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하느님의 나라 -비전의 현실화- 11.15. 목,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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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명준 | 작성일2012-11-15 | 조회수299 | 추천수5 | 반대(0) 신고 |
2012.11.15 연중 제32주간 목요일 필리7-20 루카17,20-25
-비전의 현실화-
비전이, 꿈이, 희망이 있어야 활력 넘치는 삶입니다. 아무리 의식주가 보장되어도 이들 없이는 곧 심신도 무기력해져 곧 무너져 내리거나 망가집니다.
생생한 비전을 지닌 자가 비전을 현실화 시키며 살아갑니다.
평생 하느님의 나라 생생한 비전을 지니고 사신 예수님이셨습니다. 하느님의 나라 비전이 예수님 삶의 꼴을 형성했고 예수님을 이끈 원동력이었습니다.
하느님의 나라, 하느님, 그리스도 모두가 하나의 실재를 지칭합니다.
하느님을 비전으로 모신 자는 행복하다는 고백으로 봐도 무방합니다.
하느님의 나라 비전을 새롭게, 뚜렷이 하는 복된 시간입니다.
아직(already but not yet) 완전히 실현되지는 않았습니다. 이미(already)와 아직(yet) 사이의 긴장 중에 하느님의 나라를 살아가는 우리들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사실 하느님의 백성 전체와 관련되는 이 나라가, 구원을 가져오는 그분의 행동 안에 현존한다고 가르친다. 하여 하느님의 나라는 “너희의 손에 미치는 곳”에 있다는 것이다.“
지금 여기 우리 가운데 현존하는 하느님의 나라를 감지합니다.
바로 지금 여기서 하느님의 나라를 삽니다.
지금 여기 우리 가운데 계신 하느님의 나라를 발견해야 합니다.
불안과 두려움이요 복잡하고 혼란한 삶입니다.
하느님의 영, 하느님 권능이 우리 가운데에 작용하는 것을 뜻합니다.
하느님의 힘이 우리를 치유하고 변화시키며, 정화하고 성화시킵니다.
…이제 그대는 그를 더 이상 종이 아니라 종 이상으로, 곧 사랑하는 형제로 받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대가 나를 동지로 여긴다면, 나를 맞아들이듯이 그를 맞아 들여 주십시오.”
사랑하는 형제를 맞아들여 달라는 바오로의 이런 인식은 그가 하느님의 나라를 살고 있다는 반증입니다.
하느님 나라의 은총이 아닌 곤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하느님 나라 비전을 새롭게 하시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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