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편하게 살기에는 너무 짧다
강길웅 신부의 소록에서 온 편지
1 "안 된다니까, 그래!"
목욕탕에서
추저 분한 인생
작년 여름 휴가 때의 일이다.
은퇴하신 노인 신부님을 모시고 여행을 다니면서 즐겁게 지내다
가 이틀째 저녁에는 온천에 들러 목욕을 하게 되었는데 막상 탕 안
에 들어가고 보니 갈아 입을 내복이 없었다. 전날에 세탁 못 한 것
을 깜박 잊고 있었으며 이미 입고 있는 옷도 땀으로 흥건하게 젖어
있었기 때문에 탕 안에서 내복을 몰래 빨아 한증실에서 말리는데
누군가 뭐라고 한마디할까 봐 마음이 아주 조마조마 하였다.
여름인데도 온천에는 사람들이 많았으며 그 더운 날씨에도 한증
실은 사람들이 버글버글 끓었다. 그래도 한쪽에서 숨기며 내복을
말리던 나는 땀이 차면 얼른 냉탕에 다녀와서는 빨래 곁에서 망을
보고 보초를 서곤 했는데 그만 어느 순간에 그 난처한 일이 들통나
고 말았다.
냉탕에서 한참 몸을 담그고 있을 때 누가 뭐라고 소리치는 것 같
았는데 처음엔 그것이 뭔 말인지를 몰랐다. 그리고 고개를 돌려 그
쪽을 봤을 때, 때밀이 청년이 뭔 옷을 들고 "누구 것이냐?"라고 외
칠 때도 나하고는 아무 상관이 없는 줄만 알고 있었다. 그런데 그
친구가 "별 추접한 사람 다 있네!" 하고 혀를 찰 때는 갑자기 정신
이 퍼뜩 들면서 "내 옷이다!" 하는 감이 잡히게 되었다.
얼른 일어나서 한증실에 달려갔더니 과연 내 내복이 거기에 없
었다. 큰일이었다. 때 미는 사람 말 그대로 참으로 추저분한 일이
었다.
탈으실로 옷을 찾으러 가니 새파랗게 젊은 그가 담배를 성난 듯
이 빨아 대면서 내 내복을 가지고 장난을 치는데 말문이 콱 막혔
다. 할 수 없이 사정사정했더니 그가 이번엔 도리어 "미안하다"라
고 하면서 자기가 선풍기 바람으로 말려 놓겠으니 목욕이나 끝내
고 오라 하기에 간신히 위기를 넘길 수 있었다.
"추저분하다"라는 소리를 자주 듣는 것은 아니지만 탕 속에 다
시 들어가면서 혼자 중얼거렸다.
"너희도 각시 없이 살다 보면 추저분할 때가 있을 것이다!"
주님의 평화가 항시 함께 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