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신비체험 - 8.6,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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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명준 | 작성일2012-08-06 | 조회수554 | 추천수10 | 반대(0) 신고 |
2012.8.6 주님의 거룩한 변모 축일 다니7,9-10.13-14 마르9,2-10
예수님이나 다니엘 예언자 역시 신비가이자 시인이었습니다. 우리가 바치는 시편의 저자들 역시 시인이자 신비가였습니다.
21세기 신자들은 신비가가 되어야 할 것이라는 칼 라너의 예언자적 통찰도 생각납니다.
신비체험은 내 노력으로 쟁취하는 것이 아니라 적절한 때에 하느님 주시는 하느님 은총의 선물입니다.
중요한 순간 마다 꼭 대동했던 베드로, 야고보, 요한, 세 제자의 주님 사랑이 남달랐고 이들에 대한 주님의 사랑과 신뢰도 참 두터웠음을 봅니다.
고단한 십자가의 길, 광야여정 중의 이들을 위해 신비체험을 선사하십니다.
신비체험은 그대로 하느님 ‘사랑의 빛’ 체험입니다. 환한 사랑의 빛 중에 선명히 나타난 엘리야와 모세와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 예수님을 목격한 이들의 감격적 체험은 참으로 형용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모세는 율법을 대표하는 분이고 엘리야는 예언자들 대표하는 분이자 두 분 다 승천하신 분입니다. 예수님은 바로 율법과 예언서를 완성하신 분이니 위의 두 분을 능가하시는 분이면서 두 분처럼 승천하신 분입니다.
자기(ego)의 무게가 없기 때문이라 합니다. 지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이 지구의 중력을 벗어날 수 없듯이, 모든 사람들이 자기(ego)의 중력을 벗어나지 못하고 자기중심적 삶을 살아갑니다.
하느님중력의 하느님 중심의 삶을 살았던 대자유인이셨습니다. 바로 승천이 상징하는 진리입니다.
이미 살아서 자기중심을 벗어나 자유로운 승천의 삶을 살게 합니다.
세분의 빛나는 모습을 목격한 베드로의 본능적 독점욕의 반응입니다.
저희가 초막 셋을 지어 하나는 스승님께, 하나는 모세께, 하나는 엘리야께 드리겠습니다.”
아마 초막 셋을 지어 세 제자가 각각 관리하고 싶은 욕심을 냈는지도 모릅니다. 아니나 다를까 하느님의 직각적인 개입이 뒤따릅니다.
그들이 주변을 둘러봤을 때 더 이상 아무 것도 보이지 않고 예수님만 그들 곁에 계셨다 합니다.
이제 말씀을 등불로 삼아 광야 인생 주님을 따르는 길만이 남았음을 보여줍니다. 이어 주님은 이들에게 지금의 신비체험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함구령을 내립니다. 주님 부활 후에야 신비체험의 의미를 확연히 깨달을 수 있기에 때가 될 때까지 마음에 꼭 숨겨두고 살라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에게서 다니엘서의 사람의 아들을 연상했을 것입니다.
이런 신비체험이 내적 보물입니다. 신비체험을 통한 내적치유요 정화요 성화요 더불어 우리 안의 괴물도 서서히 사람으로 변모해 갑니다.
바로 신비체험의 일상화를 가능하게 해주는 고마운 교회의 전례입니다.
주님의 변모와 더불어 우리의 내적변모를 체험하니 이보다 건강하고 안전한 신비체험도 없습니다.
주님은 매일의 이 거룩한 미사를 통해 주님의 변모를 체험케 하시고 우리의 변모도 이뤄주시어 당신을 닮아 새 하늘, 새 땅의 새 날을 살게 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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