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의 신비여
사제 생활 50년의 단상
왕영수 신부 지음
8. 사목 현장에서 만난 주님
13 사랑은 중요합니다, 영원합니다
"신부님, 저희들에게 고해 시간을 충분히 주시면 좋
겠습니다. 2, 30분 가지고는 안 됩니다. 한 시간 정도로 해주시면 감
사하겠습니다."
1987년 일시 귀국해서 예수성심 수녀원(부산)에 잠시 머물 때 였습
니다. 청원 - 지원 책임자 수녀님의 요청으로 열다섯 분 정도의 수련
- 지원자 자매님들에게 3일 정도 말씀을 나눈 뒤 그들이 내게 부탁을
해 왔습니다.
그래서 이틀에 걸쳐 면담고해성사를 주었습니다. 이 분들이 솔직담
백하게 자신을 드러내면서 회개하는 모습에 놀랐고, 나 자신도 무척
은혜로웠습니다.
늦은 저녁 안수를 마친 뒤 수녀님들이 얼마나 기뻐하던지, 그분들
의 순수한 웃음이 한 시간 가량 멈추지 않는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습
니다. 아마도 하느님의 사랑을 깊이 체험한 것 같았습니다. 이처럼 하
느님의 사랑이 가져다주는 기쁨은 우리 영혼을 생기 있게 할 뿐 아니
라 인위적이고 형식적인 것을 초월하는 우리 삶의 근원적인 힘이며,
모든 욕망과 유혹을 이겨내는 은총임을 또 한 번 깨달았습니다.
"신부님, 수녀님들이 이상합니다. 이전에는 고해 신부님을 초청해
서 성사보라고 권유해도 망설이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번에는 자기들
이 먼저 고해해야 한다고 전체 수녀님들이 경쟁(?)하다시피 하니 저
도 덩달아서 고해를 하고 싶습니다."
2001년 한국외방선교 수녀원에서 서원을 위한 8박 9일 피정을 지
도할 때 원장 수녀님이 내게 한 말입니다.
피정하는 여덟 분의 수녀님만이 아니라 20여 분의 수녀님들이 3일
에 걸쳐 50분 정도씩 성사를 다 보았는데, 그 고백이 이 수도 공동체
를 대청소하는 것과 같았다고 내가 말했습니다.
기적 같은 일은 피정에 참여하지 않은 수녀님들이 그렇게도 많은
은혜를 받은 연유를 알아보니, 내가 강의를할 때 스피커가 수녀원 건
물 전체로 연결되어 내 가르침을 부엌에서, 빨래방에서, 침실과 성당
에서 모두 들을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지막 날 저녁, 한 시간 동안의 찬미 기도회는 그야말로 천
국의 잔치를 방불케 하는 축제 분위기였습니다. 사랑이신 하느님을
진하게 느끼는 그 시간, 수녀님들의 목소리와 몸짓과 춤추는 행동에
서 사랑이란 이다지도 좋고 신비하고 다양한 열매를 맺게 하는가를
또다시 느꼈습니다. 지금도 그 감정이 조금씩 살아나면서 오늘과 내
일을 기쁘게 살아갈 힘이솟아나곤 합니다.
수녀님들의 서원예절이 끝난 후 해운대로 나들이를 함께 갔습니다.
그날 피정 감사헌금으로 받은 100만 원을 모두 써도 하나도 아깝지
않을 뿐더러 오히려 더 무엇을 해주고 싶은 마음이었습니다. 해운대
백사장에서 천진한 어린이와 같이 기뻐하던 그때의 서원자 수녀님들
이 지금은 어느 곳에서 무엇를 하고 있는지 참으로 보고 싶습니다. 파
라다이스 호텔 식당에서 스테이크와 와인을 먹으며 마주했던 그 얼굴
들을 다시 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위의 두 수녀원에서 있었던 나의 체험은 내가 믿고 있던 진리를 다
시 한 번 확인하는 계기가 됐습니다. 즉 인간은 누구나 사랑을 받으면,
그리고 그 사랑이 순수하고 크면 클수록 자신의 전존재로 그 사랑에
강하게 응답한다는 것을, 또 그것이 우리가 하느님으로부터받은 고귀
한 본성이며, 그것의 솔직한 표현이 기쁨이고 웃음이라는 것을 ---.
주님의 평화가 항시 함께 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