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묘비명(墓碑銘) -죽음에 대한 묵상- '12.11.2. 금,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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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명준 | 작성일2012-11-02 | 조회수565 | 추천수7 | 반대(0) 신고 |
2012.11.2 금요일 위령의 날 지혜4,7-15 로마6,3-9 마태25,1-13
-죽음에 대한 묵상-
11.1일 어제 모든 성인들(all saints) 대축일에 이어 11.2일 오늘은 모든 연옥영혼(all souls)들을 위해 기도하는 날입니다.
가장 많이 아는 것 같으면서도 가장 모르는 게 죽음입니다. 가장 분명하면서 확실한, 또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죽음이지만 까맣게 잊고 지내는 죽음입니다.
과연 준비하다 죽음을 맞이하는 지혜로운 이들은 얼마나 될까요? 가장 힘들고 중요한 게 잘 늙어가다 잘 죽는 것입니다.
사람에게는 예지가 곧 백발이고, 티 없는 삶이 곧 원숙한 노년이다.” (지혜4,8-9).
어떻게 살았느냐는 삶의 질임을 깨닫습니다.
우리는 매일 하루를 마감하는 끝기도 때마다 ‘거룩한 죽음을 맞게 하소서.’라는 기도를 바칩니다.
죽음에 대한 답은 하느님뿐입니다. 하느님과 앎의 관계가 깊어질수록 깨어 죽음을 잘 준비할 수 있습니다.
내 기쁨은 당신 뜻을 따름이오니,
내 영혼 하느님을, 생명의 하느님을 애타게 그리건만, 그 하느님 얼굴을 언제나 가서 뵈오리까.”
내 영혼아 한 평생 주님을 찬미하라. 이 생명 다하도록 내 하느님 기리리라.”
하느님을 그리워하여 저절로 바치는 찬미요, 찬미와 더불어 깊어지는 주님과의 관계요 깨어있는 삶입니다.
바오로의 말씀처럼 이런 이들 위에는 죽음도 군림하지 못합니다.
문은 닫혀 있었고 이들에 대한 주님의 이 말씀이 깊은 묵상감입니다.
‘나는 너를 알지 못한다.’라는 말을 듣는다면 얼마나 허망할까요.
바로 내 영혼 등잔에 기름을 마련하는 것이요, 비축되는 선행의 기름과 더불어 주님과 깊어지는 돈독한 앎의 관계입니다.
너희가 그 날과 그 시간을 모르기 때문이다.”
미사보다 더 좋은 죽음 준비도 없습니다.
죽음의 그 날과 그 시간은 아무도 모릅니다.
천주교 묘지를 방문할 때도 제가 우선 확인하는 것도 묘비명입니다. 예전 피정 지도 때도 각자 묘비명을 써보고 묵상하라 한 적이 생각납니다.
젤뚜르다 성녀는 1302.11.16일 임종 시 ‘아! 신랑이 오신다.’ 환호하며 선종했다 합니다.
‘신랑이 오신다. 신랑을 맞으러 나가자.’ 이었을 지도 모릅니다.
우리 모두 영혼의 등불 환히 켜들고 깨어 기다리다 주님을 맞이하는 복된 시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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