, 두 번째로 두 눈에 손을 얹으시니 시력이 회복되어 모든 것을 뚜렷이 보게 되었다합니다.
세월 흘러 나이 들어간다 해도 육안의 시력은 약해져가도 심안의 시력은, 영안의 시력은 좋아져가야 될 것입니다. 평생성사인 성체성사인 미사와 고백성사가 있습니다. 우리 심안의 시력을, 영안의 시력을 좋게 합니다.
아마 초대교회 때 세례 받은 신자들에게 행한 훈화일 것입니다. 여러분 안에 심어진 말씀을 공손히 받아들이십시오. 그 말씀에는 여러분의 영혼을 구원할 수 있는 힘이 있습니다. 말씀을 실행하십시오. 말씀을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사람이 되지 마십시오. …그러나 완전한 법 곧 자유의 법을 들여다보고 거기에 머물면, 듣고서 잊어버리는 사람이 아니라 실천에 옮겨 실행하는 사람이 됩니다. 그러면 그 사람은 자기의 그 실행으로 행복해질 것입니다.”
심안은, 영안은 더욱 밝아져 영혼의 구원에 참 행복을 누리게 된다는 것입니다.
듣기는 빨리하되, 말하기는 더디 하고 분노하기도 더디 할 것입니다.
사람의 분노는 하느님의 의로움을 실현시키지 못합니다. 신심이 깊다고 하면서도 제 혀에 재갈을 물리지 않는다면 그 신심은 헛된 것입니다. 내 맘 속에 당신 법이 새겨져 있나이다.’(시편40,9)라는 대목과
(1데살2,13)라는 대목입니다. 곤궁 중에 있는 사람들을 돌보아 주고 세상에 물들지 않도록 자신을 지키는 것입니다. 심안이, 영안이 점차 맑고 밝아질 때 이뤄지는 열매들입니다. 우리의 눈을 열어 주시고 시력을 회복시켜 주시어 주님이 얼마나 좋으신지, 우리가 받은 은총이 얼마나 큰 지 잘 깨달아 알게 하십니다. 찬미와 감사의 미사와 성무일도의 은총이 우리 심안의 시력을, 영안의 시력을 더욱 좋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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