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허무(虛無)한 삶에서 충만(充滿)한 삶으로 - 4.13.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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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명준 | 작성일2012-04-13 | 조회수399 | 추천수5 | 반대(0) 신고 |
2012.4.13 부활 팔일 축제 내 금요일 사도4,1-12 요한21,1-14
허무(虛無)는 충만(充滿)으로, 벽(壁)은 문(門)으로 바뀝니다.
우리 삶의 허공(虛空)에
우리 안 허무의 어둠을 충만한 빛으로 바꿉니다.
어렵게 개인택시를 마련한 분이 축복을 받으러 왔습니다. 새 차가 참 맘에 들었습니다. ‘이래서 사람들이 새 것을 좋아하는 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축복 전 덕담을 드리니 서로 기분이 좋았습니다.
형제님도 ‘새 사람’이 되었으니 매일 새 사람으로 사십시오.”
마음이 새로우면 늘 새 사람에 새 하늘, 새 땅입니다. 부활하신 주님을 만날 때 바로 새 마음에 새 사람입니다.
마리아 막달레나, 엠마오 도상의 두 제자, 오늘 복음의 제자들의 경우가 이를 입증합니다.
역시 매일 미사를 통해 우리를 찾아오시는 부활하신 주님이십니다.
전반부와 후반부가 극명한 대조를 이룹니다.
“나는 고기 잡으러 가네." 하고 말하자, 그들이 ”우리도 함께 가겠소.”하였다. 그들이 밖으로 나가 배를 탔지만
바로 부활하신 주님 부재의 삶을 상징합니다.
고기가 너무 많이 걸려 제자들은 그물을 끌어 올릴 수가 없었다합니다.
사랑할 때 진리를 깨달아 알게 되고 알 때 보이는 법입니다. 사랑에 눈이 열려 즉각 주님을 알아 본 애제자의 고백입니다.
맨 먼저 반가움에 물속에 뛰어든 사람은 수제자 베드로입니다.
아름다운 보완 관계에 있는 수제자 베드로와 애제자 요한입니다.
허무는 충만으로, 어둠은 빛으로, 가난은 풍요로 변화되었음을 상징하는 물고기 기적입니다.
사도들을 감옥에 가둘 수는 있어도 부활하신 주님을 가둘 수는 없어 사도들의 가르침으로 많은 이가 믿게 되었고, 장정만도 그 수가 오천 명가량이나 되었다 합니다.
교회의 그물에 가득 담긴 구원 받은 사람들입니다.
성령 가득한 베드로의 열화 같은 설교입니다.
‘너희 집 짓는 자들에게 버림을 받았지만,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신 분’이십니다. 그분 말고는 다른 누구에게도 구원이 없습니다. 사실 사람들에게 주어진 이름 가운데에서 우리가 구원받는 데에 필요한 이름은
허무의 어둠을 몰아내시고 생명과 빛으로 충만케 하시고자 우리 모두 당신 미사의 식탁에 초대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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