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편하게 살기에는 너무 짧다
강길웅 신부의 소록에서 온 편지
1 "안 된다니까, 그래!"
목욕탕에서
사람도 아닌 인생
요즘은 시골에도 몸집이 좋은 사람들이 많아서 한증탕마다 만원
을 이루게 된다. 어느 땐 초등학생들까지 들어와서 땀을 내고 살을
빼겠다고 버티고 앉아 있는 것을 보노라면 세상 참 많이 좋아졌구
나 하는 생각을 갖게 된다.
지난 봄에 혼자서 긴 단식을 할 때의 일이었다.
그때 서울의 모 성당에 강론을 하러 갔다가 점심시간에 잠시 목
욕탕에 들렀는데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내게 쏠리는 바람에 아
주 곤혹스러운 일이 있었다.
평소에는 몸무게가 55kg에서 항상 왔다갔다했는데 그때는 처음
으로 47kg까지 내려가서 뼈만 앙상하게 드러난 꼴이 실로 가관이
었었다.
막 샤워를 끝내고 냉탕으로 들어가려 할 때 한증탕에서 나오던
어떤 중년의 남자와 맞닥뜨리게 되었는데 그는 대단히 뚱뚱한 친
구였다. 그런데 이 사람이 갑자기 내 몸을 구석구석 뜯어보더니만
드디어 한마디 하는 것이었다.
"선생님 몸이 참 좋으십니다!"
그는 분명히 거꾸로 말하고 있었지만 그러나 어떤 농담이나 빈
정거림은 아닌 듯했다. 나는 대답을 못하고 멍하니 서 있었다.
그가 한마디 덧붙였다.
"불필요한 살은 조금도 없으시고 아주 꼭 필요한 근육만 가지고
계십니다!"
그러면서 감탄사를 연발하는데 내 몸이 갑자기 동물원 원숭이가
된 꼴이었다.
"고맙습니다."
나도 모르게 이상한 대답을 해 놓고 혼자서 너털웃음을 짓자 그
는 신기한 듯이 내 몸을 오래오래 쳐다보곤 하였다.
그 날, 또 유난스러운 것이 있었다.
그때 탕 안에 모두 스무 명 가까운 사람들이 있었는데 웬일인지
나 하나만 빼고는 모두가 똑같은 배불뚝이 뚱뚱이들이었다. 서울
은 뭐가 달라도 분명히 달랐다!
언젠가 탈의실에서 몸무게를 달던 중학생들의 대화가 생각난다.
"60kg도 못 되는 네가 인간이냐?"
그 말을 들으니 나같이 가벼운 사람은 생전 '인간 노릇' 해 보기
는 다 틀렸다는 생각도 갖는다.
주님의 평화가 항시 함께 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