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시기, 어떻게 보내야 할까
예수님 공생활 모습처럼 일상에서 소외된 이들과 함께해야 교회는 주님 세례 축일로 성탄시기를 마무리하고 연중시기에 들어섰다. 많은 신앙인들은 연중시기에 대해 큰 행사를 치르고 잠깐 쉬는 기간으로 여기며 중요한 의미부여를 하지 않는다. 실제로 특별한 기념을 하는 시기는 아니지만 34주간(혹은 33주간)이라는 가장 긴 기간을 지낸다. 하느님 나라를 위해 긴 순례의 길을 가는 여정에서 연중시기를 뜻 깊게 보낼 수 있는 신앙인의 자세는 어떤 모습일까. - 교회는 연중시기에 구원의 신비를 다양한 면에서 경축하면서 예수님의 공생활 행적과 말씀을 듣고 살아간다. 그림은 제임스 티소의 ‘예수에게 병자들이 다가왔다’. 연중시기의 의미 교회 전례력은 대림, 성탄, 사순, 부활, 연중시기들과 여러 축일들로 구성돼 있다. 연중에 해당하는 시기는 ‘주님 세례 축일’ 후 월요일부터 ‘재의 수요일’ 전 화요일까지의 기간과 ‘성령 강림 대축일’ 후 월요일부터 대림 시기 전 토요일까지다. 연중시기는 그리스도의 특별한 신비에 대해 축제를 지내지 않으며 어느 고유한 주제와 계획을 제시하지는 않는다. 즉 이 시기엔 구심점을 이루는 복음에서도 예수님의 세례를 시작으로 인간의 구원을 위한 전교활동과 복음 선포, 기적행위, 진리에 대한 가르침, 신앙의 성장을 위한 교훈, 교회의 성장하는 모습을 제시하고 있다. 연중시기는 하느님 나라 순례의 종착점인 ‘온 누리의 임금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왕 대축일’로 끝을 맺는다. 이 기간 동안 사제는 생명과 희열, 희망을 상징하는 녹색제의를 입고 미사를 집전한다. 연중시기 또 하나의 의미, 예수님의 공생활 교회의 전례주년은 그리스도 구원의 위대한 역사를 담고 있다. 하지만 해마다 반복되는 시기를 지내다 보면, 인간적 관점에서 그 의미를 새기기가 쉽지 않다. 특히 연중시기는 다른 시기보다 밋밋하게 느껴질 수 있다. 윤종식 신부(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 교수)는 이러한 연중시기에 대해 “특별한 사건이 있진 않지만 평범함 속에서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에게 다가가는 예수님의 모습이 어떤 것인지 살펴보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아울러 윤 신부는 “연중시기는 예수님과 공생활을 함께 지내는 시기인 만큼 공생활 중에 말씀과 삶이 일치하고 있는 예수님의 모습을 닮으려고 노력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나승구 신부(서울대교구 빈민사목위원회 위원장)는 “평범한 연중시기지만 예수님의 가르침처럼 어떻게 하면 소외된 이들에게 다가가고 도울 수 있을지 늘 고민한다”고 말했다. 또한 학교 밖 청소년들의 자립을 위해 투신 중인 김정미 수녀(성심수녀회)는 “공생활 중 예수님이 일상 안에서 소외된 사람들을 만난 것처럼 학교 밖 청소년들에게 일상적이고 지속적인 보살핌의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이 연중시기를 살아가는 신앙인의 자세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복음에 나타난 예수님의 공생활 연중시기는 예수님 공생활의 행적과 말씀을 듣고 살아가는 시기다. 이에 맞게 연중시기의 미사 독서는 구원의 기쁜 소식을 전하는 예수님의 공생활과 교회의 성장 모습을 주로 들려준다. 예수님은 세례를 받고, 요한 세례자가 잡힌 뒤 본격적으로 자신의 신원을 드러내며 공생활을 시작한다. “온 백성이 세례를 받은 뒤에 예수님께서도 세례를 받으시고 기도를 하시는데, 하늘이 열리며 성령께서 비둘기 같은 형체로 그분 위에 내리시고, 하늘에서 소리가 들려왔다. ‘너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루카 3,21-22) 세례 후 하느님의 아들임을 공적으로 드러낸 예수님은 하늘나라를 선포한다. “예수님께서는 ‘회개하여라. 하늘나라가 가까이 왔다’하고 선포하기 시작하셨다.”(마태 4,17) 이어서 본격적으로 죄인, 여자, 병자 등 소외되고 가난한 이들에게 다가간다. 즉 예수님은 공생활 동안 가난한 이들, 묶인 이들과 억눌린 이들이 복음의 중심인물임을 드러낸다. “예수님께서는 회당을 떠나 시몬의 집으로 가셨다. 그때에 시몬의 장모가 심한 열에 시달리고 있어서, 사람들이 그를 위해 예수님께 청하였다. 예수님께서 그 부인에게 가까이 가시어 열을 꾸짖으시니 열이 가셨다. 그러자 부인은 즉시 일어나 그들의 시중을 들었다.”(루카 4,38-39) “해 질 무렵에 사람들이 갖가지 질병을 앓는 이들을 있는 대로 모두 예수님께 데리고 왔다. 예수님께서는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손을 얹으시어 그들을 고쳐 주셨다.”(루카 4,40) “예수님께서 손을 내밀어 그에게 대시며 말씀하셨다. ‘내가 하고자 하니 깨끗하게 되어라.’ 그러자 곧 나병이 가셨다.”(루카 5,13) 예수님은 하느님 사랑을 알려주심에 신분과 국적, 성별 등에 전혀 얽매이지 않으며, 파격적인 행보를 계속해서 이어 나간다. “주님께서는 그 과부를 보시고 가엾은 마음이 드시어 그에게, ‘울지 마라’하고 이르시고는, 앞으로 나아가 관에 손을 대시자 메고 가던 이들이 멈추어 섰다.”(루카 7,13-14) “그 뒤에 길을 지나가시다가 세관에 앉아 있는 알패오의 아들 레위를 보시고 말씀하셨다. ‘나를 따라라.’ 그러자 레위는 일어나 그분을 따랐다. 예수님께서 그의 집에서 음식을 잡수시게 되었는데, 많은 세리와 죄인도 예수님과 그분의 제자들과 자리를 함께하였다.”(마르 2,15) 마침내 예수님은 행복선언을 통해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이 하느님 나라에서 핵심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음을 선포한다. “행복하여라, 가난한 사람들! 하느님의 나라가 너희 것이다. 행복하여라, 지금 굶주리는 사람들! 너희는 배부르게 될 것이다. 행복하여라, 지금 우는 사람들! 너희는 웃게 될 것이다. 사람들이 너희를 미워하면, 그리고 사람의 아들 때문에 너희를 쫓아내고 모욕하고 중상하면, 너희는 행복하다! 그날에 기뻐하고 뛰놀아라. 보라, 너희가 하늘에서 받을 상이 크다. 사실 그들의 조상들도 예언자들을 그렇게 대하였다.”(루카 6,20-23) 예수님을 따라서 공생활 중 드러난 예수님의 가르침에 따라 교회는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이 겪는 고통에 깊은 관심을 표명하고 이러한 현실을 극복하는 것이 모든 그리스도인들의 몫임을 천명한다. 2014년 한국을 방문한 프란치스코 교황은 주교들과의 만남에서 “예수님께서는 공생활을 시작하시며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러 오셨음을 나자렛 회당에서 분명히 말씀하셨다”며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과 함께하는 연대가 신자들의 정신과 마음에 스며들어야 하며, 교회 생활의 모든 측면에 반영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연중시기의 평범한 일상 안에서 공생활 동안 행하신 예수님의 가르침을 실천하며 살아가는 것이 하느님 나라로 들어가는 문이 된다. 즉 연중시기의 평범한 일상을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과 연대할 때 성탄과 부활로 이어지는 그리스도의 신비 전체에 참여하는 기쁨을 누릴 수 있을 것이다. [가톨릭신문, 2019년 1월 20일, 박민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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