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의 신비여
사제 생활 50년의 단상
왕영수 신부 지음
8. 사목 현장에서 만난 주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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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년에 귀국해서 고국 땅에서의 첫 본당이 초장
성당이었습니다.
오랜 외국 생활에서 돌아와 본당 사목을 시작하면서 나는 무엇보다
본당에 대한 내 사목 방침을 확고히 지켜 나가기로 다짐했습니다.
'이 본당 공동체의 주인은 주님이시고 나는 그분의 종이며 한낱 도
구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 바로 내 사목 방침이었습니다.
교회의 주인은 주님이시고 주님을 모시는 제단은 교회에서 가장 중
요한 곳입니다. 나는 부임해서 우선 제단을 정리하고 단장했습니다.
감심이 있고 주님을 상징하는 제단이 있기 때문에, 청결해야 하고 정
리정돈이 잘 되어야 하며 은사적인 장소가 되어야 했습니다. 그 다음
은 교우들이 기도하는 성당 바닥을 끼끗하게 수리했습니다. 몇 년 동
안 임시 방편으로 고치던 것을 전면적으로 보수했습니다.
그리고 성당 내의 각종 회의실을 대대적으로 정비하기 시작했습니
다. 난방, 환기, 벽면 청소, 크기와 넓이의 조절 작업 등을 통하여 교
우들이 안락하고 기분 좋게 머물 수 있는 장소로 만들었습니다. 따뜻
한 안방처럼 정다운 공간이 되도록 노력했습니다.
그 다음에 단장한 곳이 수녀원이었습니다. 오롯이 한 생애를 바쳐
봉사하는 그분들에게 맞는 보금자리가 필요했습니다. 후미진 곳에 있
기 때문에 하루 종일 햇볕이 별로 없었고, 수맥이 심하게 흘렀지만,
최대한 건강하게 지낼 수 있는 안락한 생활 공간으로 만들었습니다.
"신부님, 이제는 사제관을 보수할 것이 아니라 신축합시다. 현재 부
산에서 제일 열악한 사제관입니다. 그 옛날 지학순 주교님 때의 그 모
습 그대로입니다."
"적어도 금년에는 안 됩니다. 본당 재정 상태가 용이하지 않고, 그
보다 중요한 것은 저에게는 이 사제관이 전혀 불현하지 않습니다. 지
난 20년간 해외에서 지낸 그 어느 때보다 편안한 사제관입니다. 걱정
하지 마십시오."
성직자 중심의 한국 교회에서는 자칫 본당 내에서 사제가 생활하는
공간을 중시하는 풍조가 있습니다. 교우들이 성직자를 사랑하는 마음
의 표현으로 사제관을 화려하게 장식해서 큰 회사의 사장실을 방불케
하는 잘못된 버릇이 언제부터인가 생긴 것 같습니다.
교우들의 성의와 사랑을 사양하다 못해 부임한 지 4년 후에야 사제
관과 수녀원, 사무실을 신축했습니다. 본당의 제반 시설과 영적인 상
태가 정비되고 제자리를 잡고 난 뒤에야, 이 종의 거처를 마련했습니
다. 그 당시 교우들의 큰 사랑과 축복 속에 집을 짓고 기도하고 말씀
을 나누었던 기쁨을 아직도 가슴속에 깊이 간직하고 있습니다.
"주님, 당신의 몸인 공동체를 섬기는 이 종의 마음이 항구하게 당신
의 마음으로 살게 하여 주소서."
주님의 평화가 항시 함께 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