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남 속으로
이제민 지음
하느님을 만나게 해준 사람들
봉춘이 1
어느 날 미사를 마치고 마당에 서 있는데 등 뒤에서 누가 나
를 힘껏 껴안는다. 돌아보니 처음 보는 사람인데 히죽히죽 웃고
있었다. 그렇게 봉춘이와 처음 만났다. 봉춘이는 늘 그렇게 웃으
며 사람을 만나고, 남녀를 가리지 않고 누구에게나 다가가서 손
을 쑥 내밀어 악수를 청하고, 팔을 벌려 포옹한다. 사람들은 웃
음을 머금은 그의 얼굴이 싫지 않아 그런 그를 마다하지 않는다.
오히려 함께 껴안고 웃으며 장난을 친다. 그를 보는 것은 즐거움
이다. 그는 남들처럼 제대로 표현은 하지 못해도 남이 자기를 좋
아하고 싫어하는 것쯤은 안다. 남의 행동에 따라 그의 행동도 때
론 달라진다. 사람들은 그를 지능이 모자라는 사람이라고 말한
다.
그가 요즘에는 내 배만 보면 툭툭 치며 장난을 건다. 그게 싫
지 않아 내가 배에 힘을 주어 앞으로 쑥 내밀어 주면 더욱 신이
난 그는 점프까지 하며 주먹으로 내 배를 두들겨댄다. 그것을 보
고 할머니들은 "신부님 배를 그렇게 하면 어떻게 해." 하고 나무
란다. 나는 그런 할머니들에게 "내버려 두세요 재밌잖아요" 하
며 배에 더욱 힘을 주어 내민다. 하지만 신자들의 눈을 의식한
그는 그 일을 그만 두고 슬쩍 피한다.
그는 신자는 아니지만 미사시간이면 성당 제일 뒤에 앉아 정면
에 걸려 있는 십자가를 보기도 하고 성당에 들어오는 사람을 살
펴보기도 한다. 낯익은 사람이 들어오면 번쩍 손을 들어 아는 체
한다.
정면에 걸린 십자가를 바라보면서 그는 무슨 생각을 할까? 어
쩌면 아무런 생각도 없이 십자가를 바라보고 있는지도 모른다.
십자가는 그에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십자가에 달린 예수님은
자기를 뚫어지게 바라보는 그를 어떤 마음으로 바라보실까? 예
수님 보시기에 그가 십자가를 바라보는 것과 내가 십자가를 바
라보는 것이 어떻게 다를까? 그를 쳐다보는 예수님의 눈과 나를
쳐다보는 예수님의 눈이 다를까? 당신의 죽음을 묵상하면서 당
신을 바라보는 나와 아무 생각 없이 당신을 바라보는 봉춘이 사
이에서 그분은 어떤 차이를 감지하실까? 내 나름대로 당신을 빚
어 바라보려는 나를 그분은 애처로운 눈으로 바라보고 계시는
것은 아닐까? "벌레 같은 야곱아, 구더기 같은 이스라엘아!"(이
사 41, 14)
"예수님께서 성령 안에서 즐거워하며 말씀하셨다. '아버지, 하
늘과 땅의 주님, 지혜롭다는 자들과 슬기롭다는 자들에게는 이
것을 감추시고 철부지들에게는 드러내 보이시니, 아버지께 감사
를 드립니다. 그렇습니다, 아버지! 아버지의 선하신 뜻이 이렇게
이루어졌습니다.'"(루가 10,21)
봉춘이를 보면 안데르센의 동화 성냥팔이 소녀의 마지막 부분
이 떠오른다. 사람들은 소녀가 불쌍하게 얼어 죽었다고 생각한
다. 그러나 소녀는 성냥 한 개비 한 개비에 불을 붙여가며 하늘
나라로 행복하게 올라가지 않았던가.
봉춘이가 되게 하여 주소서!
주님의 평화가 항시 함께 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