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하느님은 사랑이시다 - 3.18.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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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명준 | 작성일2012-03-18 | 조회수397 | 추천수4 | 반대(0) 신고 |
2012.3.18 사순 제4주일 역대 하36,14-16.19-23 에페2,4-10 요한3,14-21
오늘 ‘래타레(Laetare)’ 기뻐하라 장미주일의 강론주제입니다. 오늘 두 편의 독서와 복음이 온통 하느님은 사랑이심을 입증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부조리한 일이 많으며 세상살이가 힘든 가 많은 이들이 회의합니다.
성실하게 신앙생활하며 문방구를 하는 형제였습니다.
우리 문방구 같은 자영업자들에게 손실이 큽니다. 손님이 없기 때문입니다. 혹시나 하여 주일 날 가게를 열어봤습니다만 하루 종일 번 것이 3500원이었습니다. 다음부터는 아예 열지 않습니다.”
내가 기뻐하면 어디엔가 슬퍼하는 사람이 있기 마련입니다. 하루 3500원이라니 얼마나 사람을 비루하고 초라하게, 비참하게 만드는지요.
가난, 영성, 사랑, 기도 온갖 화려한 영적 용어들이 사치처럼 느껴질 것입니다.
현실성 없이 뜬 구름 잡는 말씀처럼 막연히 느껴질 것입니다. 하나의 단면적 현상일 뿐 이와 유사한 경우도 부지기수일 것입니다. 이래서 하느님에 대한 회의로 점점 냉담자들이 늘어나는 지도 모르겠습니다.
없는 이들은 없는 이들 끼리 어울립니다. 참 차별이 심합니다. 서로 넘을 수 없는 큰 구렁입니다.”
말 그대로 소유가 존재를 결정한 꼴입니다. 그가 지닌 소유에 따라 등급이 나눠지니 같은 세상에 살지만 서로 딴 세상에 사는 것 같습니다. 이 큰 구렁을 어떻게 메워 화해와 평화, 일치의 세상을 이룰지, 참 어려운 과제를 안고 사는 우리 믿는 이들입니다.
“공부시간에 교수님이 시간이 있으면 무슨 놀이를 하고 시간을 보내는지 발표하라고 했어요. 그러자 유치원 선생을 하는 분은 ‘잠이나 실컷 잤으면 좋겠어요, 저에겐 잠자는 것이 노는 것입니다.’ 말했고 ‘저는 매이는 모든 것에서 벗어나 그냥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자유로이 있고 싶어요. 그냥 모든 것에서 벗어나 자유로이 있는 것이 저에겐 노는 것입니다.’ 라고 말했습니다.”
이런 현장의 진솔하고 절박한 목소리들을 들을 때마다 감동하고 더욱 하느님을 찾게 됩니다.
고단하고 힘들고 여유 없이 살아가는 대부분 사람들입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시다.’라는 말을 실감하기가 너무 힘듭니다.
자기만의 시간, 자기만의 공간도 없이, 여유 없이, 하루살이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 현실입니다.
오히려 이럴수록 ‘하느님은 사랑이시다’라는 말씀을 잡아야 삽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시다.’라는 말씀에 회의를 갖게 하여 결국 냉담케 하는 모든 생각들은 그대로 악마의 그럴듯한 유혹입니다.
하느님에게서 예수님의 얼굴을 보고 예수님 얼굴에서 하느님을 봅니다. 언제 어디에나 현존하시는 하느님이자 부활하신 주님이십니다.
바빌론 포로생활 후 페르시아 임금 키루스의 마음을 움직여 이스라엘 백성을 귀향길에 오르게 한,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느님이십니다.
어디에나 가득한 하느님의 사랑이요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특히 그리스도 예수님의 십자가 안에서 환히 드러나는 하느님의 사랑입니다.
사람의 아들도 들어 올려 져야 한다. 믿는 사람은 누구나 사람의 아들 안에서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려는 믿는 것이다.’
보고 믿으라고 성전 제단 뒷면 중앙에 높이 들어 올려 진 십자가의 그리스도 예수님이십니다.
열쇠 없이도 들어갈 수 없는 문입니다.
열쇠 없이도 언제나 들어갈 수 있으니, 열쇠 없는 자유롭게 열린 문 같은 세상이라면 얼마나 자유롭고 좋겠는가, 많이 생각했습니다.
누구나 열쇠 없이도 마음만 먹으면 들어갈 수 있는 문이 그리스도 예수님입니다.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셨습니다.
예수님 문을 통해 하느님께 이릅니다.
영원한 생명의 성체를 모시는 우리들입니다.
선택의 결단 있어 은총도 작용합니다.
세상을 심판하시려는 것이 아니라 세상에 아들을 통하여 구원을 받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그러나 믿지 않는 자는 심판을 받았습니다. 하느님의 외아들의 이름을 믿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멸망이냐 영원한 생명이냐, 구원이냐 심판이냐는 내 믿음의 결단에 달렸습니다.
거부하며 심판의 멸망입니다.
자기가 자초한 심판이요 멸망의 죽음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믿음에 자연스럽게 뒤따르는 은총입니다.
이미 구원 받고 살아가는 우리들이니 온갖 근심 걱정을 주님께 맡기십시오.
믿음의 열매이자 하느님의 선물이 바로 우리의 구원입니다.
십자가의 주님 앞에 가만히 머물러 주님을 바라보며 믿음을 주십사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생명의 물을 찾아 땅 속 깊이 뿌리내리는 나무처럼, 태양 빛을 찾아 하늘 높이 가지 뻗는 나무처럼 우리 영혼 역시 생명과 빛을 찾아 나아가야 삽니다.
바로 어둠입니다. 요한 사도의 설명이 명쾌합니다. ‘그 심판은 이러하였다. 빛이 세상에 왔지만, 사람들은 빛보다 어둠을 사랑하였다. 빛을 향하면서도 동시에 어둠의 악을 향하는 모순덩어리 불가사의의 인간입니다.
자기와의 영적싸움이 그토록 중요합니다.
누구나 빛을 싫어하고 미워하여 빛으로 나아가지 않습니다. 자기가 한 일이 드러나지 않게 하려고 어둠을 찾아 어둠 중에 익명으로 머물기를 좋아합니다.
참으로 악을 분별할 수 있는 지혜가 2012년 선거 해를 맞아 참으로 중요합니다.
바로 이런 정의롭고 정직하고 용기있고 지혜로운 정치지도자들을 만날 때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진리를 실천하는 이는 빛으로 나아갑니다.
진리의 빛이 우리의 어둠을 밝히고 자유롭게 하며 기쁨을 줍니다.
이 말씀 붙잡으면 살고 놓치면 죽습니다.
영원한 생명에 진리의 빛 충만한 삶입니다.
우리는 선행을 하도록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창조되었습니다. 참 은혜로운 바오로의 말씀입니다.
천 조각을 하나의 예수님 그림으로 맞추는 인내와 끈기, 침착함을 요구하는 작업입니다. 마침내 며칠 동안 공동작업 끝에 완성된 예수님의 모습이었습니다.
참 나의 퍼즐을 맞춰 완성해가는 하느님의 작품입니다. 천 조각이 아닌 수만 조각의 퍼즐놀이 같은 우리 인생, 하느님의 작품입니다.
우리 모두를 좋은 믿음과 진리의 빛으로 가득 채워 주시어 하느님의 작품인 참 나의 완성에 항구할 수 있는 힘과 지혜를 주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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