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편하게 살기에는 너무 짧다
강길웅 신부의 소록에서 온 편지
2 가객여운(佳客如雲)
"예수님, 명심하겠습니다
"신부님, <생활성서> 에 나오는 신부님 사진 좀 바꾸세요."
이제는 중년 부인이 된 제자가 한 말이었다.
"내 사진이 어때서 그러니?"
별것도 아닌 것을 가지고 신경 쓴다고 내가 나무라자 제자가 여
러 가지 이유를 들어 설명했다. 얼굴이 꼭 할아버지처럼 주름살이
많다는 것이며, 그리고 여름철인데 웬 겨울 점퍼를 입고 청승이냐
는 말을 했다. 그러면서 제발 체신 좀 생각하라는 것이 대충 그녀
가 요청하는 내용이었다.
체신 좋아하고 있네! 난 본래 멋이 없는 사람이다. 생긴 모양도
그렇지만 아무리 좋은 옷을 걸친다 해도 도무지 폼이 안 나는 사
람이다. 그래서 나는 외모에 대해 별로 신경을 쓰지 않으며 그저
내 생긴 대로만 살려고 한다. 그리고 그렇게 사는 것이 사실 내게
편하고 또 내 분위기에 맞게 된다.
난 매일 아침 면도를 하면서도 세면 후에 로션 한 번 찍어 바르
지 않는다. 남들은 로션을 바르지 않으면 피부가 거칠고 빳빳하게
느껴진다고 하나, 그러나 나처럼 바르지 않는 쪽으로 길들여진 사
람은 오히려 바르는 것이 이상하게 된다. 언젠가는 서울에 출장
갔다가 잠을 재워 준 그 집 형제의 성화로 로션을 한 번 발라 보고
는 얼굴이 갑자기 얼마나 어색한지 얼른 세수를 다시 한 적이 있
다.
뿐만 아니라 난 이발소에도 잘 가지 않으며 옷이나 구두 또한
어떤 액세서리 종류에 욕심이나 관심을 가져 본 적도 없다. 비록
품위는 없지만 점퍼 하나면 일 년 열두 달을 문제없이 입고 사는
데 요즘은 양복이 본의 아니게 몇 벌 생겨서 아주 어색한 외출을
하기도 한다.
나는 얼굴이나 키뿐만 아니라 신체의 어떤 구석을 뜯어봐도 기
특하게(?) 생긴 부분이 별로 없다. 우선 상체보다는 하체가 짧아
걸을 때는 꼭 오리걸음처럼 뒤뚱거려서 본인 자신도 불안하게 느
껴질 때가 많으며 머리는 대머리에다가 어렸을 때 기계충을 앓은
자리가 도장처럼 또 뒤통수에 찍혀 있다.
그리고 목에는 군대에서 발찌를 수술한 자리가 마치 우두 맞은
자리처럼 몇 군데나 보기 싫게 드러나 있으며 얼굴은 그야말로 깜
둥이 베트공이다. 학교 다닐 때 쌈질을 많이 해서 이빨 두 개가 부
러졌는데 지금도 입 벌리고 "하!' 하고 웃으면 죽은 그 못난 이빨
들이 멋없이 드러나곤 한다.
왼쪽 볼에는 어렸을 때 외갓집 옹기가마에서 놀다가 사금파리
에 찟어진 자리가 한 일자로 남아 있으며 오른손의 인지는 6-25
피난시절에 신탄진에서 달구지 뒤에 매달려 까불다가 달구지가
가로수와 부딪칠 때 손가락이 그에 끼어 들어가 그대로 짓이겨져
서 찢어졌는데 그때 바로 꿰매지 못해서 마치 손가락이 두 개 달
린 것처럼 기형으로 되어 있다.
발바닥은 또 마당발이라 샌들을 신으면 샌들 자체의 모양이 일
그러지기 때문에 어디 가면 창피해서 신도 함부로 벗지 못한다.
발바닥 생긴 꼴이 미련스럽고 볼품 없어서 주인(?)인 내가 쳐다봐
도 영 귀엽지가 않으며 또 그놈의 발가락이 성치 못해서 저녁마다
무좀약을 발라야만 발 냄새도 없고 가려움도 덜게 된다.
신체에 대한 험담을 하자면 한이 없다. 어디 그뿐인가. 성질 하
나만은 분명하게 고약한 것이 솔직한 내 현주소며, 더구나 영혼의
얘기를 들추자면 얘기는 한결 복잡하게 된다. 그것들이 드러난 화
면에 비춰지지 않아 다행이지, 대부분이 숨겨진 내 비밀은 실로
자랑스러운 것이 별로 없다. 심하게 말하면 치사스럽고 비열한 부
분이 많이 있다.
사람은 화장으로 그 본성을 꾸밀 수도 없고 또 옷이나 물건으로
그 진가(眞價)를 대치할 수도 없다. 호박에 줄긋는다고 수박이 되
지 않듯이, 까마귀 날개에 페인트를 칠한다 해서 백로가 되지 않
는다.
문득 '체신을 생각하라'는 제자의 말이 의미 있게 들린다. 아마
그녀가 말한 체신이란 사람의 겉부분이 아니라 속 부분이었으리
라.
"예수님, 명심하겠습니다.
주님의 평화가 항시 함께 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