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남 속으로
이제민 지음
하느님을 만나게 해준 사람들
안락사
거의 30년 전 독일에서 안락사에 대한 논쟁이 크게 벌어졌다.
불치병을 앓는 환자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안락사를 허용해야
한다는 어떤 의사의 주장이 발단이 되었다. 그 의사는 의사의 양
심으로 고통 받는 환자를 그대로 내버려둘 수 없다고 했다. 그리
하여 한 텔레비전 방송사에서 그와 가톨릭 주교를 한자리에 초
청해서 공개 토론을 벌였다.
의사는 주교에게 "당신은 죽음의 고통을 당해 본 적이 있습니
까? 그런 환자를 대한 적이 있습니까?" 하고 질문하면서, "고통
당하는 사람에게 고통을 덜어줄 생각은 않고 그리스도의 십자가
를 생각하며 무조건 참으라고만 요구하는 것은 환자에게 너무
잔인한 일이 아닙니까? 나는 의사의 양심상 그럴 수 없습니다."
하고 말했다.
이에 대해 주교는 암으로 사망한 자신의 어머니 이야기를 들
려주었다. 실제로 그는 의사의 말처럼 고통 중에 임종을 기다리
는 어머니에게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생각하십시오. 그분의 고
통에 동참하십시오." 라는 말밖에 할 수 없었고, 그때처럼 자신
이 무력하고 그 무력함에 절망스러웠던 적이 없었다고 고백했
다. 그랬더니 어머니가 자기의 손을 꼭 잡으면서 이렇게 말씀하
셨다고 한다.
"주교님, 나는 지금 행복해요. 내 인생에 오늘처럼 행복한 때
가 없었어요. 주교님이 오늘은 내 아들이 되어 옆에 있으니 이보
다 더 행복할 수 없어요."
어머니는 암이 주는 고통 가운데서도 행복을 느끼고 있었다는
것이다.
주교는 의사에게 물었다. "고통 중에 행복하다고 말하는 제 어
머니는 그때 거짓말을 한 것일까요? 우리가 느낀 감정은 고통을
잠시 잊고 최면에 빠진 상태에서 나온 것일까요?" 그리고는 "당
신은 자신의 고통을 덜어주지 못하는 자식더러 잔인하다고 했습
니다. 그때 고통 받고 있던 환자가 당신의 어머니였다 해도 안
락사시키기 위해 주사를 꽂을 수 있었겠습니까? 저는 그렇게 못
합니다. 그때처럼 어머니와 하나가 되어본 적이 없었습니다. 어
머니는 행복해하셨습니다."라고 말했다.
우리는 남의 생명이나 고통, 남의 죽음에 대해 너무 쉽게 이야
기한다. 십자가가 사랑임을 알 때 고통이 인생에서 제거되어야
할 악이기만 한 것이 아님을 우리는 알게 될 것이다. 고통 받는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그들과 기꺼이 함께 있어줌이다. 누가 감
히 이 함께 있어줌에 안락사의 주사를 놓을 수 있겠는가?
안락사는 죽음에 대한 모독이다.
주님의 평화가 항시 함께 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