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누가 이 여인을 모르시나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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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조화임 | 작성일2012-07-19 | 조회수558 | 추천수1 | 반대(0) 신고 |
파르티아는 기원전 247-기원후225까지 오늘날 이란 동북쪽을 장악하고 있었던 왕국이었습니다. 전성기 때는 이란 전 지역 뿐만 아니라 지금의 아르메니아, 이라크, 그루지아, 터키 동부, 시리아 동부, 투르크메니스탄, 타지키스탄 등 중앙아시아, 그리고 아프카니스탄, 파키스탄, 쿠웨이트, 페르시아만의 해안지역,바레인, 카타르, 아랍에미레이트 연합 까지 그 세력을 뻗쳤습니다. 그래서 로마제국과도 충돌이 잦았습니다. 고대 서방세계에서 로마제국에 맞설수 있는 유일한 오리엔탈 강국이었던 셈이었지요. 예수님 사후 12제자 중 한명인 도마는 복음전파를 위해서 로마를 택하지 않고 바로 이 파르티아 제국을 선택했습니다. 물론 박해를 피해서 어쩌다 동전을 했을 수도 있지만서두요. 서기 12년에서 162년까지 파르티아제국의 토양은 반 헬레니즘적인 정서가 강했습니다. 그래도 아르타바누스 3세(A.D. 11~38)의 통치 아래에서는 문화적으로 다양하고 찬란한 꽃을 피웠습니다. 이 시기에 사도 도마가 파르티아로 들어와 기독교 최초의 교회 에뎃사 교회를 세웁니다. 도마는 여기에서 엄청난 부흥을 이끌고 후에 인도까지 진출을 하게 됩니다. 파르티아의 동쪽 경계는 실크로드가 티벳, 중국과 이어지는 길목입니다. 또한 이 파르티아 지역의 아르메니아는 민족단위로는 가장 빨리 301년에 기독교를 국교로 선포합니다. 콘스탄티누스의 밀라노 칙령(313년) 보다 빠른 시기지요. 325년 니케아 공의회에 참석한 시리아의 에프라임도 이 교회의 부제였습니다. 에프라임은 찬송시를 지어서 영지주의 확산을 막는데 공헌한 교부입니다. 나중에는 네스토리우스도 이곳 에뎃사 교회에서 기독교의 재부흥을 이끌게 됩니다. 여기 시리아 아람어로 염송하는 주님의 기도를 들어보십시오. 저 멀리 노을진 하늘을 바라보며 하느님을 응시해서 맞이하는 사람같습니다. 잃어버린 우리의 기독교 전통속에 이렇게 아름다운 챈트가 있었다는게 우리의 정서에 너무 와닿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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