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편하게 살기에는 너무 짧다
강길웅 신부의 소록에서 온 편지
3 어떤 꿈과 현실
숨어서 지켜보는 눈
광주 가톨릭신학대학에 다닐 때 여러 교수 신부님들 중에 특별
히 나를 아껴 주시던 신부님이 한 분 계셨다. 그분은 예수님이 부
활하신 축제일이 다가오면 어김없이 소록도에 가셔서 나환우들과
함께 기쁨을 나누곤 하셨는데 본래 인정이 많으신 분이라 어려운
처지에 있는 분들을 각별히 돌보셨다.
한번은 소록도에 다녀오신 신부님이 느닷없이 나를 부르시더니
그곳의 어떤 환우가 준 것이라 하시면서 돈 십만 원을 불쑥 내놓으
셨다. 이를테면 장학금이라는 것인데 그때 당시 십만 원은 제법 큰
돈이었다. 그 후로도 나는 알지도 못하는 소록도 환우의 돈을 서너
번 더 받았는데 이름은 절대로 밝히지 않으셨다.
신부로 수품될 날이 가까워지자 나는 은인을 찾고 싶었다. 정식
으로 고맙다는 인사와 함께 앞으로 살아가면서 은혜도 갚아 드리
고 싶었다. 그런데 내가 말을 꺼내기도 전에 신부님께서 나를 부르
시더니 그 은인이 얼마 전에 돌아가셨으니 부담 갖지 말라는 것이
었다. 그러나 나는 '돌아가셨다' 는 그 말씀을 믿지 않았다.
교회에선 많은 은인들이 숨어서 도움을 베풀기 때문에 좀처럼
수혜자에게 자신의 정체를 드러내지 않는다. 그들은 자신들의 선
행을 오히혀 부끄럽다고 감추는데 그들 중에는 아주 가난한 분들
도 많이 있었다. 결코 쓰고 남기 때문에 도움을 주는 것이 아니었
다. 이를테면 평생 모은 재산을 내놓는 경우도 있었다.
신부가 될 때까지도 나는 소록도에 와 본 일이 없었다. 그래서
수품 동기 신부들과 함께 소록도 환우들의 성당을 찾아 첫 미사를
봉헌할 때는 여러 가지 감회가 깊을 수밖에 없었다. 환우들 어딘가
에 내 은인이 숨어서 지켜본다는 사실은 그들 모두가 바로 내 은인
이라는 새로운 사실을 일깨워 주는 계기가 되었다.
그 후로 나는 은인 찾는 것을 기쁘게 단념했지만 그동안 소록도
에는 거의 매년 찾아오긴 했었다. 그런데 찾을 때마다 환우들은 또
다른 모습의 은인이 되어 나를 여러 방면으로 도와 주었는데, 그들
은 가진 것이 없으면서도 늘 넘치는 무엇이 있었으며 그리고 마음
속에는 이웃에게 전할 수 있는 사랑과 희망이 가득 자리잡고 있었
다. 그것은 정말 그들만이 가진 보물이었다!
세상에는 없는 사람보다 있는 사람이 더 인색한 경우를 종종 볼
수 있다. 재물이란 바닷물과 같아서 마시면 마실수록 배는 부르면
서 더욱 갈증을 느끼기 때문이다. 그러나 베푸는 사람은 마음이 넉
넉해서 아무리 가난해도 이웃에게 나눠줄 사랑을 늘 지니게 된다.
그리고 그들은 가진 것을 다 주고도 더 주지 못함을 오히려 안타까
워한다.
얼마 전에 어떤 환우의 가정을 방문했는데 두 다리를 절각한 그
자매가 마늘 한 접과 돈 5만 원을 슬그머니 주시기에 내가 깜짝 놀
라서 "아니, 제가 도와 드려야 하는데 이거, 웬 돈입니까?" 하며 사
양을 했더니 옆에 계신 그 집 영감이 편안하게 웃으시면서 "우리는
항상 풍족하게 살고 있으니 그냥 받아 두세요" 하는 것이었다.
5만 원이라는 돈은 결코 작은 돈이 아니었다. 그들에게는 돈 1만
원만 해도 굉장히 큰돈이었다. 그래서 마늘만 가져가겠다고 하면
서 돈을 도로 드리니까 그 할머니가 섭섭하다는 표정을 지으면서
"나보다 더 불쌍한 사람을 위해서 써 주세요" 하는 것이었다.
세상에! 나병에다가 두 다리마저 잘라 버리고 그리고 남편도 똑
같이 나병으로 고생하는데, 자기들보다 더 불쌍한 사람들이 세상
에 어디 또 있을까. 그런데 참으로 묘한 것은, 진정으로 가난한 사
람들은 자신들이 가난하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이며,
정말로 불쌍한 사람은 자기가 불쌍하다는 처지를 잊어버린다는
것이다.
마늘도, 사실은 두 다리가 없는 할머니가 밭에 나가서 손수 가꾸
신 것이다. 그들은 다리 뿐만 아니라 손가락마저 빠져 손이 오그라
들었기 때문에 호미질도 제대로 할 수 없는 형편이었다. 그런데 놀
라운 것은 하느님께서 주신 육신의 남은 부분을 가지고 그들은 별
불편 없이 보통 일을 잘도 해낸다는 것이다.
세상이 이름다운 것은 색깔이 좋아서 그런 것도 아니요 재물이
풍성해서 그런 것은 더욱 아니다. 힘들고 어려운 처지에서도 최선
을 다해 노력하면서 기쁘게 사는 그분들이 있기에 세상이 참으로
멋지고 아름다운 것이다. 그래서 진정한 아름다움은, 어쩌면 가난
하고 고통받는 이들만이 볼 수 있는 특권인지도 모른다.
매일 미사에 참석하시는 할머니 중에는 연세가 아주 지긋한 분
이 계신데 그분에게는 하루하루가 다 복되고 복된 날이시다.
성당만 오시면 이 사람, 저 사람에게 계속 절을 하면서 감사를
드리는데 처음에는 그것이 어떤 가식이 아닌가 했지만 알고 보니
그것이 아니고 그분이 삶이 실제로 그러셨다.
할머니가 한때는 가정일로 신앙을 멀리한 일이 있었다. 그러나
병을 얻고 나서는 하느님의 은총(?)으로 오직 신앙에만 매달리게
되는데 지나온 수십 년 동안 하루도 기쁘지 않은 날이 없었다는 것
이다. 정말 그 얼굴에는 원죄의 흔적으로 생긴 슬픔이나 아픔이 전
혀 없으며 외로움이나 가난함도 없었다.
산다는 것은 아름다운 것이다! 소록도에 살러 와서 더욱 느끼는
것은, 도시에 있는 소위 '있는 사람들' 과 '건강한 사람들'은 진정
한 생의 의미를 잘 모른다는 것이다. 그저, 먹고 마시고 입고 쓰는
데 정신이 없어서 무엇이 참 삶의 기쁨이고 보람인지, 알지도 못하
지만 또 알려고도 하지 않는다.
얼마 전에 서울의 모 자매님한테서 전화가 왔는데 평탄한 가정
이 재물 때문에 결국 파탄의 경지에까지 이른 슬픈 내용이었다. 돈
버는 것에 초점을 맞추다 보니 남편에게 작은 부인이 생겼다는 사
실을 몰랐다는 것이었다. 그 여인이 울면서 하는 말은 '없을 때의
불행보다도 있을 때의 불행이 더 크다'는 것이었다.
사람은 어쩌면 고통을 겪고 나서야 눈을 뜨게 되는지 모른다. 그
래서 불가에서는 '고난은 보리' 라고도 하며, 그리스도교에서도
'자신이 죽지 않고는 절대로 다시 태어나지 못한다' 는 가르침을
들려주기도 한다. 그런데 누가 고난을 좋아하며 누가 또 죽는 것을
기쁘게 원하겠는가.
소록도의 환우들은 이를테면, 죽을 고비를 여러 번 넘기신 분들
이다. 그리고 육신이 병들면 마음도 병들게 되며 몸이 상처를 받으
면 정신도 똑같이 상처를 받게 된다. 그런데 그동안 나병에 대한
이해의 부족으로 우리 환우들은 많은 설움을 받았던 분들이다. 아
마 설움의 아픔 때문에 세상을 더 초월한 달관의 경지에 들어갔는
지도 모른다.
그러나 사람은 사람이다! 신부도, 수녀도 외로울 때가 있으며 서
러울 때가 있는데 하물며 나환우들에게는 그 인간적인 상념이 얼
마나 깊겠는가. 지난 설날에 세뱃돈을 드렸더니 그렇게 좋아하실
수가 없었다. 환우들의 생일을 일제히 조사하여 4월부터는 집집마
다 찾아 다니며 매일 축하를 해드리는데 이 날이 또 잔칫날이다.
케이크는 외국수녀님이 구워 주시고 나는 초와 꽃을 장만하여
샴페인도 터뜨리고 생일 축하 노래를 불러 드리면 그 구역은 온통
축제의 분위기에 휩싸이곤 한다. 그리고 그때마다 할머니, 할아버
지들이 어린아이처럼 좋아하시는 모습을 보면, 나도 내 생애에 '이
처럼 기쁜 날' 이 다시 또 없는 듯이 행복함을 느끼곤 한다.
천국이란 무엇인가? 가난해도 나눌 줄 알고 병들어 고생해도 감
사할 줄 알면 바로 거기가 천국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내가 소록
도에 와서 줄곧 배우며 감탄하는 것은, 어떤 처지에서도 베풀면서
감사해야 한다는 것이다. 바로 거기에 삶의 진정한 축복이 있다.
내가 소록도 신부라는 것이 너무 행복하다!
주님의 평화가 항시 함께 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