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 특집] 사순에서 부활까지 전례와 신앙생활
수난과 죽음, 부활 묵상하며 예수님 닮아가는 시기 사순 시기는 대림 시기와 함께 그리스도인의 신앙생활을 이끄는 커다란 두 축이다. 신앙인들은 사순 시기 동안 그리스도의 수난과 죽음을 묵상하면서 부활의 영광을 향해 나아간다. 풍요로운 사순 시기의 전례를 올바르게 이해하고 적극 참여하는 것은 신앙을 성숙시키는 훌륭한 방법이다. 사순 시기 전례와 올바른 신앙 생활의 요소들을 알아 본다. 올바른 전례 참여는 신앙생활의 핵심 매년 그리스도인들은 하느님의 구원 역사를 되풀이해서 체험한다. 전례는 단지 과거를 기념하고 기억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는다. 단 한 번의 희생 제사로 인류를 구원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 업적은 교회의 전례 안에서 매번 생생하게 재현된다. 구원의 신비가 끊임없이 되풀이해서 현재의 사건이 되는 것이다. 신자들은 전례에 참여함으로써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힘을 거듭 체험하며, 세상 끝날에 마침내 완전히 참여하는 구원을 미리 맛보게 된다. 그래서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 전례는 신앙생활의 가장 핵심적인 요소가 아닐 수 없다. 사순-부활, 대림-성탄은 전례와 신앙생활의 두 축 교회의 전례력은 하느님의 인류 구원의 역사를 1년이라는 전례 주기 안에 압축하고 있다. 하루, 한 주 그리고 한 해의 리듬을 갖고 있는 전례 주기는 대림과 성탄, 사순과 부활 그리고 연중 시기와 다양한 축일들로 구성된다. 이러한 한 해의 전례 주기는 아기 예수의 탄생을 기다리는 대림 시기로부터 시작된다. 연중 시기는 총 34주간으로 구성되며, 그 사이에 대림과 성탄, 사순과 부활 시기가 놓여 있다. 연중 시기는 ‘주님 세례 축일’ 후 월요일부터 ‘재의 수요일’ 전 화요일까지, 그리고 ‘성령 강림 대축일’ 후 월요일부터 대림 시기 전 토요일까지에 해당된다. 사순 시기는 재의 수요일부터 주님 만찬 성목요일 미사 전까지, 그리고 대림 시기는 주님 성탄 대축일 전 4주간의 시기다. 이러한 전례 주기 안에서 부활을 준비하는 사순 시기와 주님 부활 대축일, 성탄을 준비하는 대림 시기와 주님 성탄 대축일은 신앙인들의 전례와 신앙생활에 있어서 커다란 두 축을 이룬다. 따라서, 충실한 신앙생활을 위해 노력하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 대림 시기와 함께, 사순 시기를 잘 보내는 일은 기본적인 신앙생활의 의무가 아닐 수 없다. 사순 시기의 유래와 의미 사순 시기는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과 희생 제사를 기념하는 시기다. 하지만 예수의 수난은 수난과 고통 자체로서가 아니라, 영광스러운 부활과 직접 연결된 의미를 지닌다. 따라서 수난과 고통 그 자체의 의미에 집중하기보다는 부활의 영광과 환희에 비춰 고통과 십자가상 죽음을 묵상하게 된다. 고행과 단식 역시 그 자체로서의 의미보다는, 인류에 대한 하느님의 사랑, 이웃에 대한 자선과 나눔, 수난과 죽음 끝에 위치하는 부활의 영광에 대한 희망과 깊이 연결돼 있다. 사순 시기는 이마에 재를 얹는 재의 수요일로부터 시작된다. 그 다음 오는 첫 주일을 사순 제1주일로 해서 모두 6번의 주일을 지낸다. 마지막 사순 제6주일은 주님 수난 성지 주일이고 이때부터 성주간이 시작된다. 그 안에 포함된 주님 만찬성목요일부터 성토요일까지는 부활을 직접적으로 준비하는 파스카 성삼일로, 이 시기는 사순 시기와는 구분된다. 사순 시기는 ‘파스카 축제를 준비하기 위해 설정된 40일간의 기간’이다. 40은 다양한 상징적 의미를 갖는다. 이스라엘 민족은 광야에서 40년을 살았고, 엘리야 예언자는 호렙산으로 가면서 40일 동안 단식했다. 예수님 역시 광야에서 40일간 단식했다. 전통적으로 40이라는 숫자는 하느님 백성으로 새로 태어나기 위해 필요한 정화와 준비의 기간을 상징적으로 의미한다. 사순 시기의 전례와 영성 사순 시기의 전례적 특징을 보면, 우선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에 동참한다는 뜻에서 환희와 기쁨을 노래하는 대영광송과 알렐루야를 바치지 않는다. 제의의 색은 회개를 의미하는 보라색을 사용하고, 제대의 꽃 장식도 삼간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수난을 집중적으로 묵상하는 십자가의 길 기도를 자주 바치도록 한다. 사순 시기 전례의 흐름은 크게 두 가지로 볼 수 있다. 하나는 하느님의 자녀로 새로 태어난 세례에 대한 회상과 준비, 그리고 참회와 보속의 시기라는 점이다. 이 두 가지를 통해 신앙인들은 파스카의 신비를 준비하게 된다. 이와 관련해 「전례헌장」은 “세례의 기억이나 준비를 통하여, 또 참회를 통하여 신자들이 더 열심히 하느님 말씀을 듣고 기도에 전념하며 파스카 신비의 경축을 준비하게 함으로써, 전례에서나 전례 교리교육에서 이 두 가지 성격이 더욱 더 분명하게 제시되어야 한다”(제109항)고 규정한다. 사순 시기는 본질적으로 세례성사의 특성을 갖는다. 사순 시기에 요청되는 참회 역시 세례의 특성에 근거한다. 그리스도인들이 “그리스도와 함께 영광을 누리려면 그분과 함께 고난을 받아야”(로마 8,17) 하기에 사실 사순 시기는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정화하는 시기다.(에페 5,25-27 참조) 그래서 사순 시기의 초점은 고행이 아니라, 주님께서 이끄시는 정화와 성화다. 성주간과 파스카 성삼일, 그리고 파스카 성야 사순 시기의 마지막 주간은 성주간이다. 이 기간은 그리스도의 수난과 파스카 신비를 집중적으로 묵상하는 기간인데, 사순 시기는 주님 만찬 성목요일 미사 전까지에 해당된다. 이후 주님 부활 대축일 저녁기도까지 이어지는 기간은 파스카성삼일이라고 불리우며 구세사의 절정이자 완성인 주님의 파스카 신비, 즉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과 죽음, 부활을 경축하는 시기다. 성목요일에 거행되는 주님 만찬 미사는 성체성사의 제정을 기념한다. 사랑의 계명을 실천하라는 의미의 발씻김 예식이 이날 거행된다. 영성체 후에는 성체를 수난 감실로 옮기고 성체조배를 이어간다. 제대를 벗기고 십자가도 가려진다. 성금요일은 그리스도의 죽음을 기억하는 날이다. 성사도, 미사 집전도 없다. 다만 말씀의 전례, 십자가 경배, 영성체로 구성된 수난 예식을 거행한다. 단식과 금육을 지키며, 예수님의 죽음을 묵상하고 그 신비에 깊이 참여한다. 이어 성토요일은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예수님의 무덤 옆에 머물며 수난과 죽음을 묵상한다. 깊은 침묵 속에서 부활의 실현을 고대하고 기다린다. 제대는 벗겨진 상태이고 미사도 없다. 하지만 침묵 속의 기다림은 마침내 해가 진 다음 거행되는 파스카 성야 예식에서 장엄하게 채워져 절정을 맞는다. 성토요일, 해가 진 후 파스카 성야 예식이 거행된다. 이 때부터 다시 ‘알렐루야’를 노래하면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음을 물리치고 영광스럽게 부활하신 참된 해방의 밤을 기념한다. 어둠, 죽음에서 빛과 생명으로 건너가는 파스카 신비를 기념하는 파스카 성야 미사는 빛의 예식, 말씀 전례, 세례 예식, 성찬 전례 등 4부분으로 구성된다. 특히 성찬 전례는 부활의 정점을 이루는 부분으로서 십자가상 희생 제사를 기념하는 동시에 영원한 생명을 미리 맛보게 하는 참된 생명의 성사다. [가톨릭신문, 2019년 3월 3일, 박영호 기자] [사순 특집] 사순 시기 열쇳말 3월 6일 재의 수요일을 시작으로 올해 사순 시기가 시작된다. 사순 시기는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을 묵상하며 부활을 준비하는 기간이다. 이 시간동안 신앙인들은 재(齋)를 지킬 뿐만 아니라 극기와 희생, 보속을 실천하며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에 동참한다. ‘희생’, ‘극기’, ‘보속’ 등은 사순 시기를 대표하는 열쇳말이다. 각 단어가 지니는 뜻을 살펴보며 사순 시기의 의미를 다시금 묵상해 본다. 재(齋) - 교회서는 금식을 ‘대재’로 재의 수요일·성금요일 지켜 심신의 관리를 위한 절식, 절주 내지는 금식과 금주를 가리킨다. 「한불자전」(韓佛字典)에서는 식음의 절제(節制) 또는 전폐라고 밝혔다. 또 ‘재일’(齋日)을 단식 혹은 절식(節食)하는 날이라고 했다. 교회에서는 금식을 대재(大齋)라 해서 재의 수요일과 성금요일에 지킬 것을 권고한다. 대재는 큰 재, 즉 단식하는 재로 예수님의 고난과 죽음을 묵상하며 참된 그리스도인으로서 예수님 수난에 참여한다는 의미를 지닌다. 초대교회 때부터 사순 시기와 재일 중 신자들이 지켜야 할 의무로 여겨져 왔다. 소재(小齋)는 작은 재, 육식하지 않는 재다. 「교회법」 제1251조는 ‘재의 수요일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수난하시고 죽으신 성금요일에는 금육재와 금식재가 지켜져야 한다’고 규정한다. 연중 재를 지키는 횟수는 각국 교회 관습에 따라 다르다. 속죄 - 인간의 죄를 대신해 그리스도께서 돌아가심 사전적 뜻으로는 ‘상대방에게 지은 죄를 씻고 상호 간에 범죄 이전의 유대를 회복하는 일’로 풀이된다. 그리스도교에서는 ‘하느님을 거스른 인간의 죄를 그리스도가 대신 보속하고 인류를 하느님과 화해시킨 일’로 지칭한다. 사순 시기에 가장 자주 드러나는 단어 중 하나다. 구약에서는 속죄가 하느님께 죄를 지은 이스라엘 백성이 하느님과 친교를 회복하는 것이었다. 반면 신약에서 속죄는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잘못 때문에 죽음에 넘겨지셨지만, 우리를 의롭게 하시려고 되살아나셨습니다”(로마 4,25)처럼, ‘고난 받는 종’의 개념으로 드러난다. 「가톨릭대사전」은 “속죄는 하느님이 베푸신 자비이며, 충실한 대사제(히브 2,17), 그리스도께서 흘리신 십자가의 피로 인한 결과(로마 5,9;에페 2,13-16)”로 밝힌다. 한편 ‘대속’(代贖)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음으로써 만민의 죄에 대해 대신 속죄하였음을 의미하는 신학 용어다. 통회 - 하느님께로 돌아서겠다는 회개의 결심 일반적으로 자신의 범한 죄를 아파하면서 동시에 다시는 죄를 짓지 않겠다고 결심하는 덕(德)의 행위를 말한다. 「신경, 신앙과 도덕에 관한 규정·선언 편람」에서는 “지은 죄에 대한 마음의 고통이며, 다시는 죄를 짓지 않겠다는 결심으로 그 죄를 미워하는 것”으로 정의한다. 죄로 말미암아 하느님 마음을 상해드렸음을 뉘우치며, 자기 마음을 돌려 하느님께 돌아간다는 ‘회두’(回頭)로 말하기도 한다. 죄지음을 슬퍼한다는 것은 죄로 인해 하느님 관계가 깨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통회는 이 관계를 회복하려는 의지가 동반된다. 통회는 고해성사의 구성요소로서 참회하는 사람의 세 가지 행위인 통회, 고백, 보속 가운데 가장 중요한 행위다. 통회가 없으면 죄 사함을 받을 수 없다. 또 ‘완전한 뉘우침’(상등통회·上等痛悔)과 ‘불완전한 뉘우침’(하등통회·下等痛悔) 두 가지로 나뉜다. 「가톨릭대사전」에 따르면 통회는 나쁜 결과에 대한 단순한 후회가 아니라 마음과 생각의 근본적인 변화를 의미한다. 죄를 멀리하고 하느님께로 돌아서겠다는 회개의 결심이다. 그런 면에서 다시는 죄를 짓지 않겠다는 굳건한 의지가 수반돼야 한다. 보속 - 고해성사 뒤 잠벌 보속으로 대가 치러 넓은 의미에서 ‘끼친 손해의 배상’을 말하지만, 그리스도교 신학에서의 보속은 지은 죄를 적절한 방법으로 ‘보상’하거나 ‘대가를 치르는 것’이다. 좁은 의미에서는 고해성사의 구성요소다. 고해사제가 부과하는 기도나 선행을 말한다. 이는 이미 지은 죄로 인한 잠벌을 기워 갚는 것이요, 영혼의 허약함을 치료해서 다시 죄를 범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세례 받기 전의 죄는 세례성사로 벌까지 모두 용서받지만, 세례 후의 죄는 고해성사로 용서받는다. 하지만 죄의 벌까지 모두 용서받는 것은 아니고 지옥 벌만 용서받게 된다. 즉 잠벌이 남아있다. 잠벌은 영원한 벌에 대한 일시적인 벌, 혹은 연옥 벌을 말한다. 이는 인간 자신이 기워 갚아야 하므로 보속이 요청된다. 1551년 트리엔트공의회는 “고해성사 뒤의 잠벌은 남아 있으므로 사제는 보속을 정해주어야 한다”고 공표했다. 전통적으로 기도, 금식, 자선은 보속 행위의 세 가지 유형이다. 보속 행위의 의미에 대해 「가톨릭대사전」은 “그리스도인이 새로운 생활을 시작할 것을 고해성사를 통해 하느님께 발원하는 인격적 약속으로, 또 용서받은 죄인이 자발적인 정신적·육체적 극기를 통해 그리스도의 수난에 참여할 수 있다는 것을 상기시켜준다”고 밝힌다. 아울러 “죄가 남긴 상처, 통회에 있어서 사랑의 부족 등으로 사죄 후에도 신자의 마음속에 어두운 부분이 남아 있다는 사실을 환기시켜준다”고 언급한다. 극기 - 그리스도를 따르기 위한 수련 그리스도를 따르기 위해 자신을 극복하는 것을 말한다. 초기 그리스도교 전통에서는 예수를 따르는 신자들을 경기에 승리하기 위해 자신을 단련시키는 선수로 비유했다.(1코린 9,24-27) 단식 및 절제, 자선과 기도는 그리스도를 따르고 닮기 위한, 또 그리스도의 성령에 예민해지기 위한 수련 방법으로 간주했다. 순교와 동정은 가장 훌륭한 고행으로 숭상됐다. 이런 극기와 고행이 그리스도교 완덕에서 비중을 갖게 된 것은 313년 그리스도교가 공인되면서부터다. 순수한 그리스도인의 삶을 구현하기 위해 은수자들은 사막을 택했고 그 생활 안에서 고행을 실천했다. 사막 은수자들과 교부들을 통해 만들어진 전통적 수덕(修德) 신학에서는 고행 문제를 도덕적 훈련 및 신비적 훈련이라는 두 가지 측면에서 바라봤다. 안문기 신부(대전교구 원로사목자)는 「은혜로운 계절축제」에서 “과거에는 고행(극기, 편태, 은둔생활)이 그리스도교 완덕에서 큰 비중을 차지했으나 현대에 와서는 완덕 개념이 영육의 조화된 일치와 공동체성을 중시하게 되면서 고행의 의미와 역할은 신학적 반성의 주제가 되어오고 있다”고 언급했다. [가톨릭신문, 2019년 3월 3일, 이주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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