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미예수님!
떠나는 사람이 가르쳐 주는 삶의 진실
스즈키 히데코 지음 / 심교준 옮김
2. '왜 내가' 로 시작되는 죽음의 5단계
괴로워도 편안한 마음
죽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알았을 때, 왜 우리는 괴로워할까
요? 그것은 불쾌한 생각을 지닌 채 살아가지 않으면 안 된다는 두
려움, 즉 죽음에 대한 불안과 '삶에 대한 애처로운 집착' 에 시달릴
것이라는 공포입니다.
두려움을 피하고, 저항하고, 부정하려 하는 것이 정상적인 반응
입니다. 그러나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눈을 돌림으로써
두려움은 실제 이상이 되어 버립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두려움은
더 크게 부풀려지고 마침내 견디기 어렵게 됩니다.
두려움을 무시하지 않고 마주 대하면 두려움의 정체를 알게 됩
니다. 그러면 자신을 얽어매고 있는 두려움의 실체를 조금 떨어진
곳에서 관찰할 수 있게 됩니다. 고통이나 아픔은 사라지지 않지만
그것들과 공존하는 힘이 솟아올라, 고통이나 아픔 가운데서도 두
려움이나 불안을 느끼지 않고 지낼 수 있게 됩니다. 그것이 '수용'
단계입니다.
죽음을 눈앞에 둔 사람에게 손을 내밀면 그 사람이 죽음을 받아
들이고 있는지 어떤지 알 수 있습니다.
'아, 이 사람은 죽음을 완전히 받아들여 저 세상으로 떠날 준비
가 되어 있구나' 하고 느껴집니다. '앞으로 며칠 후에 저 세상으로
떠난다' 는 것까지도 알 수 있어 떠나기 이틀 전 정도가 되면 손을
대고 있는 사람의 몸이 하얗게 들여다보이고 흰 빛에 둘러싸여 있
는 것처럼 보이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것은 '완성' 의 표시입니다. 그 모습에는 깊은 고요함과 사랑
에 가득찬 싱그러움이 어려 있습니다. 그리고 죽음을 받아들인 사
람은 사랑에 가득찬 싱그러움을 주위 사람들도 느끼게 해줍니다.
내가 좋아하는 인도의 성자 이야기입니다.
그는 산 위에 앉아 명상을 하면서 사람들에게 지혜를 전해 주는
데, 찾아오는 이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며 "자신을 사랑하라"
고 말합니다.
"자신을 사랑한다는 것은 어떤 것입니까?" 하고 물으면, "지금
하고 있는 일을 성실하게 하는 것이다" 하고 대답합니다.
"좀 더 행복하게 되고 싶은데요" 하고 말하면, "자기 주변을 둘
러보라" 고만 대답했습니다. 행복은 평범한 일상생활 중에 준비되
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는 세속에 구애받지 않는 표표한 모습으로 깊은 지혜에 가득
차 있어 많은 사람들의 존경을 받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성자가 하필이면 암에 걸려 죽게 되었습니다. 사람들
은 성자니까 아무 병 없이 오래 살아 부처와 같이 웃으며 편안히
임종을 맞이하리라고 기대하고 있었으므로, 암에 걸렸다는 사실을
의외로 받아들였습니다.
더욱이 그 괴로워하는 모습이 심상치 않았습니다. 산 위에서 성
자가 내는 신음소리가 산 아래 마을에까지 울려퍼졌습니다.
사람들은 실망했습니다. 성자라면 중병에 걸렸다고 해도 다른
사람들의 행복을 빌면서 평온과 안식 속에서 돌아가실 거라고 생
각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보통 사람보다 더 괴로워하는 모습, 그
야말로 추태를 드러내었으므로 사람들은 환멸을 느꼈습니다.
참을 수 없게 된 제자가 성자에게 진언했습니다.
"모두들 실망하고 있습니다. 임종할 때는 위안의 말씀을 내려주
시지 않겠습니까?"
그러자 성자는 "으악!" 하고 비명을 지르며 "아파 죽겠네!" 하고
외쳤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 몸은 참을 수 없을 만큼 지독하게 괴롭고 아프다. 그러나 내
마음은 한없이 편안하다."
이것은 죽음을 있는 그대로 수용하는 경지를 나타낸 것입니다.
암이므로 아픔을 느끼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요. 아픔을 있는 그대
로 인정하고 통증으로 괴로워하면서도 마음은 안식 속에 있습니다.
주님의 평화가 항시 함께 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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