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례 영성 – 성품성사] 봉사 직무를 통해 이루어지는 파스카 신비 죽을 때까지 봉사할 임무 얼굴을 바닥에 대고 제대 앞에 엎드린 수품자. 양들을 위해 목숨을 바치려는 이들의 봉헌이 갸륵하고 고마우면서도 솔직히 염려스럽다. 말로는 국민에게 봉사하겠다고 해 놓고 선출이나 임용이 되고 나면 태도가 돌변하는 일부 정치인과 공무원들처럼, 성직자 또한 서품받고 나면 종종 그런 모습을 보이기 때문이다. 서품은 단순한 선출이나 임용이 아니라 축성이다. 서품 때 복음 선포와 성사 집전의 소명과 임무가 ‘지워지지 않는 인호’로 새겨진다는 사실은 신자들에게 언제나 선물이 되겠지만, 서품된 성직자에게도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다. 직무 유기 또는 직무 남용으로, “사탄아, 내게서 물러가라.”(마르 8,33) 하고 주님의 꾸지람을 들을 수 있기 때문이다. 교회를 건설할 사명 성품성사의 목적은 교회를 건설하는 데 있다.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들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여라. 보라, 내가 세상 끝 날까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겠다”(마태 28,19-20). 예수님께서 사도들에게 부여하신 이 사명은 곧, 죽으시고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증언하여 당신을 믿는 이들의 공동체, 곧 하느님의 백성을 형성하라는 것이다. 그렇게 하여 “두 사람이나 세 사람이라도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함께 있다.”(마태 18,20)고 하신 말씀처럼 그리스도께서는 세상 끝 날까지 언제나 교회 안에 현존하신다. 그리스도의 대리자인 주교 교회 안에 계신 그리스도의 현존은 무엇보다 사도들의 사명을 이어받은 주교 직무에서 충만해진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 말하듯, “주교 축성으로 충만한 성품성사가 수여”되며, “신부들의 협력을 받는 주교들을 통하여 대사제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신자들 가운데에 계신다”(교회 헌장, 21항 참조). 공의회의 규범에 따라 개정된 1968년 ‘부제, 사제, 주교 서품 예식’은 1989년 ‘주교, 사제, 부제 서품 예식’이라는 새로운 제목의 제2표준판으로 수정되면서 주교 서품의 중요성이 강조되었다. 이에 대해 경신성사성 교령은 “예식서의 차례를 바꾸어, 성품성사의 정점인 주교 서품 예식을 처음으로 옮겨 놓음으로써 신부는 주교의 협력자로, 부제는 주교의 봉사자로 서품된다는 사실을 더욱 잘 알 수 있게 하였다.”고 설명하면서 성품성사의 본질과 구조를 명확히 밝힌다. 서품의 본질적인 요소는 주교의 안수와 서품 기도이다. 그 뒤 이어지는 다른 예식들은 이 축성 행위를 상징적으로 표현하는 비본질적인 요소들이다. 주교 서품의 경우에는 머리 도유, 복음집과 반지, 주교관, 목자 지팡이와 같은 주교 표지의 수여, 사제 서품의 경우에는 영대와 제의, 손의 도유, 성반과 성작 수여, 끝으로 부제 서품에는 부제 영대와 부제복(달마티카), 복음집 수여가 이어지는데, 이 같은 표지들을 통하여 주교, 사제, 부제가 교회 안에서 수행해야 할 직무들이 외적으로 표현된다. 그리스도의 유일한 사제직에 모두 참여 주교직이든 사제직이든 부제직이든 이들의 직무는 모두 사도들을 통하여 그리스도의 유일한 사제직에 참여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하느님과 사람 사이의 중개자”(1티모 2,5)이신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몸을 단 한 번 바치심으로써 우리를 거룩하고 영구히 완전하게 해 주신(히브 10,10-14 참조), 당신의 유일한 십자가의 제사에 참여하는 직무이다. 교회 안에서 이미 옛날부터존재한 주교, 사제, 부제의 직무는(전례 헌장, 28항 참조)그리스도께서 인류 구원을 위해 성부께 바치는 이 유일한 제사, 곧 성체성사의 거행 안에서 그 임무와 역할이 분명히 드러났다. 이 세 품계는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 전체가 드리는 제사에서 특별히 자기에게 맡겨진 직무만을 수행하기 때문에 ‘직무 사제직’이라고 부른다. 예컨대, 주교와 신부는 머리이신 ‘그리스도를 대신하여’(in persona Christi) 교회의 직무를 수행함으로써 그리스도를 가시화한다. 특히 성찬례에서 ‘그리스도의 인격으로’ 예식을 집전한다. 이 말은 성찬례를 주례하는 사제가 제2의 그리스도가 아니라 바로 그리스도 자신이라는 뜻이다. 사제를 통하여 전례 안에 현존하시는 그리스도에 대해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이렇게 말한다. “‘당신 친히 그때에 십자가에서 바치셨던 희생 제사를 지금 사제들의 집전으로 봉헌하고 계시는 바로 그분께서’ 집전자의 인격 안에 현존하시고, 또한 특히 성체의 형상들 아래 현존하신다. 당신 능력으로 성사들 안에 현존하시어, 누가 세례를 줄 때에 그리스도께서 친히 세례를 주신다”(전례 헌장, 7항). 왕다운 사제직 그리스도의 사제직에 참여하는 방식이 직무 사제직만 있는 것이 아니다. 세례의 은총과 성령에 따른 삶을 누림으로써 그리스도의 사제직에 참여하는 신자들의 ‘보편 사제직’도 있다. 믿는 이들의 공동체 전체는 “선택된 겨레고 임금의 사제단”(1베드 2,9)이며, 그 자체로 사제적인 공동체이다(가톨릭교회 교리서, 1546항). 다시 말해 교회 전체가 왕이신 그리스도의 사제단이다. 그래서 신자들의 보편 사제직을 ‘왕다운 사제직’이라고도 부른다. 신자들의 왕다운 사제직은 어떤 면에서 직무 사제직보다 더 중요하다. “성찬례 거행은 교회 전체의 행위이며, 여기서 각자는 하느님 백성으로서 차지하고 있는 위치에 따라 자기에게맡겨진 임무만을 온전히 수행”하여, “본디 거룩하지만 성찬의 신비에 의식적이고 능동적이며 효과적으로 참여하는 가운데 끊임없이 그 거룩함을 완성해”(「로마 미사 경본 총지침」, 5항) 가기 때문이다. 직무 사제직의 본질은 사실 왕다운 사제직의 완성을 돕는 데 있다. 곧 왕다운 사제들인 신자들이 바치는 영적인 제사를 “유일한 중개자이신 그리스도의 희생 제사와 결합”시켜, “온 교회의 이름으로 성찬례 안에서 피 흘림 없이 성사적으로 봉헌”하는 것이 직무 사제직의 목표이다. “복음 선포에서 시작되고, 그리스도의 희생 제사에서 그 힘과 가치를 길어 올리는” 사제직은 “사람들을 위하여 그 밖의 교역을 수행하면서 하느님의 영광을 드높이고 거룩한 삶에서 사람들을 진보시킨다. 이 모든 것은 그리스도의 파스카에서 흘러나오며, 바로 그 주님의 영광스러운 오심으로 완성될 것이다”(사제의 생활과 교역에 관한 교령, 2항). * 최종근 파코미오 - 성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에 입회하여 1999년 사제품을 받았다. 지금은 성베네딕도회 요셉수도원 원장을 맡고 있다. 교황청립 성안셀모대학에서 전례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경향잡지, 2019년 7월호, 최종근 파코미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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