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의 신비여
사제 생활 50년의 단상
왕영수 신부 지음
8. 사목 현장에서 만난 주님
18 보고 싶은 보좌신부
내가 보좌신부와 함께 살았던 곳은 서대신 성당
과 동래 성당뿐이었습니다. 동래 성당에 같이 있었던 보좌신부님은
잊히지 않는 기억을 남겨주었습니다.
부활 전과 성탄 전에는 고해성사를 보는 신자들이 많아서 나는 은
근히 보좌신부님이 걱정됐습니다. 신부님은 부활판공 성사를 열심히
주고 있던 어느 날 내가 "많이 피곤하지 않아요? 좀 쉬어가면서 하지
그래요."라고 했더니, 뜻밖에도 신부님은 "마음이 너무 즐겁고 제 자
신이 은총을 많이 받는 것 같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신부님, 제가 고해소 안에 앉아 있을 때나, 고해성사를 주고 있을
때 하느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 같습니다. '위로하여라. 위로
여라. 나의 백성을!'"
나는 내 귀를 의심하면서 물었습니다.
"어떤 말씀이 들린다고요? 언제부터?"
"예, 주일학교 학생들을 데리고 음성 꽃동네에 청소년 성령 피정을
다녀와서 부터입니다. 고해소에 있는 것이, 고해성사를 주는 것이, 전
혀 피곤하지 않고 마음이 기쁩니다."
신부님은 고해하는 사람들에게 될 수 있는 대로 위로와 격려의 말
을 해주려고 노력했다면서, 고해소에 몇 시간 있는 동안 자신이 내적
치유를 받고 있는 게 아닌지 모르겠다고 말했습니다.
나는 너무나 반갑고 또 기뻤습니다. 만나고 싶었던 사제를 만난 것
같아 선배 사제로서 큰 보람을 느꼈습니다. 마음속에서 감사의 정이
흘러넘치는 것 같았습니다.
신부님은 청소년 성령 피정에 온 학생들이 진지하고 솔직하게, 또
새롭게 살아보려는 의지를 가지고 고해성사를 보았기 때문에 신부님
자신도 즐겁고 은혜로웠다고 그때의 이야기를 내게 들려주었습니다.
그리고 그 학생들의 삶이 바뀌고 생활과 사고방식이 변화되는 것을
보는 것이 그렇게 기쁠 수가 없었다고 말했습니다.
"신부님, 그것은 성령의 큰 은혜입니다. 이런 은혜를 젊은 날에 베
풀어주신 데 대하여 하느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이 성사의 신비와 축
복을 묵상하고 실천하면서 앞으로 10년, 20년 후에는 더 큰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나는 그 보좌신부님에게서 진정한 사제의 모습을 그려보면서 위로
와 격려를 받았습니다.
지금은 중년이 되었을 그 사랑스러운 신부님이 어디에서 사목하는
지 알 수 없지만, 고해소에서만이 아니라, 다른 여러 가지 방법으로
도 치유자로서 예수님의 삶을 살아가시도록 가끔씩 기도합니다. 그
리고 그 신부님만 생각하면 나는 무척 기쁘고 행복합니다.
성령의 삶을 살면서 성사의 소중함을 사시는 후배 사제를 만나게
해주신 하느님께 감사드립니다.
주님의 평화가 항시 함께 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