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아침 어떤 은행이 당신에게 86,400원을 입금해 준다고 상상해 보라.
그 돈은 인출은 되지 않고 쓸 수만 있고 잔액은 그날이 지나면
자동 반납되어 언제나 제로이다.
그날 당신은 그 돈을 어디에다 쓸 것인가?
시간은 우리에게 마치 이런 은행에서 주어지는 것과도 같다.
매일 아침 86,400초가 모든 이에게 부여되고는 사용하지 못하면 그냥 없어진다.
그래서 그날의 마지막 시각의 남겨진 시간은 언제나 영이다.
더 많이 사용할 수도 없고 빌려주거나 차입도 불가하다.
그 시각은 일정한 속도로 달려가기에 빨리 아니면 늦게도 할 수 없다.
달려가는 그 시간 속에 스스로를 몸담아 살아갈 뿐이다.
이렇게 시각은 돌아갈 수 없고 그렇다고 내일로 연장도 없다.
단지 오늘 현재의 주어진 시간만 살아갈 뿐이다.
건강과 행복은 스스로가 그곳에서 만든 만큼 뽑을 수 있다.
그러니 지나가는 그 속에서 최선을 다하라.
당신이 가지는 모든 순간을 소중히 여기라.
투자한 만큼 더 부가가치가 쌓이는 것이기에 그 순간은 정말 소중하다.
시간은 그렇게 아무에게도 기다려주지 않고 그냥 지나간다.
어제는 이미 지나간 역사이며 미래는 언제나 그 역사를 가지고 오늘을 안고 나아간다.
그래서 오늘이야말로 당신에게 주어진 값진 것이기에
우리는 지금 이 ‘현재(present)’를 ‘선물(present)’이라 한다.
오늘은 어제 죽어간 사람들이 그토록 갈망했던 내일이다.
이 오늘은 지나가면서 어제가 되고 그대로 역사가 된다.
남겨진 이것은 영원히 지워지지 않는 오늘의 지침서이며 미래의 교과서이다.
11월의 위령성월을 보내면서 모든 이에게 잊혀져가는 연옥 영혼을 위해 정성껏 기도드리자.
“그러나 그날과 그 시간은 아무도 모른다.
하늘의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아버지만 아신다.
너희는 조심하고 깨어 지켜라.
그때가 언제 올지 너희가 모르기 때문이다.(마르 13,32-33)”
'죽음'을 읊은 천상병 시인의 ‘귀천(歸天)’이 생각난다.
그는 이슬 더불어 손잡고 노을빛 함께 하늘로 돌아간단다.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다고 말할 시인의 가난한 삶이 행복으로 묻어난다.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새벽빛 와 닿으면 스러지는
이슬 더불어 손에 손을 잡고,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노을빛 함께 단 둘이서
기슭에서 놀다가 구름 손짓하면은,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하느님이 모든 이에게 공평하게 선물한 오늘이다.
믿음을 새로이 가다듬는 신앙의 해에 어제 죽어간 사람들이
그토록 갈망했던 이 오늘을 정말 소중히 다듬자.
주어진 오늘이라는 이 선물을 정성껏 그들에게 기도로서 봉헌하자.
그러면 오늘을 그토록 기다린 어제의 그분들이 그날 그 시각에
귀천(歸天)에서 우리를 뜨겁게 맞이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