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의 신비여
사제 생활 50년의 단상
왕영수 신부 지음
5. 태초에 말씀이 있었다
01 사람을 변화시키는 말씀의 힘
교회는 말씀으로 오신 예수님의 공동체입니다. 말씀
으로 우리를 구원하시고 말씀으로 사랑을 보여주신 예수님의 말씀 공
동체이기 때문에 교회 공동체는 말씀을 듣고 선포하고 말씀을 삶으로
나누는 가운데 성장해 나갑니다. 이는 교회 공동체가 지니는 본질적
인 요소입니다.
1991년귀국해서 초장 성당에 있을 때입니다. 귀국한 지 채 1년도
되지 않은 어느 날, 김기수(안드레아) 당시 부산지검장이 찾아왔습니
다. 1968년 범일 성당에서 혼인성사를 주례한 인연이 있었던 나를 방
문한 이유는 성서 모임을 갖고 싶다는 것과, 내가 지도해주면 좋겠다
는 것이었습니다. 당시 개신교와 불교 단체에서는 각종 모임이 활발
했던데 비해 천주교의 활동은 미미해서 안타깝다며, 법조계 성서 모
임 지도를 제의해 왔습니다.
한 달 동안의 준비 기간을 가진 후 판사, 검사, 변호사 등 10명이 모
여 성서백주간 모임을 초장 성당에서 시작했습니다. 일주일에 한 번
씩 3년간 계속된 이 모임은 참으로 은혜로웠습니다.
3년간 하루도 빠지지 않은 사람이 있는가 하면, 평균 결석률은 2회,
많이 결석한 사람이 4회였을 정도로 출석에 열의를 보였던 것이 참
인상에 남습니다. 3년 개근한 사람에게는 내가 기도하면서 생각한
"너는 내 아들, 나 오늘 너를 낳았노라."라는 <시편> 2장의 성경말씀
을 새긴 상패를 시상했습니다. 10여 년이 지난 지금도 그분은 이 말씀
을 삶의 좌우명으로 삼고 은혜를 받으면서 살고 있습니다. 그리고
본당에서 계속해서 성서백주간 모임을 주관하면서 지금 4회째를 맞
고 있습니다.
모임이 끝날 무렵 1박 2일 피정에 부인들도 초청하여 성서 모임의
기쁨과 감동을 함께 나누기도 했습니다. 마지막 모임에서는 3년간 깊
이 묵상한 성서구절을 하나만 발표하고 느낌을 나누었는데 너무나 은
혜로워서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 속에 남아 있습니다.
우리는 모임이 성공적이었다고 자체 평가를 내렸고, 그중 한 분이
그 이유를 "신부님이 우리를 학생처럼 가르치려 하지 않았기 때문입
니다."라고 했을 때 나는 주님께 감사했습니다. 나는 모임을 시작하면
서 모임의 주인은 주님이시고 예수님께서 직접 인도하여주실 것을 간
구했습니다. 따라서 다른 사람과 똑같이 내 할 일만 했을 뿐이었습니
다. 말씀을 터득하고 깨닫게 한 것은 바로 성령이시고 성령께서 하신
일이었습니다.
성서 모임을 통해 말씀이 우리를 얼마나 은혜롭게 변화시켰는지 생
각해보았습니다.
첫째, 기도생활이 바뀌었습니다. 말씀을 묵상하면서 기도하다 보니
자유기도를 자연스럽게 할 수 있었고, 성경말씀을 인용하면서 기도하
는 습관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우리 신앙이 깊어지고 그 폭이 넓어진
것을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둘째, 모두들 몸과 마음이 건강해졌습니다. 그리고 신앙생활을 성
실히 하려는 열의를 가지게 됐습니다. 그 후에도 오랫동안 평화를 누
리며 하느님과 함께 살아가는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습니다.
셋째, 가정적으로 또 사회적으로 크게 존경받고 인정받는 지도자가
되었습니다. 검찰 총장, 법무부 장관 등으로 승진하기도 했고 성가정
을 이루면서 아름답게 살게 되었습니다.
끝으로, 미사성제의 내용을 더 깊이 알게 되고 성령의 중요성을 인
식하게 되면서, 마지막 피정 때는 모두가 성령안수를 진지한 자세로
받을 수 있었습니다.
이들이 법조인이라는 직업적인 고정관념을 뛰어넘어 타인의 입장
에서 그들을 이해할 줄 아는 폭넓은 사고로 세상을 살아가는 모습을
보며, 나는 그것이야말로 성서 모임에서 얻은 가장 큰 열매라고 생각
했습니다.
우리가 성경을 읽을 때 말씀은 우리 안에서 살아 움직입니다. 그 살
아 있는 말씀은 우리에게 힘을 주고 감동을 주고 우리를 변화시킵니
다. 나는 이 성서 모임을 통해 말씀의 위대한 힘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를 변화시켜주시는 성령의 은총에 감사할 따름입
니다.
"성경은 그리스도 예수를 믿음으로써 구원을 얻는 지혜를 그대에게
줄 수 있는 것입니다. --- 진리를 가르치고 잘못을 책망하고 허물을
고쳐주고 올바르게 사는 훈련을 시키는 데 유익한 책입니다. --- 선
한 일을 할 수 있는 자격과 준비를 갖추게 됩니다."(2디모 3,15-17)
주님의 평화가 항시 함께 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