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남 속으로
이제민 지음
하느님을 만나게 해준 땅
성당
몇 년 전의 일이다. 30여 년 전 신학생 시절에 가 본 적이 있
는 스위스의 알프스 산자락의 어느 작은 성당에 들렀다. 이른 아
침 성당에 들어섰을 때 깊은 산골에서만 느낄 수 있는 조용하고
신비스런 분위기가 나를 압도했다.
30년 전 성당 문을 살며시 열고 안을 들여다보는 내 모습이
그려지면서 수백 년을 거슬러 올라가 성당이 지어질 당시 사람
들의 모습이 아련히 떠오르는 듯했다. 어느덧 내 앞에 수백 년
성전의 역사가 말없이 펼쳐졌다. 나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주님, 성당에 들어서며 제일 먼저 느낀 것은 당신보다는 그
옛날 성당을 짓고 나서 줄곧 당신을 찬미하기 위해 모였던 사람
들의 모습입니다. 성당 구석구석에 머물러 있는 그들의 마음이
제 마음을 채웁니다. 투박한 솜씨가 묻어나는 조각들 하나하나
를 여기저기 세울 때마다, 또 여기저기 벽화를 그려 넣을 때마다
당신을 생각했을 저 순박한 사람들의 마음이 지금 제 마음을 울
립니다. 그들의 마음이 느껴지는 성당의 분위기가 알프스 산골
과 차분하게 조화를 이루며 더욱 신비스럽습니다.
조각과 그림들이 일류 예술가들의 작품이었더라도 당신을 이
처럼 가깝게 느낄 수 있을까요? 그랬더라도 신앙인들의 순박하
고 꾸밈없는 마음이, 그들의 삶이 그대로 내게 전해졌을까요?
이처럼 신비스런 평화로 이끌지는 못했겠지요. 고향의 평온함을
느끼게 하는 그들의 마음이 어찌 그 옛날, 그 시절, 그곳에만 머
물러 있겠습니까? 그들이 여기서 드렸던 미사들이 어찌 지나간
과거의 한 사건일 수만 있겠습니까?
그들을 통해 시간을 초월하여 계시는 당신을 느낍니다. 그리
스도인이 세상에서 다 사라진다 해도, 장차 이 성당이 텅 빈다
해도 이 신비스런 고요는 세세 영원히 이어지며 이곳을 들르는
사람들에게 당신의 신비스런 거룩함을, 당신의 영원한 사랑을
느끼게 해주겠지요.
주님, 오늘 이 성전에서 당신을 위하여 성전을 지은 사람들의
마음을 느낍니다. 당신을 생각하며 성전을 꾸미고 당신을 찬미
했던 그들의 마음을 만납니다. 그리고 그들을 통해 그들보다 먼
저 이 성전에 와 계신, 이 산골에까지 숨어 들어와 계시는 당신
의 조용한 숨결을 느낍니다.
삶의 하느님, 역사의 하느님.
주님의 평화가 항시 함께 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