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죽기 전에, 죽어서 부활한다 [참조 자료 변경]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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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장이수 | 작성일2012-03-01 | 조회수365 | 추천수0 | 반대(0) 신고 |
세례와 부활 = 재생으로 같다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소순태님 댓글 참조> 소순태 (sunsoh) (2012/02/29) : 예를 들어, 가톨릭 보편 교회의 "통공 교의"의 핵심이 담겨 있는 "세례"를 두고서, 누군가가 자꾸 "세례가 곧 부활이야!" 라고 주장한다면, 그러한 자가 사용하는 용어들인 "세례"와 "부활"의 정의(definition)들이 무엇인지 (여기에는, 가톨릭 교회에서 정의하고 있는 "세례"와 "부활"의 의미와 어떻게 다른지를 포함됨)를 우선적으로 잘 들여다 보아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의 거룩한 변모 ㅡ 주님의 부활을 미리 봄).....(우리 자신의 거룩한 변모 ㅡ 우리 자신의 부활을 미리 봄) => 두번째 재생의 성사 (보이지 않는 은총이 보이는 형태로 주어지는 것) 두번째 재생의 성사적인 삶 = 부활의 삶 ??? 보이지 않는 부활의 은총이 보이는 형태로 주어지는 삶 = '부활의 삶' ?
소순태 (sunsoh) (2012/02/29) : + 찬미 예수님! 장 형제님께서 추가적으로 잘 지적하셨다는 생각입니다. 예수님의 거룩한 변모는 사후일까요? 아니면 "인생 한 복판"(이제민 신부님)일까요? 주님의 부활을 미리 보여준 사건 => '거룩한 변모'인데 주님의 거룩한 변모가 이루어진 것이 사후일까요? 아니면 이제님 신부님의 개념정의 처럼 "인생 한 복판" 일까요? 예수님의 거룩한 변모가 예수님의 부활을 앞서 보여주신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이제민 신부님 처럼 예수님의 <인생 한 복판에서 부활이 이루어졌다면> 왜 죽으셨을까요? 이제민 신부님께서는 "부활이 죽기 전에 일어나는 사건"이다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과연 <죽기 전에 거룩한 변모>가 이루어졌을까요? 죽음을 맞이하고 아예 끝남이 거룩한 변모일까요? 아니면 죽음 후의 부활이 거룩한 변모일까요? 이제님 신부님의 글에 <"부활은 죽기 전에 일어나야 할 사건">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생물학적인 죽음 전에 일어나야 할 사건이 '부활'이다고 말합니다. 죽기 전에 <"인생 한 복판에서"> 죽을 수 있는 존재(인간)가 부활하여 '부활의 삶'을 산다고 이제민 신부님은 말합니다. 이제민 신부님은 분명히 이렇게 말합니다. '죽어야 부활한다'는 의미로써 분명히 말합니다. 그런데 이 죽음은 생물학적인 죽음을 말하지 않습니다. 이제민 신부님은 <부활은 죽기 전에 일어나야 할 사건>이다고 하면서 <사람은 생물학적인 죽음으로 모든 것이 끝이 나는 것입니다> 이제민 신부님의 말은 <생물학적으로 죽고 나면 '부활'은 없습니다> 그런데도 이제민 신부님은 <죽어야 부활한다>고 말합니다. 이제민 신부님에 의하면 "인생 한 복판에서"의 죽음은 생물학적인 죽음이 아닙니다. 어떻게 죽어야 할까요? 이제민 신부님은 <자신을 죽이는 삶>을 '죽음'이다고 언급하면서 '이 죽음'에서 부활하는 부활의 삶을 말합니다. 골고타 사건은 <자신을 죽이는 삶을 최종적으로 보여준 사건이다>하고 이제민 신부님은 말합니다. 이제민 신부님 처럼 과연 인간은 <(생물학적으로) 죽기 전에 ㅡ 죽어서 ㅡ 부활해야 한다>는 것이 이성적으로 타당한 이치일까요? 어떻게 죽는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며 어떻게 부활한다는 말일까요? <죽기 전에 ㅡ 죽어서 ㅡ 부활해야 한다>는 이신부님의 주장은 '재생의 삶'에 가깝고 '부활의 삶'이라고 하기에는 많은 무리가 있다고 봅니다. 세례시에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한다고 성경과 교회는 가르치고 잇습니다. 여기서의 죽어서 부활해야 한다는 이제민 신부님의 '부활의 삶'은 결론적으로 [ 첫번째 재생의 삶 (세례성사) ]에 대한 설명과 같아 보입니다. 영신적인 의미로서 재생의 새로운 삶(인간) 곧, 영신적인 인간으로 재생 ( 새 인간) 이는 죽어서 부활하는 삶이 아니라, 날마다 새롭게 태어난다는 재생의 삶이다 생각해 봅니다. <참조> 185531번글 재생의 삶? 부활의 삶? [첫번째 재생과 두번째 재생]의 댓글을 정리했습니다. ..........................................................................................
생각할 문제는
죽기 전에 ㅡ 죽어서 ㅡ 부활한다는 점입니다 분명히 이제민 신부님께서 "죽어서 부활해야 한다" 하고 말하셨습니다 이것은 죽어야 => 부활한다는 것을 명백하게 말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제민 신부님께서는 인생 한 복판에서 (생물학적인 죽음 이전에서) 죽어서 부활한다는 것이 부활(의 삶)이다고 단정내리십니다 인생 한 복판에서 (생물학적인 죽음 이전에서) 어떻게 죽어서 ㅡ 어떻게 부활합니까 죽기 전에 ㅡ 죽어서 ㅡ 부활해야 한다고 이제민 신부님의 주장이시기 때문입니다 이제민 신부님께서는 이 부분의 설명을 제외시켰습니다 .................................................................... < 아래는 참조할 이제민 신부님의 부활설입니다 >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이제민 신부 "나는 저승을 믿지 않는다" 이제민 신부의 '내가 믿는 부활은?'- 2 ‘내가 믿지 않는 부활’이라는 말로 실마리를 풀어나가고자 한다. 부활은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이 상투적으로 믿는 부활을 넘어선 경지이기 때문이다. 나는 천국이든 극락이든 저승을 믿지 않는다 다시 살아나는 삶은 없다 부활은 살아 있는 동안 체험해야 한다 ‘사후’는 ‘인생 다음’이 아니라 ‘인생 중’에 일어나는 사건이다 예수는 생의 마지막에 '당신을 죽인 삶'을 최종적으로 보여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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