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편하게 살기에는 너무 짧다
강길웅 신부의 소록에서 온 편지
2 가객여운(佳客如雲)
"어떤 불우이웃(?)"
나는 7남매 중에 둘째였으며 형님이 위로 한 분 있고 밑으로 동
생이 다섯이나 되었는데 조산되어 죽은 세 동생까지 합치면 모두
10남매였다. 그런데 내 바로 밑의 '길봉' 이라는 남동생과는 나이
차이가 2년이 넘는데도 청소년 시절엔 서로 비슷해서 사람들이 우
리 두 형제를 잘 분간을 못 했다.
그 시절만 해도 나는 철이 없어서 가출을 많이 했었다. 걸핏하면
일 주일이고 열흘이고 집을 뒤쳐나가곤 했는데 어느 땐 한 달 이상
이나 집에 안 들어간 적도 있었다. 그런데 묘한 것은 가출은 내가
했는데 그때마다 '그놈이 아직도 속을 못 차린다' 고 욕을 뒤집어
쓰는 쪽은 항상 동생이었다.
한번은 가출을 한 뒤 며칠을 헤매다가 저녁에 불쑥 외갓집에 찾
아갔는데 그때 외할머니께서 나를 반갑게 맞아 주시면서 뜻밖에도
내 동생 길봉이 걱정을 태산같이 하셨다.
"길봉이 그놈이 또 집을 나갔다며?"
그것은 정말 사실이 왜곡된 것이었지만 나는 그 말씀을 솔직하
게 정정해 드리거나 또는 사건의 진실을 용기 있게 고백할 양심이
없었다. 그냥 넉살 좋게 맞장구를 쳤다.
"벌써 여섯 번쨉니다. 왜 그러는지 모르겠어요!"
시침을 뚝 떼고 함께 걱정하는 투로 말을 받으면 막내 이모는 또
내가 동생을 찾으러 예까지 온 줄 알고 애먼 사람이 고생한다면서
오히려 나를 달래 주곤 하셨다. 그리고 용돈을 몇 푼 집어 주면 그
걸 가지고 또 밖에서 며칠 방황하다가 집에 들어가곤 했다.
동생은 가출을 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그는 절대로 그런 식으
로 문제 해결을 시도하지도 않았다. 속상하고 답답한 일이 있어도
그 자리에서 웃고 끝내 버리곤 했는데 동생에겐 그게 장점이었지
만 그런데 그것이 오히려 단점으로 보이는 경우도 있었다.
그리고 부모님이 가끔 험하게 나무라셔도 눈 하나 꿈쩍 안 했으
며 오히려 배고프니 밥이나 달라는 식으로 능청도 잘 떨었고 싱거
운 소리도 곧잘 하곤 했다. 가끔 손위의 외숙이나 이모들이 전화를
해도 동생은 가끔 그분들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며 "아무개냐?" 하
면서 놀려 대곤 했었다.
부모님은 그런 아들을 보시면서 '저놈이 부모를 모실 것이다' 는
생각을 은근히 갖곤 하셨다. 왜냐하면 첫째인 형과 둘째인 나는 성
격적으로 부모님과 마찰이 생길 소질이 많았기 때문이었다. 그리
고 동생도 자기가 부모를 모실 생각을 했으며 부인도 아주 착한 여
자였다.
결혼을 하자 자기 가정을 끔찍이(?)도 생각했으며 가끔 부모님
집에 와서는 쓸 만한 것들은 골라 슬그머니 챙겨 가곤 했는데 부모
님 눈에는 그것이 또 밉지 않게 보였다. 그리고 형제들이 모였다
하면 동생은 자주 부모님 앞에서 '앞으로 유산을 어쩔 것이냐' 하
면서 웃기곤 했었다.
사실 유산이랄 것도 없었다. 낳아 주신 은혜만 해도 평생 갚아도
갚을 수 없는 은혜인데 무엇을 더 바랄까마는 동생은 그렇게 엉뚱
한 소리로 사람을 웃겼으며 가난하지만 기죽지 않고 재미있게 살
았다. 동생이 다니는 회사의 노사 분위기가 원만한 것도 동생의 공
이 크다는 말들을 주위에서 했었다.
그리고 작년이었다. 아무래도 몸이 이상하게 보였지만 본인은
아무렇지 않다고 잡아떼더니 결국 위암으로 판정을 받은 뒤 4개월
만인 12월에 세상을 뜨고 말았다. 그때가 53세였다. 의사가 오진
을 했다는데 그것도 아마 자기 운명이었던 모양이다. 그때 동생의
죽음을 보면서 이상하게 켕기는 마음이 없잖아 있었다.
늘 그랬듯이 형이 받아야 할 죄의 대가를 동생이 또 애매하게 뒤
집어쓴 것이 아니야 하는 어떤 직감이 바로 그것이었다. 그는 늘
당하기만 했고 나는 본의 아니게 그 신세(?)를 자주 지곤 했었다.
그게 어쩌면 '형' 이라는 위치에 따라붙는 어떤 프리미엄인지도모
르지만 동생에게 미안했던 일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가 한참 건강할 때 내게 이런 말을 슬쩍 한 일이 있었다.
"나는 불우이웃이니까 형이 좀 도와 줘!"
본래 싱거운 사람이라 그때는 들은 척도 안 했는데, 결국은 그
말이 내 귀에 남는 마지막 말이 되었다. 결혼도 늦게 해서 자식 사
랑이 남달랐는데 그는 정말 불우이웃이 되어 부모님보다 앞서 세상
을 떠난 것이다.
산다는 게 무엇인가? 문득 원고지 앞에 앉아 있으려니까 죽은 동
생이 불쑥 튀어나와 "어, 강 신부!" 하며 그 능청맞은 표정을 다시
짓곤 한다.
"자식들 걱정은 말고 편히 쉬거라."
주님의 평화가 항시 함께 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