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가난한 라자로 - 3.8.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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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명준 | 작성일2012-03-08 | 조회수432 | 추천수6 | 반대(0) 신고 |
2012.3.8 사순 제2주간 목요일 예레17,5-10 루카16,19-31
‘하느님이 도와주신다.’라는 라자로의 이름 뜻이 참 은혜롭습니다. 깊이 들여다보면 우리 모두가 하느님의 도움을 받고 사는 가난한 라자로입니다. 끊임없는 회개를 통해 내가 가난한 라자로임을 깨닫게 되고 가난한 라자로의 이웃을 발견합니다.
빈부의 큰 구렁이 이를 입증합니다. 그러나 하느님은 얼마나 많이 지녔느냐의 소유를 보시는 게 아니라 어떤 사람이냐의 존재를 보십니다.
투명하게 들어나는 가난한 라자로의 존재입니다.
‘어떤 부자가 있었는데, 그는 자주색 옷과 아마포 옷을 입고 날마다 즐겁고 호화롭게 살았다.’
소유 속에 묻혀 살다 보니 자기가 실종되어 이름도 없습니다. 원래 들어나기를 꺼려 익명 속에 머물고 싶어 하는 부자들입니다. 재물을 지켜야 하기에 늘 불안과 두려움이 저변에 깔려있습니다.
지혜로운 자 같으나 어리석기 짝이 없고, 부자인 것 같으나 내면은 참 얕고 가벼운 빈자입니다.
저주를 받으리라. 그의 마음이 주님에게서 떠나 있다. 그는 사막의 덤불과 같아, 좋은 일이 찾아드는 것도 보지 못하리라.”
'사람은 섬이 아니다(No man is an island)'란 말이 생각납니다. 그러나 오늘 복음의 이름도 없는 어떤 부자는 꼭 고립 단절된 섬 같습니다.
철통같은 자기애와 이웃에 대한 철저한 무관심으로 자기 안에 갇힌 수인의 모습이요 바로 이게 지옥입니다.
기도를 통해 위로 하느님께 열려야 하고 자선의 나눔을 통해 옆으로 라자로에게 열렸어야 하는 데 위로 좌우사방으로 완전히 닫혔습니다.
누가 그 마음을 알리오? 내가 바로 마음을 살피고 속을 떠보는 주님이다. 나는 사람마다 제 길에 따라, 제 행실의 결과에 따라 갚는다.”
구원은 멀리 있는 게 아니라 언제나 가까이 있습니다. 회개의 표징도, 구원의 표징도 바로 가까이 있습니다.
바로 가까이 있는 가난한 라자로가 회개의 표징, 구원의 표징입니다.
1%의 부자에 99%의 곳곳에 소외되고 가난한 이들 모두가 상징하는바 가난한 라자로요
영육으로 가난한 라자로들이 끊임없이 찾습니다.
무분별하게 세력을 확장해가는 부자들의 모습을 보면 꼭 어린왕자에 나오는 바오밥나무 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우리 내면의 바오밥나무의 세력을 무력화시킬 수 있습니다.
나눔을 통해 메워 지는 너와 나 사이의 단절의 큰 구렁입니다.
서로 간 단절의 큰 구렁이 없습니다.
가난하나 주님을 신뢰함으로 부요하고 행복한 라자로입니다.
그는 물가에 심긴 나무와 같아, 제 뿌리를 시냇가에 뻗어 무더워가 닥쳐와도 두려움 없이, 그 잎이 푸르고, 가문 해에도 걱정 없이 열매를 맺는다.”
하느님께 뿌리내린 소유가 아닌 존재 자체로 부자요 행복한 라자로입니다.
가난한 라자로들인 우리 모두를 당신 말씀과 성체의 양식으로 부요하게 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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