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남 속으로
이제민 지음
하느님을 만나게 해준 사람들
병자성사
성탄을 며칠 앞두고 한 할아버지가 세상을 떠났다. 평생 나병
을 앓아온 할아버지다. 장례미사는 조촐하였다.
오늘 우리는 한 쓸쓸한 죽음을 두고 슬퍼합니다. 여기 누워있
는 할아버지의 일생은 우리에게 인생의 쓸쓸함을 느끼게 합니다.
이 죽음 앞에 제 마음이 아픕니다. 할아버지는 당신이 머지않아
세상을 떠날 것을 알았습니다. 할아버지는 죽음을 늘 기다리며
준비하였습니다. 3주 전, 한 달에 한 번 가는 병자 영성체 때
할아버지는 병자성사를 청하였습니다. 방에 들어서니 조그만
상에 촛불을 밝히고 병자성사 받을 준비를 다 해 놓고 있었습니
다. 할아버지는 여느 때처럼 그 제대 옆에 허리를 꼿꼿이 세우
고 앉아 저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나병으로 눈이 멀어 남의 도
움이 필요했지만 평생 그 누구에게도 신세를 지지 않으려는 자
세로 사셨습니다. 자기가 앓고 있는 병 때문이기도 했겠지만 도
움 받는 것을 남에게 피해를 주는 것으로 생각하신 것입니다. 흐
트러짐이 없이 꼿꼿이 앉아 있는 모습은 옛 선비를 보는 듯했습
니다. 그날 할아버지가 보여주신 모습은 평상시 병자 영성체 때
보던 그 모습 그대로였습니다. 그 모습이 하도 단정하고 아픈 기
색이 없어 보여 저는 아직 건강하다고 판단하고 "할아버지, 병자
성사는 저번에 받으셨으니 오늘은 영성체만 합시다." 하였고, 할
아버지는 말없이 머리를 끄떡였습니다.
그리고 일주일 후 할아버지가 병원에 입원했다는 소식을 듣고
고 얼른 병자성사를 준비해 달려갔습니다. 그날도 할아버지는
병실 침대에 꼿꼿이 앉아 흐트러짐 없는 자세로 우리를 맞이했
습니다. 병자성사는 그래서 또 미뤄졌습니다. "할아버지, 여긴
성당이 가까우니 언제든지 연락하세요. 즉각 달려올 수 있으니
까요." 그리고 따님에게도 꼭 그렇게 하도록 당부하고 돌아왔습
니다. 그런데 그저께 돌아가신 것입니다. 순간 왜 그때 병자성사
를 주지 않았던가, 후회가 들었습니다. 그리고 쓸쓸하게 운명하
시는 할아버지의 모습이 머리에 그려졌습니다. 병환으로 평생
쓸쓸하게 살았으면서도 가족 친지들에게 부담을 지우지 않으려
고 여럿이 쓰는 병실에서 쓸쓸하게 운명하셨던 것입니다.
내게는 할아버지가 '갑자기' 돌아가신 것이지만 할아버지에게
는 '갑자기' 다가온 죽음이 아니었습니다. 할아버지는 죽음을 예
감하고 벌써부터 준비하고 있었고 그래서 병자성사를 원했던 것
입니다. 지금까지 살아온 자기의 쓸쓸한 삶을 죽음의 그 순간으
로 모으고 있음이 분명했습니다. 자기의 전 생애가 집중되는 그
절정의 순간을 병자성사로 장식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할아버지
가 병자성사를 받고 싶어 한 것은 단순히 위로를 받고 싶어서가
아닐 것입니다. 할아버지에게 이 성사는 종전의 개념대로 종부
성사, 죽음으로 이어주는 성사였습니다. 그런데 나는 할아버지
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였습니다. 병자성사를 간절히 희망하던
할아버지는 무언으로 교회가 가르치는 병자성사의 의미를 내게
깨워주었습니다.
병자성사는 단순히 위로가 되라고 베푸는 성사가 아닙니다.
이 성사는 죽음의 병을 앓는 병자에게 베푸는 성사입니다. 사제
와 가족들은 죽음을 향한 성사를 받기를 두려워하는 병자에게
좀 편안한 마음으로 받아들이도록 하기 위해 종부성사가 아니라
병자성사라는 이름으로 성사를 베푸는 것입니다. 그러면 병자는
조금은 위안을 받고 죽음의 두려움에서 조금은 해방이 될 것입
니다. 하지만 이런 행위는 죽음에 대한 병자의 두려움을 잠시 벗
겨줄 뿐 입니다. 예수님은 당신의 죽음으로 죽음을 죽음이 아니
게 만드셨습니다. 병자성사는 죽음을 이런 죽음이 아닌 죽음으
로 만들어 영원한 생명을 느끼게 해주는 성사입니다. 죽음에서
생명으로 건너가게 해 주는 성사입니다. 할아버지는 그렇게 죽
음을 준비하였습니다. 그렇게 하느님의 생명을 느끼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나는 할아버지가 단순히 죽음의 병에서 위로
를 받고 싶어하는 것으로만 생각하고 할아버지에게 성체가 그런
위로를 줄 것이라며 병자성사를 뒤로 미루었던 것입니다. 그것
도 두 번씩이나.
오늘 할아버지를 장례미사로 보내면서 나는 할아버지에게 죄
스러울 정도로 미안할 따름입니다. 할아버지는 우리에게 인생의
쓸슬함을 일깨워 줍니다. 죽음은 생을 마감하면서 종합하는 순
간입니다. 죽음은 화려할 수 없습니다. 아무리 장례를 화려하게
치른다 하더라도 죽음은 쓸쓸한 일입니다. 그것이 인생입니다.
이 쓸쓸한 할아버지의 장례식에서 죽음을 기다리던 할아버지의
모습을 봅니다. 그 모습에서 아기 예수님을 바라보며 부른 시메
온의 노래가 들려옵니다.
"나 이제 구원을 보았습니다. 이제 눈을 감아도 한이 없습니다.
주님의 평화가 항시 함께 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