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예수님, 정말 날 위해 피땀을 흘리셨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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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이정임 | 작성일2012-09-22 | 조회수415 | 추천수2 | 반대(0) 신고 |
+샬롬(그리스도의 평화)
고통의 신비 묵상
그동안 묵주기도 고통의 신비를 과연 얼마나 했지? 수십년? 그렇다면 신비를 통달했겠다? "서당개 삼년이면 풍월를 읊는다."고 하던데 난 적어도 다섯 삼년 이상을 지냈으니 말입니다.
매 단마다 우리를 위하여 아니 나를 위하여 무엇을 하셨다고 묵상하라고 하시는데 난 정말 주님이 그렇게 하신 모든 일들이 나를 위하여 하신 사건으로 진정 다가오는가? 이 질문을 묵상하고 나누려고 합니다.
신비를 묵상하라고 하지만 사실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이 나를 위한 사건으로 느껴지지는 않았습니다. 그 사건이 진정 나를 위한 사건으로 내 피부에 와 닿아야 예수님과 교감이 이루어질 것인데 도통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뭔가 느껴지기 시작함을 감지하게 되었습니다. 아, 우리는 무엇을 느끼는 것은 노력하지 않아도 다 느낄 수 있는 것이라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았습니다. 느끼고 싶다는 원의를 가지고 최선을 다하고 온 마음을 모을 때 느낄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고통의 신비 제 1단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피땀 흘리심을 묵상합시다.
그렇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피땀을 흘리셨다고 하십니다. 구체적으로 우리의 무엇을 위해서 피땀을 흘리셨다는 말인가?
저는 게쎄마니에서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나누시는 대화를 통해 그 마음을 조금 느낄 수 있었습니다. 당신의 마음을 이렇게 표현 하셨습니다."그분께서는 큰 근심과 번민에 휩싸이기 시작하셨다. 그때에 그들에게 '내 마음이 너무 괴로워 죽을 지경이다. 너희는 여기에 남아서 나와 함께 깨어 있어라.'하고 말씀하셨다."(마태 26,37)
왜 예수님의 마음이 그토록 괴로워 죽을 지경이셨을까? 예수님께서 큰 근심과 번민에 싸이신 그 것은 과연 무엇이었나? 이 마음이 헤아려지지 않고서는 피땀을 흘리며 기도하신 것이 나를 위한 것이었음을 어찌 알 수 있겠는가?
내 뜻과 하느님의 뜻이 충돌하는 시점에서 내 뜻을 내려 놓고 하느님의 뜻을 따른다는 것이 그토록 힘들고 어렵다는 것을 예수님을 통해서 느낍니다.
만약 예수님께서 피 땀을 흘리시면서 자신의 뜻을 내려 놓기 위해 애쓰시지 않으셨다면? 나의 행복(구원)이 가능했겠나? 그렇다면 나는 내 뜻을 내려놓기 위해 얼마나 애쓰며 사는가?
예수님을 통하여 알 수 있는 것은 예수님이 그렇게 하셨듯이 나도 그렇게 하지 않고서는 내 이웃을 행복(구원)으로 초대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습니다.
살아있는 나를 죽이는데 어찌 피땀을 흘리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한 알의 밀알이 죽어야 많은 열매를 얻을 수 있다(요한 12,24 참조)고 하시기에 죽으려고 죽음을 향해 가는 과정에 그 고통을 겪지 않고 어찌 죽을 수 있겠습니까?
아, 우리도 토마스 사도가 고백하였듯이 고백하는 용기를 내 봅시다. " 그러자 '쌍둥이'라고 불리는 토마스가 동료 제자들에게, 우리도 스승님과 함께 죽으로 갑시다." 라고 말하였다.(요한 11,16)
다음은 고통의 신비 제2단을 묵상합니다. 주님 안에서 행복하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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