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의 신비여
사제 생활 50년의 단상
왕영수 신부 지음
1. 스스로 깊어지는 힘, 회개
05 공동체를 기쁘게 한 회개
1982년 미국 오하이오 주 데이톤에 있을 때입니다.
성탄절을 준비하면서 40~50명의 신자들에게 약 30분 정도의 면담고
해성사를 보라고 시간을 정해주었습니다. 어느 날, 고해성사에 빠진
사람이 한두 명 있어서 나도 잠시 쉬고 싶었습니다. 눈을 감고 휴식을
취하고 있는데 문득 <마태오 복음>의 한 구절이 떠올랐습니다.
"네 안에 어둠이 있는데 너는 그것을 빛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을 빛
이라고 생각하는 너의 아픔이 얼마나 심하겠느냐?" (마태 6,23)는 내
용의 말씀이 내 머릿속으로 파고들어오는 듯했습니다.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그동안 나는 '이것이 진리다.", "이것은 사제로서 내가 살
아가는 중요한 좌우명이다.", "내 소신이다." 또는 "이것은 교회의 원
칙이다." 하면서 신자들에게 내 생각을 주장하고 설득하고 강요했다
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는 곰곰이 생각해보았습니다. 물론 그런 내 말의 내용은 분명 진
리이며 교회의 원칙입니다. 그러나 많은 부분 그것들은 내가 나를 거
룩하게 포장하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할 때가 많았다는 생각이 들었
습니다.
과거 사제생활을 하면서 이루지 못했던 것들에 대한 아픔과 한을
보상받기 위해서 진리와 교회의 가르침 위에 내 신념을 보태어 교회
의 이름으로 강요한 경우가 많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아주 그럴
싸하게 합리화해서 신자들이 무조건 따라오도록 강요했던 것은 아니
었던가? 자신이 실천하기도 어렵고 따르기도 곤란한 일들, 그렇다
고 거부할 수도 없는 일들 때문에 신자들은 얼마나 힘들었을까?
'네 안에 있는 빛은 빛이 아니라 어둠이다. 네가 그것을 빛으로 알
고 있기 때문에 그것을 벗어나기가 너무 힘들다.'
이 묵상을 통해 나는 그동안 내가 신자들에게 부담스러운 말들을
너무 많이 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로 인해 마음고생을 한 신자
들이 얼마나 많았을까?
며칠 후 성탄미사를 마치고 나서 나는 신자들이 모인 자리에서 나
의 언행이 솔직하지 못했음을 사과했습니다. 지난 1년 동안 여러분
에게 고통을 준 데 대해 죄송하게 생각한다고 솔직하게 이야기했습
니다. 진리요, 좌우명이요, 소신이요, 원칙이라고 하면서 내가 실천
하기도 힘든 일을 강요했던 것, 그것이 하느님의 뜻이 아닐 수도 있
음에도 하느님의 은총이라고 했던 내 말들에 대해 용서를 구했습니
다. 나는 아주 단순한 마음으로 잘못을 시인했고, 내 잘못을 신자들
이 용서해 주기를 바랐습니다.
놀랍게도 그 후 한 달 동안 우리 신자들은 아주 큰 기쁨을 누리며
살았습니다. 한 사제가 소박하게 회개했을 때 공동체가 기뻐하는 것
을 보고 나는 또다시 회개의 위대한 힘을 느꼈습니다. 사제의 회개는
진정한 복음이었습니다. 사제가 회개의 삶을 살아가는 것, 그것이야
말로 복음 선포의 핵심이라는 것을 마음 깊이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사제가 먼저 회개하는 것이 신자들을 사랑하는 값진 행동이며, 백
마디 말보다도 진정으로 회개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 교회를 사랑
하는 길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여러분에게 맡겨진 양 떼를 잘 치십시오. 그들을 --- . 하느님의
뜻을 따라 자진해서 하며 부정한 이익을 탐해서 할 것이 아니라 기쁜
마음으로 하십시오. 여러분에게 맡겨진 양 떼를 지배하려 들지 말고,
오히려 그들의 모범이 되십시오. 그러면 목자의 으뜸이신 그리스도
가 나타나실 때에 시들지 않는 영광의 월계관을 받게 될 것입니다."
(1베드 5,2-4)
주님의 평화가 항시 함께 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