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 제 형제가 저에게 잘못을 저지르면
몇 번이나 용서해 주어야 합니까?
일곱 번뿐 아니라
일곱 번씩 일흔 번이라도 용서하여라"
오늘 복음은
이웃을 용서하지 못하면
하느님께도 용서받지 못한다는
단순한 진리를 말하고 있습니다
지은죄를 용서 받을 수 있는
횟수가 정해저 있다면
이세상 그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고
스스로 덧에 걸려서 숨이막혀 죽을것입니다.
인간은 자유없이 살 수가 없지요
죄를 범한 횟수로
운명을 좌지우지하는 하느님이라면
그런 신을 믿고 따를 사람은
세상에 단 한 사람 도 없을것이 뻔하다.
사람의 소중한 운명을 속박 당한다면
살아도 살아있다고 볼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용서가 얼마나 어려운 것인가는
우리 모두가 잘 알고 있습니다.
누군가 한 명쯤 미워해보지 않은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미워하면 정말 괴로운 것을 알지만
용서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용서가 안 되는 것’임을 경험하게 됩니다.
용서해야 되는 걸 누가 모릅니까?
용서가 안 되는 것입니다.
세상 어떤 것도
나의 힘과 의지만으로 되는 것은 없습니다.
용서는 하나의 기적입니다.
그러나 기적은 하느님만이 하실 수 있습니다.
용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느님께서 도와주시지 않으면 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그런데,,
남의 얘기를 할 때가 아닌것 같습니다.
고백하건데,,
제 가슴속에 대못이 박혀있고
응어리진 미움이 남아서
도저히 용서가 안되는 사람이 있으니
이를 어쩌면 좋은가..
나 자신을 위해서
그사람을 용서한다면
동네 방네 떠들고 다니면서 기고만장,
더 큰 못을 박을것 같아서 엄두도 안나고..
더 큰 불편과 고통은
같은 신자로써 미사중에 시선이 마주치고..
마음에도 없는
'평화를 빕니다' 라고
인사를 나누는 일입니다.
이대로 세월 보내고 마지막날
사심없이 용서하고 홀가분하게
종부성사를 받을 수 있다면 다행이련만..
하느님께서
도와주시기를 간절히 빌며..
이 글을 읽는 여러분들은
이 같은 고민이 없으시길 바라며..
은총의 하루가 되시길 빕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