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미예수님!
가톨릭 사제가 쓴 눈물의 사모곡
나물할머니의 외눈박이 사랑
이찬우 신부
모성애는 세상에서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이루어지는
모든 행위 가운데 가장 가치 있는 것임을 우리는 잘 안다.
어머니의 사랑은 무조건적인 본능 그 자체다.
그래서 그 사랑을 우리는 하느님의 사랑이라고 말한다.
가난한 사람들의 하늘
가정의 기둥은 어머니다.
어머니가 큰 기둥처럼 버티고 있는 한 집은 무너지지 않는다.
세상의 모든 어머니는 가정의 수호천사라는 사실을 나는 믿고 있다.
이상한 소문과 노름빚 소동
그 즈음 우리 마을에서는 김 진사댁이 곧 망하게 될
거라는 이상한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김 진사댁이란 마을 사람들이
우리 집을 두고 부르는 이름이다. 늘 아버지만 믿고 집안일에 파묻
혀 사는 어머니가 바깥에서 우리 집 소문이 어떻게 떠 도는지 알 리
가 없었다. 모든 소문은 등잔 밑이 어둡다는 말처럼 당사자들만 뒤
늦게 아는 법이다.
어느 날 외삼촌이 득달같이 달려와서 어머니에게 마을에 떠도는
소문을 전했다.
"누님, 매형이 노름꾼과 어울린다는데, 그거 알고 있었어요?"
그 말에 어머니는 표정 하나 변하지 않았다.
"누가 그런 말도 안 되는 말을 지껄이더냐?"
"마을에 소문이 자자해. 누님과 나만 모르고 있었어요."
"뜬소문만 믿지 말고 침착해라. 매형이 나한테 직접 말하기 전엔
난 그 말 안 믿는다."
"하지만 누님, 이건 말도 안돼, 이대로 있다간 집안 망하겠어요.
우리 부모님이 어떻게 지킨 재산인데 매형이 노름판에서 탕진을 하
냐고요."
"매형은 그럴 사람이 아니다. 어디서 무슨 소문을 들었는지 모르
지만 누가 네 매형을 모함하려고 그런 모양이다."
"누님, 매형 사는 거 보면 몰라요? 집안일은 아랑곳없이 집 나가
면 몇날 며칠 보이지도 않고---. 이대로 두면 무슨 사단이 나고야
말거라고요."
그래도 어머니는 여전히 아버지 편을 들었다. 어머니는 그런 말
을 듣는 것 자체가 마음 아픈 일이지만 모든 사실을 아버지에게 직
접 듣기까지는 인정하지 않으려고 했다.
"매형은 지금 잠시 한눈을 팔고 있을지 모르지만, 설혹 그것이 사
실이라고 해도 한때일 뿐이다. 네 매형이 그동안 너무 억눌려 살았
기 때문에 잠시 자유롭고 싶어서 그럴 수도 있지 않겠니. 지금까지
참고 살아온 매형을 네가 이해해 줘야 한다."
어머니는 외삼촌을 그렇게 달래서 돌려보냈다. 어머니의 아버지
에 대한 믿음은 소문만으로 무너지기에는 너무 깊었다. 하지만 그런
어머니의 바위 같은 믿음에도 불구하고 아버지는 끝내 어머니의 믿
음을 저버리고 말았다.
아버지는 결국 노름빚에 몰려 참으로 있어서는 안 될 사태를 만들
고 말았다. 노름빚을 갚으라고 으름장을 놓는 사람들이 집까지 밀어
닥친 것이다. 그들은 무례하기 짝이 없었다. 우리 집은 금세 쑥대밭
이 되어 버렸다.
"빚은 제가 채임지고 갚겠으니 돌아가 주세요."
어머니는 간곡하게 애언하며 통사정을 했으나 그들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빚쟁이들은 온 집안을 헤집고 다니다가 돼지우리를 보더니
돼지 한 마리를 밖으로 끌어냈다. 집에서 살림만 하던 순박한 어머
니는 험악한 노름판에서 잔뼈가 굵은 사람들의 횡포를 당해 낼 재간
이 없었다.
어머니는 집안의 큰 재산인 돼지를 그냥 내줄 수 없어서 돼지를
끌고 가는 사람의 뒤를 쫓아가기 시작했다. 집 앞에서 놀고 있던 호
우누님도 어머니 뒤를 따랐다. 그러나 어머니는 딸을 어른들의 집안
일에 끼어들게 하고 싶지 않았다. 특히 부모가 저지른 잘못은 부모
가 스스로 수습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넌 끼어들지 말고 집에 가서 동생들을 돌보거라."
어머니는 딸에게 그런 모습을 보이는 것이 민망해서 외쳤지만, 맏
딸인 호우누님은 어머니의 말을 듣지 않고 같이 뛰었다. 호우누님은
그때 어머니와 함께 뛰면서 어머니를 보호하고 빼앗긴 돼지를 꼭 되
찾고 말겠다는 결심을 했다고 한다. 그러다 보니 어느덧 노름꾼의
집까지 이르게 되었다.
"당신 남편이 꿔 간 빚 대신 가져온 돼지를 왜 돌려 달라는 거요."
그러자 어머니는 큰 소리 한 번 내지 않고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죄송합니다. 우리 바깥어른이 진 빚은 제가 꼭 갚겠습니다. 하지
만 그 돼지를 빚 대신 드리는 것은 경우에 어긋나는 일입니다. 우선
돼지를 돌려 주세요."
그러는 동안 호우누님은 대청마루에 누워 우리 돼지 돌려 달라며
울고불고 난리를 쳤다. 그러자 동네 사람들이 하나 둘 모여들었고,
어머니가 누군지 알아본 사람들이 입을 모아 어머니를 두둔해 주었
다.
"저 댁은 거짓말을 할 사람이 아니에요."
그는 이웃사람의 말을 듣고 나서야 할 수 없다는 듯 돼지를 내주
었다. 어머니와 호우누님은 먼지와 눈물로 뒤범벅이 된 얼굴로 돼지
를 찾아 되돌아왔다. 그때 어머니의 심정은 얼마나 참담했을까. 하
늘같이 믿었던 남편이 어떻게 노름꾼들과 어울리게 되었는지 이해
가 안 되었다.
항상 곧은 일만 보고 정직하고 순박하게만 살아온 어머니로서는
날벼락 같은 하루였다. 그때 어머니는 아버지가 얼마나 원망스러웠
을까. 철석같이 믿었던 남편에 대한 신뢰가 하루아침에 무너지는 참
담한 심정을 경험한 것이다. 더구나 그런 아버지의 비행을 맏딸도
알아버렸으니 부모의 입장에서 딸의 얼굴을 볼 낯도 없었다.
하지만 돼지를 안고 터벅터벅 걸어오면서 돼지를 되찾아 기뻐하
는 딸의 모습을 보며 어처구니없는 웃음을 짓기만 하셨다. 어머니는
그처럼 어떤 일을 겪든 슬픔도 원망도 당신의 마음속에 차곡차곡 접
어 넣으시고 내색하지 않았다.
어머니는 특유의 인내심으로 사태를 조용히 지켜보기만 하셨다.
그 당시 아버지는 그런 어머니의 깊은 마음을 알았는지 몰랐는지,
아니면 알면서도 모른 체하신 것인지, 그후에도 아버지의 방랑은 여
전히 계속되었다.
주님의 평화가 항시 함께 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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